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칼럼
건강이라는 이름의 병
글 문국진 박사
입력 2016/09/15 17:00
사람 몸은 의학과 예술의 만남
1781년 로마의 에스퀼리노 언덕에서 조각상 <원반 던지는 사내>가 발견되었을 때 사람들은 놀랐다. 돌을 쪼아 만들었다고 보기에 어려울 정도로 실물에 가까운 대담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발견 당시에는 누구의 작품인지 알지 못했는데, 고고학자들의 노력으로 그리스 조각가 미론(Myron)의 작품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미론은 올림픽 5종경기의 원반시합하는 선수들을 보고 그 아름다운 육체에서 발산되는 건강미를 찬양하기 위해 작품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올림픽 경기 때마다 <원반 던지는 사내>를 올림픽대회의 상징으로 내걸곤 하기 때문에 이 조각상만 보면 운동이 건강을 몰고 온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심어주기도 한다.
인간의 욕망은 대부분 돈으로 해결될 수 있지만, 돈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것이 바로 건강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인간의 욕망을 미끼로 건강을 얻고, 유지하고, 촉진시킨다는 온갖 방법이 앞다투어 제창되고 있지만, 건강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왜냐하면 인간의 건강에 대한 욕망은 끝이 없기 때문이다.
괴로움 없는 일상이 곧 건강한 상태
역사적으로 위대한 힘을 지닌 권력자들이 영원한 생명과 건강을 얻으려고 백방으로 노력하지만 허사였다는 사실이 건강을 영원히 유지하는 방법이 없다는 명백한 증거다. 나이가 들면서 야기되는 혈관의 경화가 결국 노화라는 현상을 몰고 오게 되고 이 변화는 돌이킬 수 없는 즉, 비가역적(非可逆的)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사람은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것으로 설계된 생물임이 분명하다.
이런 견지에서 인간의 수명과 건강 문제는 불공평한 면도 있다. 어떤 이는 20세로 사망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100세까지도 산다. 과거에는 이것은 운명론과 결부시켰지만 지금에 와서는 유전자적 결과론으로 설명한다. 그렇다면 인간의 건강이라는 문제는 결국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되고 만다.
의학이 아무리 발전된다 할지라도 모든 병을 정복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의학의 노력으로 퇴치되어 과거의 병으로 돌려놓았던 결핵도 근래에 와서는 저항균이 생겨 병이 다시 증가되고 있음으로도 능히 알 수 있는 것처럼, 병은 퇴치되는 것 같지만 새로운 것이 또 생겨나기 마련이다. 따라서 질병을 완전히 소멸하고 병 없는 인간사회가 되기 어렵다.
따라서 인간은 질병과 공존하며 살아간다는 이해를 가질 필요가 있다. 즉, 건강은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해야 할 문제이다. 사는 목적이 무엇인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건강의 기준을 신체에 둔다면 신체 장애는 끊임없이 야기될 수 있기 때문에 불만이 해소될 날이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일상생활에 괴로움을 느끼지 않고 지낼 수 있는 것에 만족하고, 그런 육체에 감사하고 지내는 것이 곧 건강이라 생각하는 것이 현명한 삶일 것이다.
스스로 균형을 잡아가는 과정이 곧 건강
인간의 건강이 유전자적 요소에 의해 좌우된다고 하지만 질병 발병에는 환경적 요소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생활습관병처럼 자신의 노력에 의한 자기관리로 호전되는 병도 있다. 자기를 관리한다는 것은 절제를 요구하는 것인데, 오늘날처럼 식량이 풍부해 어디에서든지 맛있는 음식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여건에서는 규칙적인 운동으로 몸의 생리적 리듬을 조절해야 한다. 운동하지 않고 건강을 원하는 것은 염치없는 일로, 이것이 곧 ‘건강이라는 이름의 병’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건강이란 삶의 리듬이고 그 리듬의 평형상태가 스스로의 균형을 잡아가는 지속적인 과정이다. 즉, 노래 부르는 가수가 곡을 이해하고 가사를 암기했다 해도 기억한 가사가 생각나지 않으면 노래를 부를 수 없듯이, 노래 부른다는 것은 몸의 건강만이 아니라 마음도 건강하다는 심신 양면에서의 건강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를 잘 표현한 작품으로 프랑스의 화가 드가(Edgar Degas, 1834~1917)가 그린 <카페의 여가수>(1878)라는 그림이 있다. 노래 부르는 모습을 상당히 솔직하게 표현해 그 모습은 야성적이라 할 정도다. 이것이 바로 자연주의적 표현인데, 건강하지 못하면 노래를 부를 수 없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가수의 목과 몸이 온통 뒤틀리며 뱃속에서 우러나는 소리로 부르는 것으로 표현했다. 화가가 그림의 조화로운 분위기를 표현하기 위해 곧잘 사용하는 빨강·노랑·초록의 선을 그림 배경으로 그려 넣었다.
화가가 조화를 표현하기 위해 빨강·노랑·초록의 선을 사용한 것은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는 이 순간만큼은 다른 일은 제쳐두고 몸과 마음의 조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표현한 것으로, 건강도 모든 것을 제쳐놓고 신체와 정신의 조화가 필요하다는 관점과 일맥상통한다. 건강이 어떤 것인지를 잘 말해주는 그림으로 여겨진다.
질병과의 공존, ‘아파야 오래 산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감추어진 조화는 드러난 조화보다 언제나 강하다’라고 한 그의 유명한 말은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이 말을 두고 우리가 음악에서 또 하나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음악의 화음에서 오는 기쁨이다. 이것은 복잡한 음조가 불협화음에서 협화음으로 전개됨으로써 주어지는 기쁨이다. 우리 몸을 예로 든다면 숨쉬고 소화하고 잠자는 과정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이 세 과정이 주기적으로 조화로운 하모니가 유지된다면 생기와 활력을 얻을 수 있는 삶의 에너지가 저절로 생겨난다. 이것이 건강의 필수조건이며 과정이다.
그런데 이러한 몸의 생리적 리듬의 조화를 무시하고 감추어져 있던 ‘더 건강하고 싶다’는 욕망의 위험한 발상이 발동되면 그것이 곧 ‘건강이라는 이름의 병’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잘 볼 수 있는 예가, 어떤 사람이라도 건강의 표준적 가치기준을 확립하고 정할 수는 있다. 다양한 경험적 자료의 평균치를 내서 얻은 표준적 가치기준은 참고할 수 있으나 이를 곧 자기 건강을 규정하는 절대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되며, 이에 미달되면 그것이 곧 자기는 건강하지 못하다고 단정하면 감추어진 조화가 발동되어 그것이 ‘건강이라는 이름의 병’에 걸리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절대건강을 요구하는 한 의학은 난처해지며 일병식재(一病息災), 즉 무엇인가 어떤 병을 갖고 있을 때 그것으로 인해 몸을 조심하는 계기가 되어 병과 공존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 ‘건강이라는 이름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데에 이해가 된다면 이 글을 쓴 보람으로 여기겠다.
문국진
문국진 박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법의학자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법의학과 과장,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 교수, 뉴욕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 객원교수를 역임했다. 현재는 대한민국학술원 회원, 대한법의학회 명예회장,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평화교수 아카데미상, 동아의료문화상, 대한민국학술원상, 함춘대상, 대한민국과학문화상 등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