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두를 옮겨 수두를 예방한다고?
얼마 전 외국에서 잠시 유행한 수두파티를 국내에서 일부 엄마들이 따라하고 있다는 신문기사는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 수두파티란 수두 예방접종 대신 수두 걸린 아이를 집에다 불러놓고 자기 아이에게 수두를 자연스럽게 옮기도록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다. 미국과 호주에서 자연주의 육아를 신봉하는 엄마들이 한때 시도해서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준 파티이다. 이는 현재 생산되고 있는 수두백신에 대한 엄마들의 불신에서 비롯한 것인데, 백신무용론과 부작용 우려가 문제를 키웠다고 볼 수 있다.
세상에 나와 있는 모든 약제가 그러하듯 백신 역시 유효성과 안전성, 양 측면에서 무결점의 제제는 없다. 백신의 접종 목적은 항체 생성인데 수두백신 최초 개발 이후 항체생성률은 평균 80% 정도이며 몇 가지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한다. 일부 연구에서 백신 접종 그룹이 접종하지 않은 그룹보다 수두발병률이 높게 나온 보고서도 있었지만, 이 연구가 전체를 대표하지는 못한다. 수두는 법정전염병이 아니라서 국가별로 백신접종 권고지침이 다르기는 하지만 선진국에서는 적극적으로 접종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그렇다면 수두파티를 하려는 엄마들이 놓치고 있는 점은 무엇일까?
수두 앓은 사람, 대상포진 더 잘 걸려
수두와 대상포진은 모두 수두-대상포진바이러스(Varicella-zoster Virus)라는 동일한 바이러스에 의해 발생하는 질병이다. 수두-대상포진바이러스에 처음 감염되면 수두가 발병하고 이후 이 바이러스가 감각신경 세포 안에 잠복해 있다 다시 활성화되었을 때 대상포진이 발병한다. 따라서 수두를 한번 앓은 사람은 앓지 않은 사람에 비해 성인이 된 후 대상포진의 발병위험이 훨씬 높다. 그러므로 백신으로 항체를 만들어주는 대신 일부러 수두를 전염시키는 일은 근시안적 자연주의 신봉이라 할 수 있다. 성인이 된 후 몸에 면역력이 저하되거나 피곤할 때마다 대상포진의 발병 위험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아이의 미래도 생각해봐야 한다.
인체는 태어날 때 받은 선천면역과 살아가면서 획득하는 후천면역이 서로 조화를 이뤄 자신을 위험에서 효율적으로 방어하도록 진화되어왔다. 만약 면역계가 약화되면 어떻게 될까? 우선 각종 바이러스, 세균, 곰팡이, 기생충 등에 감염되거나 암을 제어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알레르기나 자가면역 반응에 의한 각종 질환을 앓을 수 있다. 면역계질환의 특성은 같은 가족이라도 면역력의 차이에 따라 반응이 각각 다르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해로운 면역반응
한 청년이 군복무하던 중에 질병을 얻어 의병제대했다. 진단명은 ‘궤양성대장염’으로 대장에 염증 또는 궤양이 생기는 질환으로 아직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만성재발성 질환이다. 면역기능이 취약한 상태에서 입대한 후 바뀐 음식과 생활환경으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은 것이 발병의 원인이었다. 인체는 장내에 100조 개에 달하는 미생물이 유익균, 중간균, 유해균으로 나뉘어 공생하며 살고 있다.
음식물이나 스트레스에 의해 미생물의 종류가 바뀌거나 균형이 깨어지면 면역시스템이 장내 세균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게 된다. 외부에서 침입한 해로운 세균으로 오인하는 것이다. 이렇게 염증 반응이 지속되면 대장에 궤양이 발생하고 청년이 겪은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궤양성대장염은 대표적인 자가면역질환으로 아시아에서는 희귀한 질병이었지만 최근 국내에서는 발병빈도가 급격하게 늘고 있어, 특히 청년들이 주의해야 할 질환이다. 다행히 이 청년은 약물치료와 함께 오랫동안 몸에 밴 나쁜 생활습관을 개선함으로써 발병 후 5년이 지나 악몽같은 질병에서 벗어났다고 한다. (헬스조선 2016년 10월호 ‘면역력증진… 기본으로 돌아가라’ 참고)
자가면역질환의 완치가 어려운 이유
정상적인 면역기능은 ‘자기’와 ‘비자기’를 구분하고 기억하는 능력인데, 자기와의 면역반응을 억제하는 메커니즘을 면역관용(Self-tolerance)이라고 한다. 이 기능이 무너져서 특정 장기에 나타나는 대표적인 자가면역질환은 궤양성대장염과 유사한 크론병 외에 1형당뇨병, 악성빈혈, 중증근무력증, 강직성척추염, 다발성경화증, 수정체유발성포도막염 등 수십 종류다.
그리고 전신적으로 나타나는 자가면역질환은 루프스(전신 홍반성 낭창: SLE)와 류마티스관절염 등이 잘 알려져 있다. 자가면역질환의 완치가 어려운 이유는, 체내 면역시스템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아 치료약물을 개발하기 쉽지 않고 개인별로 생활환경이 달라 일률적인 면역력 증강법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는 필요할 때마다 불편 증상을 없애주는 대응치료에 머무르고 있다. 하지만 세계적인 연구소에서 진행 중인 신약 개발 로드맵을 보면 조만간 획기적인 약물이 등장해 난치성 질병을 구제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건강한 면역계는 암을 물리칠 수 있다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대표적인 이유를 4가지 꼽으라면 사고, 감염, 퇴행성질환 그리고 암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사고와 감염에 대해서는 인체의 방어시스템이 비교적 잘 되어 있지만, 고혈압·심장병 등의 퇴행성질환이나 암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무방비 상태라 할 수 있다. 인체의 방어시스템은 자신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안전하게 전달하는 데 우선을 두고 진화되어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가 고령화될수록 암환자는 늘어날 수밖에 없지만 치료율은 제자리걸음하고 있는 현실이다.
암은 면역시스템을 기만하는 질환이라고 할 수 있다. 앞서의 자가면역질환과 반대로 암세포가 면역세포를 회피하여 성장하는 전략을 취한다. 최근 이런 메커니즘을 활용하여 개발된 신약이 하나씩 선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환자의 혈액에서 림프구나 수지상세포 같은 면역세포를 추출하여 체외에서 증강시킨 후 재주입하는 항암세포치료제도 활발하게 시도되고 있다.
또한 천연동식물에서 추출한 펩타이드(2개 이상의 아미노산이 결합한 화합물로서 생리활성물질)와 파이토케미칼 같은 물질은 면역시스템에 자극을 주어 암세포를 제거할 능력을 가진 킬러T세포나 항체생산을 촉진시켜 준다고 알려져 있다. 이제 화학요법제 위주로 암세포를 직접 공격하던 항암 시대에서 인체의 면역메커니즘을 활용한 면역치료 시대가 열린 것이다.
식품 알레르기도 면역질환
인체 소화기관이 아무리 훌륭해도 모든 나라의 음식을 탈없이 먹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완전히 소화되지 못한 음식물이 혈류로 흡수되면 면역계는 불완전 소화물을 낯선 물질로 규정하여 이를 공격하게 된다. 그리하여 인체는 음식과 관련된 여러 가지 형태의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나게 된다. 미국 연구에 의하면 음식 알레르기 현상의 91%가 네 가지 식품, 즉 견과류·달걀·우유·대두에 의해 일어난다고 한다. 그러나 개인차가 심하므로 평소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병원에서 민감도검사를 하고 각자가 시험해봄으로써 어떤 음식이 자신에게 불편을 주는지 알아보고 주의하면 된다.
면역질환의 극복은 인내심이 필요
면역은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생명을 지키는 시스템이다. 이를 연구하는 면역학은 다른 분야에 비해 역사가 짧은 편이다. 연구자마다 사용하는 용어도 달라 통일하는 작업이 필요할 정도고, 거의 매일 새로운 원리연구나 가설이 제안되고 있는 무궁무진한 분야이다. 노벨 생리의학상은 앞으로 면역학 연구 분야에서 더 많이 배출될 것으로 기대된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면역은 생명유지에 가장 중요하고 항상 우리 곁에 가까이 있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더 많다. 그래서 건강유지를 위한 면역력 이론을 실생활에 적용하기 쉽지 않고 혼돈할 때가 많다. 개인적 특이성이 워낙 강한 분야이기 때문에 환자와 의료진, 그리고 연구자들이 서로 폭넓은 대화가 전제가 될 때 완치를 기대할 수 있다. 면역 관련 질환은 수년 또는 평생을 통해 극복해가야 하는 질환이므로 일시적 반응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꾸준히 인내심을 갖고 관찰하면서 치료받는 자세가 필요하다.

신현종
제네신의학연구소 소장.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제약회사 한국 대표를 역임했다. 의과대학원에서 예방의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현재 암환자를 위한 해연면역학교를 운영하면서 약물유전체학을 응용한 통합기능의학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