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병에 걸린 환자와 그 보호자를 잘 이끌어줄 수 있는 사람이 주치의다. 주치의와 잘 소통하며 깊은 신뢰를 쌓은 환자는 병을 이기는 힘이 강해진다. <헬스조선>은 환자와 의사를 한자리에서 만나, 이들이 함께 만들어낸 역경 극복 스토리를 소개하고 있다. 즐거운 동행, ‘해피 투게더(지난호까지는 ‘의사와 환자’)’의 열 번째 주인공은 심장 혈관인 관상동맥협착을 이겨낸 양태식 씨와 주치의 강북삼성병원 순환기내과 이종영 교수다.

차가운 바람이 코끝을 스치는 12월 중순, 강북삼성병원의 한 회의실에서 양태식 씨(65)와 이종영 교수를 만났다. 먼저 사진 촬영을 위해 간단히 이야기를 나눠달라고 요청했다. 이종영 교수와 양태식 씨의 대화는 여느 환자·의사와 달랐다. 환자와 의사의 대화를 듣다보면 환자가 ‘약자’라는 느낌이 드는 경우가 많은데, 두 사람의 대화는 서로를 존중하는 평등한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였다. 서로 존대할 뿐 아니라, 이종영 교수는 시종일관 양태식 씨에게 ‘교수님’이라는 존칭을 썼다. 양태식 씨 역시 경기대학교 교수라서다. 어려움을 함께 이겨낸 두 사람은 나이 차를 넘어선 ‘절친’ 사이로 보였다.
헬스조선 양태식 씨가 처음 병원에 왔을 때 어떤 상태였나요?
이종영 교수 2011년 7월이었습니다. 환자 분이 가슴에 불쾌감이 있다고 하면서 내원했죠. 평상시에는 괜찮은데, 운동할 때 통증이나 불쾌감이 심해진다고 했습니다. 외래에서 컴퓨터단층촬영(CT)을 했습니다. 심장에 있는 동맥인 관상동맥(冠狀動脈)을 봤는데… 어휴, 장난이 아니었죠. 환자는 관상동맥 3개가 막힌 상태(협착)였습니다. 그것도 그냥 한 군데가 막힌 게 아니에요. 올록볼록하게 막혔다 좁아짐을 반복하는 모양이었습니다.
관상동맥이 막혔다고 하니 감이 잘 오지 않으시죠? 심장으로 가는 혈관인 관상동맥이 완전히 막히면 심장이 혈액을 공급받지 못해 조직이 죽어버려요. 심근경색이 오는 겁니다, 심근경색은 급사의 원인이기도 할 정도로 위중한 질환이에요. 그래서 관상동맥협착은 빨리 치료해야 하지요. 환자에게 가슴을 열고 막힌 동맥을 뚫는 외과수술로 치료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양태식 씨 그 말을 듣는 순간 제정신이 아니었죠. 전 평소에 무척 건강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운동도 열심히 하고요. 가슴통증 등 증상이 심하지도 않았고, 운동할 때 조금씩 생기는 불편함이나 숨찬 증상도 관상동맥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나도 이제 나이가 들었구나’라고만 여겨서 가벼운 마음으로 병원에 왔죠. 그런데 느닷없이 가슴을 열고 수술하지 않으면 심근경색이 올 수 있다고 하니 어안이 벙벙했어요.
이종영 교수 이런 경우에는 가슴을 열고 막힌 혈관을 뚫는 수술을 가장 많이 합니다. 혈관이 3개나 막혀 있다고 하면 어떤 병원이라도 그 이야기를 할 거예요. 제가 외과수술이 필요하다고 말한 뒤에, 스텐트(혈관 안에 삽입하는 금속 그물망) 같은 시술도 있다고 설명 드렸어요. 그러나 환자분은 수술에 대한 충격이 너무 커서 뒤쪽 방안은 잘 못 들으셨던 것 같아요. 수술치료가 1순위기도 했고요. 환자분 표정이 공포영화를 3~4시간씩 본 것처럼 좋지 않았습니다.

헬스조선 양태식 씨는 수술 고민 때문에 병원을 세 군데나 가셨다던데요.
양태식 씨 머릿속에 ‘수술’, ‘칼’… 이런 생각만 났습니다. 일단 교수님에게 수술은 할 수 없다고 말했어요. 그런 뒤, 다른 병원에 가서 의견을 듣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이종영 교수 이런 걸 ‘세컨드 오피니언’이라고 합니다. 다른 의사의 견해를 들어보는 일이죠. 흔쾌히 가보시라고 했습니다. 세컨드 오피니언은 중요합니다. 만약 한 가지 해결책만 말하는 의사를 만나셨다면, 반드시 다른 의사의 의견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병을 고치는 방법은 여러 가지거든요. 그래서 저는 특정 방법을 권유하더라도, 다른 선택지가 있다고 환자에게 알려주는 편입니다.
양태식 씨 삼성서울병원, 세브란스병원을 갔어요. 아, 그 병원에 계시는 교수님 이름은 여기서 말 하면 안 될 것 같네요(웃음). 한 교수님은 무조건 수술해야 한다, 다른 교수님은 수술할 필요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참 헛갈렸어요. 두 분 모두 확신에 찬 목소리로 주장하셔서 더 애매했습니다.
헬스조선 이종영 교수님을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요?
양태식 씨 다른 교수님들 의견을 들은 뒤에, 이종영 교수님을 다시 찾아갔어요. 처음에 제가 못 들은 시술에 대해 설명해주셨습니다. 외과 수술을 하지 않고, 나을 방법도 있다고요. 거기에서 희망이 보였어요. 그리고 제가 갈 때마다 교수님과 30분 정도 길게 이야기를 나눴는데, 이상하게 믿음이 가더라고요. 진지하고 열정적인 태도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이야기해 보면 알잖아요. 그냥 의무감으로 대하는 사람, 진지하게 나를 살피는 사람. 교수님은 후자였어요. 게다가 제가 만나본 의사 중 가장 어렸습니다. 이왕 할 거 젊고 패기 있는 사람에게 맡겨보자는 생각도 있었어요.
이종영 교수 제가 그때는 경험이 그렇게 많은 의사가 아니었어요. 환자 분은 죽어도 수술 못 하겠다고 하셨죠. 전 내과 의사라 스텐트와 약물치료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는데, 거기에 걸어보자고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책임감이 생긴 이유가 하나 더 있어요. 제가 양태식 환자 분이 찾아간 교수님이 누구인지 압니다(웃음). 당시 저와는 비교 안 될 정도로 경험이 풍부한 선생님들이죠. 그런 사람들을 제치고, 저를 선택했다는 거죠. 이상한 책임감이 생기더라고요. 믿고 와줬으니,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의사에게 지고 싶지 않다는 승부욕도 있었습니다.
양태식 씨 그러고 보니 시술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일인데요, 자신보다 선배인 분에게 시술을 받으라는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쉽지 않은 시술이라고요. 그런데 제가 거부했습니다. 믿음이 가는 사람에게 받아야 된다고 하면서요.
이종영 교수 대학에서 학생들 가르치시는 이 중요한 양반을(웃음), 저보다 경험 많은 선배가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했죠. 그런데 사슴 같은 눈망울로 제가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기에…(웃음).

헬스조선 치료는 어떻게 진행했나요?
이종영 교수 협착이 제일 심한 부분에 스텐트를 딱 하나 넣었습니다. 그물 모양의 스텐트가 혈관 안에 들어가면, 혈관이 좁아지지 않게 고정해주는 역할을 해요. 혈관 벽이 붙지 않게 해주는 지지대 같은 거죠. 왜 하나만 넣었느냐고요? 고민 정말 많이 했어요. 성형수술할 때 코를 세우는 수술을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계획대로 높이면 잘 됩니다. 그런데 의사가 조금만 더 세우면 예뻐질 것 같은데, 하면서 과하게 코를 세우면 부작용이 생길 위험도 커지 잖아요. 스텐트도 비슷합니다. 너무 많이 넣는다고 해서 좋은 게 아니에요.
양태식 씨 교수님이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환자 분을 믿고 스텐트를 하나만 넣겠다. 제 말을 그대로 따라주시면 스텐트 하나만 넣어도 괜찮다”고요.
이종영 교수 여기서 포인트는 ‘제 말을 그대로 따라주시면’입니다. 뇌혈관은 그렇지 않지만, 심장혈관인 관상동맥이 막히는 건 생활습관병입니다. 환자 분은 건강하고 다른 나쁜 습관이 없었어요. 담배만 끊고, 운동을 좀더 체계적으로 하고, 식습관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환자라면 수술 대신 스텐트 시술을 해볼 만 합니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내가 알려주는 생활습관을 환자가 칼같이 지킨다는 신뢰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죠. 그런데 양태식 환자 분은 가능해 보였습니다. 저를 전적으로 믿고 따랐으니까요.
양태식 씨 수십 년간 하루에 한두 갑씩 피우던 담배도 처음 진료한 그날부터 끊었습니다. “왜 끊어야 하느냐”고 되묻지도 않았어요. 의사가 몸에 나쁜 생활습관을 굳이 저에게 권할 이유가 없거든요.
이종영 교수 환자에게 금연하라고 말하면 쉽게 대답하는 사람, 찾기 힘듭니다. “교수님은 안 피우세요?”라고 반문하는 경우가 많죠. 삶의 낙이라 끊을 수 없다는 사람, 말로만 끊었다고 하고 몸에서는 담배 냄새가 진동하는 사람 등 다양합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죠.
양태식 씨 시술 후 병원에서 적합한 운동을 체계적으로 알려줬어요. 처음 몇 달간은 병원에 와서 운동했고, 다 배운 후로는 집과 헬스장에서 조금씩 하고 있죠.
이종영 교수 5년이 지난 지금껏 환자 분이 건강한 이유는 생활습관을 건강하게 유지했기 때문입니다. 이 병은 의사 혼자 치료해서 될 게 아니에요. 시술 후 치료는 환자의 몫이죠. 식습관, 운동습관 뭐 하나 나무랄 게 없이 잘 하고 계세요. 경과 관찰을 위해 6개월에 한 번씩 병원에서 운동부하검사를 합니다. 운동할 때 심장이나 주변 혈관에 무리가 없는지 보는 검사죠. 심폐 능력도 보고요. 관상동맥이 안 좋으면 운동부하검사 성적이 나쁩니다. 환자 분이 운동부하검사를 하실 때면 제가 다 흐뭇해요. 같은 연세인 분들과 비교했을 때, 상위 2~3%의 성적이 나오거든요. 주변에 ‘이 환자가 제가 시술한 환자입니다’라고 외치고 싶다니까요(웃음). 공부잘 하는 자식 보고 있는 느낌입니다.

헬스조선 두 분의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질환의 치료·관리 과정에서 느낀 점이나 같은 잘환을 앓고 있는 분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주세요.
양태식 씨 저는 교수님을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어요. 그만큼 환자를 진심으로 대한다는 게 느껴집니다. 환자 입장에서 고민하고, 신뢰를 얻으려 노력하는 모습에 감동받을 정도예요. 교수님처럼 좋은 의사를 만나는 게 중요합니다. 시침과 분침같이 서로 항상 소통하며 따라가야 해요. 그리고 저 같은 환자가 있다면 자기관리가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내 잘못으로 생긴 병입니다. 관리하지 않으면 치료해도 다시 병이 생긴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이종영 교수 의사는 환자와 친해져야 합니다. 심장질환자들을 조사해보면 30~40%는 불안·우울증이 있어요. 주된 원인 중 하나가 주치의에 대한 신뢰가 없다는 겁니다. 내가 제대로 치료받고 있는 걸까? 하는 의심이죠. 실제로 불안·우울증이 있으면 치료 효과가 좋지 않아요. 서로를 믿고 가야 치료도 잘 됩니다. 아, 그리고 치료법을 딱 한 가지만 이야기하는 의사가 있다면 조심하세요. 의학은 확률의 학문입니다. 예를 들어 ‘수술했을 때 효과적이다’고 하면 95% 확률로 괜찮다는 거예요. 그런데 환자가 5%에 해당하면 어떻게 합니까? 여러 선택지를 알려주는 의사, 환자와 치료법에 대해 의견을 공유할 수 있는 의사를 선택하세요.
이종영 교수가 알려주는 관상동맥협착·심근경색 예방법
1 담배는 반드시 끊는다.
2 술은 하루에 1~2잔 이하로 줄인다.
3 음식은 싱겁게 골고루 먹고, 채소와 생선은 충분히 섭취한다.
4 매일 30분 이상, 일주일에 150분씩 운동한다.
5 적정 체중·허리둘레를 유지한다.
6 스트레스를 줄이고, 즐거운 마음으로 생활한다.
7 정기적으로 혈압·혈당·콜레스테롤을 측정한다.
8 고혈압·당뇨병·고지혈증이 있다면 치료한다.
9 심근경색의 응급 증상을 숙지하고 동거인에게도 알려서 발생 즉시 병원에 갈 수 있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