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궁금증
인체조직의 쓰임새는 무궁무진하다. 상처 치유를 돕는 것부터 사람의 목숨을 살리기도 한다. 특히 최근 주목받고 있는 양막은 여러 성장인자를 포함하고 있어 안구·척추·당뇨발궤양 등 여러 분야에 쓰이고 있다.
1명의 인체조직, 100명 살린다
우리 몸에는 수많은 조직이 있다. 이를 인체조직(人體組織)이라고 한다. 장기(臟器)를 제외한 뼈·연골·피부·근막·인대·힘줄·심장판막·혈관·양막 등이 해당한다. 이러한 인체조직은 장기기증과 달리 사후(死後)에 기증받거나, 산모가 출산할 때 버려지는 조직을 활용한다. 화성중앙병원 조재우 원장은 “조직이 일대일로 다른 사람에게 가는 것만이 아니다”며 “1명이 조직을 기증했을 때 100명 이상이 혜택을 받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인체조직 기증은 어떻게 이뤄질까? 한국인체조직기증원 채취가공팀 정유진 팀장은 “크게 기증-채취-가공의 3단계를 거치며, 각각은 매우 엄격한 기준에 의해 관리된다”고 말했다. 인체조직의 기증-채취-가공의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뼈·인대를 기준으로 한 인체조직 기증-채취-가공 과정
사후 24시간 내에 조직은행으로 신체를 이송한다. 조직은행은 서울성모병원, 건양대병원 등 병원 내부에 있으며 전국에 5군데가 있다. 병원 수술실보다 더 엄격한 기준으로 관리되는 채취공간에서 채취가 이뤄진다. 채취 직후 조직의 일부를 조금 떼어내, 바이러스나 세균이 있는지 선별 검사한다. 검사에서 적합 판정이 나면 세척·소독한다. 이후 다시 조직 일부로 바이러스·세균 검사를 한다. 적합 판정이 나면 적당한 크기로 가공한다. 뼈는 가루 형태나 뼈 모양 자체를 유지하는 것으로 가공한다. 가공 후에는 면역반응을 제거하는 약품처리를 한다. 이후 방사선을 통해 멸균작업을 한 뒤, 바이러스·세균 검사를 거쳐 마무리한다. 냉동하거나 건조해 보관한다. 모든 과정이 끝난 조직은 병원에 공급해 필요한 환자에게 간다.
피부·혈관·심장판막은 예민한 조직이라 방사선 멸균작업 대신 항생제 등을 사용해 관리한다. 나머지 과정은 뼈와 동일하다. 양막은 사후가 아닌, 산모 출산 시 동의를 받아 기증이 진행된다. 양막 역시 방사선 멸균작업 대신 항생제 등을 사용해 관리하며, 나머지 과정은 뼈와 동일하다.
인체조직이 쓰이는 곳
각막 - 각막질환
연골 - 골육종 등 뼈 손상
피부, 근막 - 화상 등 피부 결손
뼈 - 골육종 등 뼈 손상
심장판막 - 심장판막질환, 판막이식 수술
인대·건 - 파열 인대 복원, 퇴행성 질환, 사고·감염 등으로 인한 인대·건 결손
혈관 - 혈관막힘, 관상동맥, 우회술, 간·신장이식 수술
양막 - 각막 손상, 난치성 안표면 질환, 척추 수술, 당뇨발궤양 등
쓰임새 다양한 양막, 국내는 안과질환 치료에 활용
최근에는 인체조직 중 양막의 유용성이 주목받고 있다. 양막은 태아와 양수를 주머니처럼 싸고 있는 얇은 막이다. 태아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흔히 ‘양수가 터진다’는 표현을 쓰는데, 이때 파열되는 게 양막이다. 다른 인체조직이 보통 특정 부위에만 쓰이는 것과 달리, 양막의 쓰임새는 다양하다. 뼈는 뼈에, 피부는 피부에 쓰이지만 양막은 그렇지 않다. 유럽에서는 양막이 안과질환, 당뇨성발궤양 치료, 척추 수술, 화상 치료 등 다양한 분야에 사용된다. 국내에서는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안과질환 치료에 쓴다. 화상 치료와 척추 수술 분야는 허가 과정 중이다.
양막의 역할은 상처 보호, 유착 방지, 염증 감소 등이다. 이는 양막이 상처 치료에 필수적인 성장인자를 다양하게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표피성장인자(EGF), 형질전환생장인자(TGF-b), 섬유아세포성장인자(FGF), 혈소판유래성장인자(PDGF) 등 성장인자 종류도 다양하다.
그렇다면 국내에서 쓰이는 안과질환에 구체적으로 양막은 어떻게 쓰일까? ‘양막이식술’을 통해서다. 양막이식술은 ▲원추각막 교차결합술(각막이 비정상적으로 얇아지면서 튀어나오는 것을 치료하는 한 방법) ▲익상편(눈에 섬유혈관성 조직이 증식해, 검은자위인 각막이 찌그러져 보이는 질환) 절제 ▲심한 각막궤양에서 재생이 잘 안 되는 경우 ▲각막 화상 ▲라섹 ▲스티븐스존슨증후군(피부나 점막이 떨어지는 질환) 등으로 각막·결막에 손상이 심할 때 사용한다.
안과 외 다른 분야에도 확대될 전망
서울성모병원 안과 주천기 교수는 “원추각막의 교차결합술에서는 각막상피를 다 벗겨내기 때문에 빠른 재생을 도와주는 양막이식술이 필수적이다”며 “양막이식술을 함께 시행한 환자는 통증이나 각막혼탁이 덜하고, 각막·결막 상처도 빨리 아물어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익상편은 재발이 잦은 질환인데, 익상편을 떼어내는 수술 후 양막이식술을 시행하면 익상편이 잘 재발하지 않는다는 중앙대병원·한림대병원·동아대병원의 연구 결과도 있다. 중앙대병원에서는 유독성이 매우 강한 제초제인 그라목손이 눈에 들어가 각막 손상을 입은 환자를 양막이식술을 통해 후유증 없이 치료한 예도 있다.
과거에는 빠른 상처회복이 필요한 안과질환에 돼지 양막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종(種)이 달라 면역 거부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는 위험이 따랐다. 사람의 양막은 인체조직이라 거부반응이 없다.
양막이식술을 할 때 양막을 안구에 꿰매 직접 고정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콘택트렌즈 등을 이용해 가볍게 붙이는 방법을 사용한다. 병변에 콘택트렌즈 크기의 양막을 올린 뒤, 그 위에 시력교정용이 아닌 고정용 콘택트렌즈를 올리는 것이다. 환자는 퇴원하면서 콘택트렌즈를 계속 끼고 생활한다. 약 1주일이 지나면 양막은 녹아서 자연스럽게 없어진다. 콘택트렌즈는 병원에 가서 제거한다.
주천기 교수는 “양막은 다양한 장점이 있어 안과 영역은 물론 다양한 의료 분야에서 양막의 쓰임새는 계속 다양해질 것”이라며 “양막을 대체할 수 있는 재료가 현재로서는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인체조직기증 어떻게 이뤄지나
1 한국인체조직기증지원본부에 사후 조직 기증 의사 밝힘
2 사망 후 가족의 동의를 얻음(사전에 신청했더라도 가족이 동의하지 않으면 진행하지 않음)
3 전문인력이 투입돼 신체에서 조직 채취(채취 후에는 최대한 원상태로 복원해 훼손을 최소화하며, 장례비용 일부를 지원해줌)
4 병원을 통해, 조직이 필요한 환자가 치료를 받을 때 이용됨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인체조직은 인종 간 적합성이 중요해 자국 내에서 구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2013년 기준으로 인체조직의 78%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인체조직 기증을 원한다면, 한국인체조직기증지원본부에 조직을 기증하겠다는 ‘희망서약’을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