여행맛집
토스카나, 피에몬테… 전원의 서정에 취하다
글 나주리(비타투어 차장·여행기획자) | /사진 셔터스톡, 헬스조선DB
입력 2017/01/24 10:13
이탈리아 중북부 여행기
끝없이 펼쳐진 구릉지대와 햇빛을 머금은 채 빛나는 포도밭을 바라보다 포도밭 이랑 사이를 걷는다. 그 순간 살랑 바람 한 점이 불어와 잊지 못할 마음속 하나의 풍경이 되었다. 살아가며 ‘인생의 풍경’ 한 점 없겠느냐만, 이탈리아의 토스카나와 피에몬테는 그중 하나로 꼽아도 손색없을 곳이다. 이른 아침 안개가 포근히 감싼 전원에 따스한 햇살이 서서히 녹아들기 시작하면, 마음이 먼저 걸어 들어가는 길로 안내한다.
소소한 기대감으로 떠난 토스카나
이탈리아 와인의 대표적인 2대 와인 산지 하면 토스카나와 피에몬테 지방을 꼽는다. 와인애호가라면 꼭 한번 방문하고픈 여행지다. 하지만 여행자 대부분이 이탈리아 북부의 알프스 산군(山群)과 남부 지중해의 푸른빛이 가득한 풍광, 로마시대와 르네상스 등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여러 도시의 유혹을 뿌리치고 이곳을 선택하기란 쉽지 않다.
접근도 용이하지 않아 차를 직접 운전하며 여행하는 개인 여행자가 아니고서 단체로 방문하기는 어렵다. 와인을 좋아하지만 ‘애호가’에는 못 미치는 나는, 토스카나로 향하기 전에서야 인터넷으로 그 모습을 찾아보았다. 컴퓨터 속 아름다운 토스카나의 풍광은 감탄하기 충분했다. 그러나 큰 기대는 하지 않기로 했다. 대다수의 여행지가 그렇듯 실제로 보면 그 이상의 감동을 받기 힘들어서다. ‘와인 산지니 적어도 푸른 잎이 가득한 포도밭 풍경은 볼 수 있겠지. 눈이 시원해지는 풍광에 기분이 좋아질 것이고, 와인을 즐길 수 있으니 일석이조의 여행은 되겠구나’라는 소소한 기대감만 갖기로 했다. 그러나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여행이 끝난 지금, 마음이 편해지는 그 어느 여행지보다 특별한 곳이 되었다.
내 인생 최고의 아침
르네상스 문화를 꽃피운 도시 피렌체를 주도(主都)로 하는 곳이 이탈리아 중부의 토스카나주다. 대부분이 구릉지대로 키안티산맥을 비롯한 곳곳에서 포도를 재배하고 있다. 토스카나 여행의 출발은 ‘슬로시티’오르비에토(Orvieto)에서부터였다. 첫날밤은 온천마을 바뇨 비뇨니(Bagno Vignoni)에서 머물렀다. 발도르차 국립공원(Val d’Orcia Natural Park) 안에 있는 마을은 고요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인구라곤 30명 남짓으로 여행자의 낯선 발소리 외에는 소음이라곤 전혀 없었다.
단잠을 자고 맞은 아침은 내 인생 최고의 풍경이었다. 지평선 끝까지 드넓은 평원이었다. 아니 지평선 너머에도 평원이 이어져 있으리라. 평원 위 일렬로 가지런히 심어진 사이프러스나무 길이 있고, 길 끝에는 그림 같은 전원주택이 있었다. 평원과 사이프러스나무, 전원주택이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어떤 말로 표현하면 좋을까. 부드럽게 물결처럼 일렁이는 구릉지대는 한없이 평온했다. 시간이 지나고 태양이 떠오르자 집과 나무마저 따스한 주황색으로 물들어갔다. 이탈리아 북부의 돌로미테, 남부의 아말피 등 수많은 풍경을 보아왔지만 또 달랐다.
하지만 이 역시 이탈리아라서 가능한 풍광이리라. 평온한 집과 단지 넓기만 한 게 아니라 율동감이 느껴지는 대지, 그 사이사이를 메우는 다양한 색채…. 그날의 아침을 지금도 나는 또렷이 기억한다. 한동안은 내 마음속 최고의 풍경으로 남을 한 장면이었다.
발도르차 평원을 지나 ‘키안티 클라시코’의 땅으로
발도르차 평원의 구릉지대에서 받은 첫인상만으로도 이번 여행은 기대 이상이었다. 또 다른 풍광이 나타나면 그것은 뜻밖의 보너스란 기분마저 들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키안티 클라시코(Chianti Classico)로 향했다. 여행은 자고로 여유롭게 즐겨야 하는데, 아침부터 여행을 이끄는 안내자는 출발을 서둘렀다. 타협 반 궁금증 반으로 안내자를 따라 서둘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내자가 너무 고마울 정도였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 바라본 토스카나는 또 다른 얼굴이었다. 해발 300m로 지대가 높은 바뇨 비뇨니에서 바라본 아침 풍광과 확연히 달랐다. 아래에서 올려다본 토스카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명작 <모나리자>였다. 자욱한 물안개는 길과 건물, 나무를 감싸고 있었고, 사이사이 햇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피렌체 근교의 빈치에서 나고 자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매일 아침 마주했을 풍경을 코앞에서 보니 감회가 남달랐다.
그렇게 두 시간여를 달려 키안티 클라시코에 도착했다.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키안티는 와인 이름이다. 유리병을 짚으로 싼 독특한 모습의 키안티 와인. 사실 유리가 비싸던 시절 병이 깨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이런식으로 포장했다고 한다. 지금은 포장이 힘들고, 볏짚 확보가 어렵다는 이유로 이런 전통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키안티 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 중 베스트로 꼽히는 퀄리티를 가진 와인이 ‘키안티 클라시코’다. 고유의 검은 닭 문양의 라벨이 찍힌 바로 그 와인이다. 이곳은 와인 산지로도 중요하지만, 풍광 역시 그 못지않았다. 살짝 물들기 시작한 가을빛은 어디에서도 본 적 없이 아름다웠다. 여행에서 장거리 이동은 누구나 피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곳은 이동하는 것마저 즐거운 곳이다. 슬로 비디오로 펼쳐지는 서정적인 풍광은 보고 또 보아도 질리지 않을 한 편의 명작이었다. ‘기회가 되면 꼭 다시 와서 렌트카로 구석구석을 여행하다, 마음에 드는 곳에 멈추고 쉬어가야지’라고 다짐했다.
10월 발도르차 평원은 황토빛이었다면, 키안티는 주렁주렁 열린 농익은 포도빛이었다. 굽이굽이 이어진 포도밭 길을 따라 이동하는 동안 안내자가 조용한 음악을 들려주었다. 토스타나 출신 작곡가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에 나오는 아리아, ‘아무도 잠들지 마라(Nessun Dorma·네순 도르마)’가 차 안 가득 울려 퍼지는 순간! 풍경과 절묘하게 어우러진 음악은 마음을 더 크게 울렸다.
이탈리아 최고 와인을 찾아서
8박10일간 일정 중 후반부의 하이라이트인 피에몬테에 도착했다. 이탈리아 북서부에 있는 피에몬테주는 알프스 산에서 흘러나온 포강(江)을 중심으로 중류와 상류에 기름진 평원이 있고, 알프스 끝자락은 이 평원을 둘러싸고 있다. 구릉지대에서는 포도가 재배되는데, 이탈리아 1순위 와인 산지로 꼽힌다. 앞서 본 토스카나의 자연은 소탈했다면, 피에몬테는 자연마저 위엄이 넘쳤다. 사실 피에몬테란 이름 자체가 ‘알프스 기슭’이라니 같은 포도밭이라도 풍기는 포스가 남달랐다.
피에몬테에서 가장 먼저 방문한 지역은 ‘아스티 스푸만테’의 산지인 아스티(Asti). 여행 내내 깊은 탄닌의 씁쓸한 맛을 지닌 레드와인을 마셨다. 이곳은 발포성 화이트와인으로 유명한 지역이라 화이트와인의 청량함은 여행 분위기마저 상큼하게 바꾸었다. 입안에서 부드럽게 톡톡 터지는 아스티 스푸만테를 맛본 우리는 황홀한 한 나절을 보냈다.
발길을 재촉해 와인애호가의 메카와도 같은, 이탈리아 와인의 최고봉 바롤로(Barolo)를 만나기 위해 와이너리로 향했다. 알프스 기슭의 맑은 공기와 물, 햇살을 받고 자란 피에몬테의 와인은 강한 남성미를 간직하고 있다. 그것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게 바롤로다. 여행의 끝을 장식하기에 이보다 더 완벽한 곳은 없으리라 생각됐다. 대자연과 대대로 빚은 와인 한 잔, 함께한 사람들이 있어서 행복한 순간이었다.
토스카나와 피에몬테, 이 두 곳은 유명한 와인 산지가 아닌 이탈리아에서 꼭 보아야 할 자연을 간직한 곳으로 소개하고 싶다. 지금껏 본 적 없는 이탈리아만의 로맨틱한 평화로움을 느끼고 싶다면 꼭 들르기를. 넓은 평원을 기분 좋게 가로지르다 공사 중이라 막힌 길에 잠시 당황할 때도 있겠지만, 풍경이 아름다워 돌아가는 것마저 행복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차에서 내려 두 발로 전원 속을 걸어보라. 그 시간과 그 공간이 영원히 당신 마음의 산책길이 될 테니 말이다.
TIP 헬스조선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피에몬테’참가해볼까?
헬스조선 비타투어는 5월 16~25일(8박10일)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피에몬테’ 여행을 떠난다. 이탈리아 중북부의 평온한 전원을 산책하고 인근 와이너리를 방문하며 추억을 쌓는다. 이탈리아 2대 와인 산지인 토스카나와 피에몬테를 대표하는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와 ‘바롤로’, ‘키안티’ 등은 직접 와이너리를 방문해 시음한다.
르네상스 예술이 꽃핀 도시 피렌체와 토스카나 평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오르비에토’, 중세시대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산지미냐노’ 등도 방문한다. 리구리아에서는 해안 절벽에 위치한 동화 같은 마을 친퀘테레를 거닐고, 꼬모 호수에서 휴양을 즐기는 등 다채로운 일정으로 참가자의 만족도를 높였다.
1인 참가비 560만원(유류할증료·가이드경비·비자비 포함)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