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뉴트리션
와인 맛 제대로 느끼려면 얇고 가벼운 유리잔 선택을…
글 김동식(와인칼럼리스트)
입력 2016/12/09 09:47
와인 랩소디
‘와인의 맛과 향, 풍미를 제대로 느끼려면 전용 잔을 사용하라’는 전문가들이 강조하는 금과옥조 같은 조언이다. 와인 액세서리 중 가장 중요하게 취급받는 품목이 단연 와인 잔이기 때문이다. 실제 만찬 모임이나 야외 행사 때 항상 와인잔을 차 트렁크에 싣고 다니는 마니아가 많다. 대부분 레드와인과 화이트와인 잔을 골고루 갖추고 있다.이는 꼭 별난 성격을 지니고 있어서가 아니다. 어떤 종류, 어떤 모양의 잔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와인의 맛과 향, 풍미가 극명하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과연 와인잔의 모양과 종류는 어떻게 다르고, 각 제품별 특징은 무엇일까.
와인잔 종류를 살펴보면, 크게 레드와인, 화이트와인, 스파클링와인 잔으로 구분할 수 있다. 레드와인의 풍부한 향과 맛을 가장 잘 잡아내기 위해서는 립이 좁고 볼이 넓은 잔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튤립이나 항아리 모양의 경우 향은 물론, 공기와 접촉하면서 달고 떫은 맛의 균형을 가장 잘 잡아줄 수 있기 때문이다. 잔을 흔들어 마셨을 때 강한 향이 일시에 확 올라오는 것도 같은 이치로 보면 된다.
와인잔은 두께가 얇고 가벼울수록 고급 제품에 속한다. 입술 닫는 부분이 얇아야 와인의 미세한 맛과 향을 잘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 명품 ‘찰토 글라스’의 경우 립 부분 모서리를 손으로 눌렀을 때 와인잔이 휘어지는 탄성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그야말로 ‘깃털처럼 가볍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다. 특히 100% 수작업인 ‘핸드 블로’ 방식으로 만든 와인 잔은 2009년 독일 시사 전문지 <슈테른>에서 실시한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버건디와 보르도, 리슬링 등 3개 부문에서 그동안 유명세를 탄 ‘리델’이나 ‘슈피겔’라우를 제치고 세간의 화제를 모았다.
와인잔은 여자를 위한 선물
‘와인잔은 여자를 위한 선물’이라는 말이 있다. 와인보다 훨씬 더 감성적으로 접근해야 이해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 때문인지 최근 들어 와인 전용 잔이 함께 들어 있는 선물세트를 찾는 사람이 부쩍 늘고 있다. 와인과 와인잔이 주는 두 가지 기쁨을 함께 선물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그렇다면 좋은 와인잔을 고르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기본적으로 와인 종류에 따라 잔 모양을 선택하는 것이 무난하다. 예를 들어 부르고뉴 레드와인 잔은 전체적으로 약간 길고 볼의 불룩한 정도가 덜한 것이 특징이다. 이와 함께 입술 닿는 부위가 조금 안쪽으로 굽어 있는 튤립형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보르도 레드와인 잔은 부르고뉴 잔에 비해 볼이 더 불룩하고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모양이다.
그러나 잔을 보관할 공간이 부족하고 비용을 줄이고 싶다면 다목적 와인글라스를 구입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실제AP(All Purpose, 다목적)잔은 레드와인과 화이트와인 공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이 경우 작은 것보다 큰 것을, 색깔이 있는 것보다 무색 제품을 구입하는 것이 무난하다. 최근에는 강화 크리스털 소재를 활용한 와인잔이 등장하면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웬만해서는 깨지지 않고 가격이저렴하기 때문이다.
특히 야외 활동이 늘면서 플라스틱 재질로 만든 분리형 와인잔을 이용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고급스럽게 보이는 선물용 와인케이스에는 대부분 각종 액세서리가 함께 들어 있기 마련이다. 안쪽에 섬유가 달린 링은 물론이고 U자형의 호일 커터, 볼트처럼 생긴 퓨어러 등 생소한 모양이 궁금증을 자극한다. 이 많은 액세서리는 다 뭐고, 과연 어떻게 사용할까.
반지 모양의 ‘드립 링’은 와인 병 입구에 끼워 사용하는 액세서리로, 와인이 흘러내리는 것을 방지하는 특별한 기능을 한다. 겉 부분은 금속으로 되어 있고, 내부는 펠트(모
직 등으로 압축하여 만든 두꺼운 천)로 마감되어 있으며 링 모양이다.
와인병의 목 부분에 끼워 사용하면 와인 방울이 병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안쪽 펠트 부분이 일종의 흡수재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강한 컬러 레드와인의 경우 단 한 방울만 흘러도 식탁보나 의류에 강렬한 얼룩을 남기고, 잘 지워지지도 않아 곤란한 경우가 많다.
사용 요령은 말굽 형태로 돼 있는 플라스틱 손잡이 양쪽,즉 금속 부분이 오목하게 파여 있는 곳에 와인병 입구 맨 위쪽을 끼워넣고 돌려주면 된다. 내부에 날카로운 금속재질의 칼날이 들어 있어 쉽게 개봉할 수 있다. 여기서 한 가지 팁, 소믈리에는 잘라낸 와인 포일을 어떻게 처리할까. 식탁 위에 놓지 않고 일단 호주머니에 넣어두었다가 주방으로 돌아가 처리한다.
특히 디캔터(와인을 빠르게 숙성시킬 수 있는 유리병)를 활용하면 최근 생산된 와인이라도 오랜 기간 숙성시킨 와인처럼 특유의 맛과 향을 느낄 수 있다. 이는 와인 속 탄닌
성분 등이 공기와 접촉하면서 부드러워지고 향이 살아나기 때문이다. ‘와인은 병에 담기는 순간부터 생명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말처럼 일정 기간이 지나면서 맛과 향이 정점에 달하다가 서서히 퇴화되는 사이클을 갖고 있다.
실제 장기 숙성용으로 만들어진 고급 와인을 초기 단계에 내놓았다가는 자칫 탄닌 성분이 거칠고 향이 닫혀 있다는 항의를 받을 수 있다. 이 경우 디캔터를 이용하면 어느 정도 단점을 보완할 수 있다. 그러나 디캔터는 초창기 침전물을 제거할 목적으로 개발됐다.
김동식
와인컬럼니스트. 국제 와인전문가 자격증(WSET Level3)을 보유하고 있다. ‘와인 왕초보 탈출하기’ 등 다수의와인 칼럼을 썼다. 서울시교육청 등에서 와인 강의도 활발히 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