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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호르몬’ 세로토닌도 과하면 독(毒)

글 정재훈(약사) | / 사진 셔터스톡

약藥문問약藥답答

몇 년 전에 《세로토닌하라!》는 책 제목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정말 세로토닌해도 될까? 세로토닌 하면 기분과 관련된 물질, 행복호르몬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실제로 세로토닌은 사람의 뇌에서 기분과 감정을 조절하는 데 관련된 대표적인 신경전달물질 중 하나다. 많은 연구자들은 뇌에 세로토닌이 부족하면 우울증이 걸리기 쉽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약 복용 중일 때는 세로토닌을 조심해야 한다.

1984년 봄, 미국 뉴욕의 한 병원에서 리비 자이언이라는 여대생이 병원 응급실에서 사망했다. 당시 독감 비슷한 증상으로 입원한 그녀는 몸을 심하게 떨었는데, 병원 측에서는 이를 완화하기 위해 메페리딘이라는 진통제를 투여했다. 하지만 환자의 경련은 더욱 심해졌고, 체온이 42℃에 이를 정도로 열이 끓어올랐다. 여러 조치에도 불구하고, 결국 환자는 심장 정지(Cardiac Arrest)로 사망했다. 세로토닌 때문이었다. 그녀는 병원 입원 전에 다른 의사에게 페넬진이라는 우울증 치료약을 처방받아 복용 중이었는데, 하필 응급실에서 그녀에게 투여한 메페리딘도 세로토닌과 관련된 약이었다. 세로토닌 수치를 올려주는 두 가지 약을 동시에 사용한 결과 뇌 속 세로토닌이 지나치게 많아졌고, 이로 인해 문제가 생긴 것이다.


세로토닌 과하면 근육 경직·경련 일어나

세로토닌은 몸에 꼭 필요한 행복 물질이 아닌가? 어떻게 세로토닌 때문에 사망할 수 있다는 건가? 의문을 품을 법하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다. 우리 몸에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건 없다. 약에 의한 세로토닌의 과잉으로 나타나는 부작용을 세로토닌증후군이라고 하는데, 반드시 피해야 할 약 부작용이다. 세로토닌 과잉이 위험한 것은 세로토닌이 기분 조절만 관련된 물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음식 섭취, 수면, 성생활과도 관련되고 호흡이나 체온 조절에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그러다보니 세로토닌이 지나치게 많아졌을 때의 문제도 여러 가지로 나타난다.

기분 조절이 제대로 안 되니까 초조·불안 등의 증상과 함께 의식 변화가 나타나고, 리비 자이언의 경우처럼 근육이 뻣뻣해지거나 간질 발작 비슷하게 몸을 떠는 경련을 일으키기도 한다. 체온조절과 장운동에 이상이 생기니까 열이 오르고 설사를 경험할 수도 있다. 땀을 많이 흘리고, 소름(닭살)이 돋기도 한다. 세로토닌(Serotonin)은 원래 영어로 세럼(Serum), 즉 혈장에서 발견된 혈관을 수축시키는 물질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세로토닌 과잉인 환자는 혈압이 갑작스럽게 올라가기도 한다. 이로 인해 환자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다.


세로토닌 관련 약, 중복 복용 주의를

세로토닌증후군이 생기면 어쩌나 늘 염려할 필요는 없다. 이러한 부작용은 보통 세로토닌과 관련된 약을 처음 복용하거나, 이미 복용하고 있다가 용량을 늘렸을 때 증상이 나타난다. 특히 세로토닌 수치에 영향을 주는 약을 중복 사용했을 때 위험성이 커진다. 세로토닌증후군의 최초 희생자가 된 리비 자이언의 경우, 페넬진이란 우울증 치료약과 메페리딘이라는 진통제를 함께 쓴 게 문제가 되었다. 그런가 하면 전혀 달라 보이는 두 가지 약이 세로토닌증후군의 위험을 높일 때도 있다. 우리 몸에서 세로토닌의 90% 이상은 장에서 만들어지는데, 장운동에도 세로토닌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참고로, 장에서 세로토닌을 만든다고 해서, 그걸 뇌가 가져다 쓰진 못한다. 뇌·혈관 장벽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뇌는 자체적으로 세로토닌을 만들어 쓴다.)

그러다보니 최근에 개발되어 사용되는 장운동을 조절하는 약이나 구토를 막아주는 약 가운데도 세로토닌과 관련된 것이 있다. 우울증치료약도 세로토닌 시스템을 더 활성화시키는 것이 많다. 편두통에 사용되는 약제나 파킨슨병 치료제, 리네졸리드라는 항생제도 세로토닌과 관련된다. 이런 작동방식이 비슷한 약을 중복해서 사용할 경우 세로토닌 과잉으로 인한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다행히 세로토닌증후군은 흔한 부작용은 아니고, 매우 드물게 나타나는 편이다.

이런 부작용은 어떻게 피할 수 있을까? 제일 중요한 것은 세로토닌에 영향을 주는 약들을 중복해서 사용하지 않도록 한다. 앞서 언급했듯, 요즘에는 세로토닌에 영향을 주는 약 종류가 다양하기 때문에 특히 주의가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우울증 치료약 두 가지 이상을 함께 사용하는 경우에는 이런 면에서 상호작용이 있는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우울증 치료약 복용 중일 때는 약국에서 처방 없이 구입하는 일반약에 대해서도 약사와 상담해서 꼼꼼히 체크받아보는 게 좋다.

예를 들어 감기약 중에도 덱스트로메토판이라는 성분이 항우울증약과 함께 병용했을 때 세로토닌증후군 위험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건강기능식품도 주의해야한다. 특히 국내에서는 우울증 치료약으로 취급되지만 해외에서 건강기능식품으로 팔리는 것 중에 ‘성 요한의 풀(St. John’s wort)’이라는 약초가 있는데, 우울증치료제와 이 약초 성분을 함께 사용하면 세로토닌증후군 부작용 위험이 있다. 일부 진통제와 우울증치료제를 함께 복용했을 때도 세로토닌증후군 위험이 있을 수 있다.

단골 약국 정해서 약, 건기식 종합적으로 관리해야 ‘그 복잡한 걸 내가 어떻게 알겠냐’는 푸념이 나올 만하다. 사실이 그렇다. 약의 종류가 워낙 다양해서 소비자가 일일이 부작용과 상호작용을 알아내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부작용 걱정에 우울증 치료약과 같은 약 복용을 중단해서는 곤란하다. 세로토닌증후군은 아주 드물게 나타나는 특이반응이고, 대부분 환자에게는 이런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는다. 부작용을 너무 염려해서 의사와 상의하지 않고 스스로 약을 끊으면, 그로 인한 위험이 더 크다.

가령 우울증 치료약을 갑자기 끊으면 증상이 악화되어서 환자에게는 더 큰 위험이 될 수 있다. 세로토닌증후군 같은 부작용을 피하려면 자신이 복용하는 약이 한 곳에서 관리되도록 하는 게 좋다. 단골 약국 한 곳을 정해두고 자신이 복용하는 모든 처방약, 비처방약, 건강기능식품에 대해 종합적으로 체크하도록 하면 이상적이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달라서, 현재의 의료체계하에서는 모든 처방약을 약국 한 곳에서 받아가기가 어렵다.

리비 자이언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보자. 세로토닌증후군으로 사망한 비극의 주인공 리비의 아버지는 시드니 자이언이라는 당시 뉴욕의 명망 높은 변호사며 <뉴욕타임스>에 글을 쓰는 칼럼니스트였다. 그런 사람의 딸이 사망했으니 사건이 더 커졌고,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시드니는 병원 측이 자신의 딸에게 약물 상호작용을 고려하지 않고 메페리딘을 투여한 점을 특히 문제로 지적했는데, 병원 인턴이 장시간 연속근무로(주당 80시간) 과로해서 실수했을 가능성에 대해 특히 비판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뉴욕주 병원의 의사나 인턴에게 초과시간 근무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령이 개정되었다. 비극적 사건이 터졌지만, 그 원인을 분석하고, 재발을 막기 위해 시스템을 고치는 방향으로 나아간 것이다. 불행히도 우리의 경우는 그와 정반대다. 2014년 기준 대한민국 전공의 평균 근무시간은 100시간, 인턴의 평균 근무시간은 118시간을 넘는다. 사고가 터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의료의 질을 높이기 위한 전체 시스템의 개선이 절실한 시점이다.

32년 전 미국 뉴욕에서 벌어진 세로토닌증후군의 비극을 되돌아보며 배울 수 있는 하나의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행복이 세로토닌과 같은 하나의 화학물질에 달려 있지 않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렇다. 사회와 그 구성원들의 건강과 안녕을 지켜주는 것은 단 하나의 명약과 명의가 아니라 불행한 사고를 방지하도록 잘 만들어진 의료체계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의료체계는 안녕한가? 반드시 생각해봐야 할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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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과학·역사·문화를 아우르는 다양한 관점에서 약과 음식의 이면에 숨겨진 사실을 탐구하는 데 관심이 많은 약사다. 현재 대한약사회 약바로쓰기운동본부 위원으로 활동중이며, 방송과 글을 통해 약과 음식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대중에게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정재훈의 생각하는 식탁》이 있다. 경기도 분당 정자동에서 ‘J정약국’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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