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우리 국민의 항생제 사용량을 줄이기 위해 분주하다. 지난 8월 11일 정부는 제86회 국가조정회의를 열고 ‘국가항생제 내성관리 대책(2016~2020)’을 확정했다. 대책의 목표 중 하나가 2020년까지 인체 항생제 사용량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으로 낮추겠다는 것이다. 감기에 대한 항생제 처방률은 지난해보다 절반으로 줄인다는 목표도 설정했다.
항생제는 각종 세균으로부터 우리를 치료해주는 기적의 발명품이지만, 오·남용으로 인한 내성 문제는 심각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에서는 항생제 오·남용을 막기 위해 2009년부터 ‘평원평가정보’를 통해 전국 병원의 항생제 처방률을 공개하고 있다. 그렇다면 항생제는 어떻게 사용할 때 문제가 되며, 국내 의료기관의 항생제 사용 현황은 어떨까? 전국 대학병원 중 어떤 곳이 불필요한 항생제 처방을 하지 않을까? 급성상기도감염(감기)에 항생제를 아예 쓰지 않는 병원은 어떤 이유로 그렇게 하는 것일까? <헬스조선>이 항생제 의문에 대한 해답과 함께, 의료기관별 항생제 사용 실태를 알아봤다.
■ 국내 의료기관의 항생제 오남용 실태
■ 동네 병의원 항생제 남용 심각
■ 항생제 0%, 100% 사용 병의원 리스트 공개
■ 40개 상급종합병원, 1045개 병원 항생제 사용표
PART 1. 항생제 바로 알기
항생제, 무엇이며 왜 필요한가
항생제는 병원성 세균을 죽이거나 증식을 막는 데 사용하는 약이다. 폐렴·파상풍처럼 병원성 세균 감염이 되었을 때 사용한다. 최초의 항생제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페니실린(1928년 개발)이며, 이후 현재까지 개발된 항생제 종류는 200가지에 달한다. 항생제는 임질이나 매독, 결핵 등 과거에 치료가 불가능했던 질환을 치료 가능하게 만들었다.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한 만큼, 인류 최고의 발명품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폐렴 등 항생제가 필요한 세균 감염에 항생제를 제때 쓰지 못하면 합병증이 생겨 사망하기도 한다.
항생제 오·남용, 병원균 내성 키우고 유익균도 없애
질병 치료에 유익한 항생제 사용을 경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내성(耐性) 때문이다. 병원성 세균이 항생제에 과도하게 노출되면 일부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돌연변이한다. 이것이 내성이다. 내성이 생긴 세균은 항생제에 잘 반응하지 않는다. 결국 항생제를 또 썼을때 내성이 있는 세균은 살아남아 증식하게 된다. 기존 항생제에 반응하지 않는 ‘슈퍼박테리아’도 나왔다. 슈퍼박테리아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항생제를 개발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항생제 개발 속도는 슈퍼박테리아 출현 속도를 따라잡기 힘든 상황이다. 제약사는 항생제 개발을 꺼리기도 한다. 항생제 개발에 드는 비용보다 수익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4년 항생제 내성에 관한 글로벌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대부분의 국가에서 항생제 내성 사례가 발견됐다. 대장균의 경우 제3세대(비교적 최근 개발된) 항생제인 세파로스포린계열에도 내성을 보이는 균이 발견된 국가가 86개국에 달했다. 86개국 중에는 한국도 있었다. 우리나라는 폐렴 입원 환자의 6~15%가 초기 항생제에 반응하지 않을 정도다. 국내 폐렴구균 보유 환자 51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5명이 폐렴 치료에 쓰이는 모든 항생제(페니실린·세파로스포린·매크로라이드·퀴놀론·클린다마이신·테트라사이클린)에 내성을 보였다는 조사도 있다.
내성을 불러오는 대표적인 행동이 가벼운 감기에 항생제를 처방받아 복용하는 것이다. 감기의 원인은 바이러스다. 세균 치료하는 항생제를 먹을 이유가 없다. 세균 감염이 없는 일반 감기에 항생제를 먹는 행동은 스스로 내성균을 키우는 것이다. 바이러스는 백신이나 항바이러스제로 예방·치료한다. 유행할 독감에 대비해 독감 백신을 맞는 이유다.
항생제 오·남용이 부르는 문제는 또 있다. 병원균 말고도 체내에 있는 유익균 때문이다. 항생제는 유산균 등 몸에 좋은 세균도 같이 죽인다. 장(腸)내에는 유익균과 유해균이 일정한 비율을 이루며 공존한다. 항생제를 자주 복용하면 이 비율이 깨진다. 면역력이나 비만 등에 관여하는 좋은 세균이 없어지고, 나쁜균이 많이 증식하면 음식 알레르기나 비만, 당뇨병 등이 생길 위험도 높아진다. 우리 몸은 장내 세균 비율을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어 항생제를 먹어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수 있다. 그러나 소아 등 노약자는 회복력이 성인만 못하다. 건강한 성인이라도 항생제를 과도하게 접하면 좋지 않다.
바이러스·세균 어떻게 다른가?
바이러스와 세균은 크기부터 다르다. 바이러스 크기는 30~300nm(나노미터, 10억분의 1m가 1nm)다. 세균은 바이러스보다 훨씬 큰 1~5㎛(마이크로미터, 100만분의 1m가 1㎛)다. 세균은 생물이다. 하나의 독립된 세포로 세포막과 세포벽, 핵, 단백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바이러스는 세균에 비해 단순한 구조다. 중간에 유전정보를 담은 핵이 있고 이를 단백질이 둘러싸고 있다. 항생제는 세균의 세포를 터뜨려 세균을 죽이지만 세포가 없는 바이러스에는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다.
PART 2. 국내 의료기관의 항생제 사용 실태
항생제 처방률, 낮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높은 편
한국은 항생제 사용량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높은 편에 속한다. OECD 평가(OECD Health Data 2014)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항생제 사용량은 28.4DDD다. DDD는 국민 1000명 중 매일 항생제를 복용하는 사람의 수로 생각하면 된다. OECD 국가 평균 수치는 20.3DDD다. 또한 스웨덴은 15.5DDD, 독일은 14.8DDD, 칠레는 9.4DDD로 낮은 편이다.
심평원은 항생제 오·남용을 막기 위해 2009년부터 ‘평원평가정보’를 통해 전국 병원(의원, 병원, 종합병원, 상급종합병원 등 모두 포함)의 항생제 처방률을 공개하고 있다. 그 결과 급성상기도감염 항생제 처방률은 2002년 73.64%였지만, 2015년(하반기) 43.52%로 낮아졌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이 정도면 불필요한 항생제 처방률이 효과적으로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병원 정보 공개가 큰 효과 있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심평원이 급성상기도감염 항생제 처방률을 중요 지표로 공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심평원 평가2부 이태숙 부장은 “급성상기도감염은 외래에서 발생빈도가 높고, 항생제 오·남용 우려가 있어 적정 사용에 대한 관리가 필요하다”며 “대부분 바이러스가 원인으로 일부 세균감염이 의심되는 경우 외에는 항생제 복용이 불필요하다”고 말했다. 백경란 삼성서울병원 감염내과 교수도 “바이러스질환인 감기에 세균 잡는 항생제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며 “폐렴·축농증 등 2차 합병증이 생겼을 때만 써야 한다”고 말했다. 장희창 전남대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상기도감염에서 항생제를 써야 하는 경우는 보통 10명 중 1명 이하라, 중요한 지표”라고 말했다.
2015년 하반기 기준, 병원을 규모별로 나눴을 때 상급종합병원의 급성상기도감염 항생제 처방률은 평균 19.13%이었다. 종합병원과 의원은 각각 41.1%와 43.3%로 전체 평균 처방률인 43.52%보다 낮았다. 병원은 48.1%로 비교적 높은 처방률을 나타냈다. 이재갑 교수는 이에 대해 “상급종합병원의 처방률이 낮은 이유는 감기로 상급종합병원을 찾는 일은 거의 없어서일 수도 있고, 상급종합병원에는 보통 항생제 사용 모니터링 시스템이 존재하고 있어서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한 심평원의 2015년 급성상기도감염 항생제 처방률 공개에 따르면, 병원의 항생제 처방률은 5개 등급으로 나뉜다. 1등급부터 5등급까지 있으며, 등급 숫자가 작을수록 항생제 처방을 적게 하는 의료기관이다. 1등급은 백분위 순위 40 이하(처방률 0~28.34%), 2등급은 백분위 순위 40 초과에서 55 이하(처방률 28.35~41.14%), 3등급은 백분위 순위 55 초과에서 70 이하(처방률 41.15~54.89%), 4등급은 백분위 순위 70 초과에서 85이하(처방률 54.9~69.07%), 5등급은 백분위 순위 85 초과에서 100 이하(처방률 69.08~100%)다. 평가기간 내 급성상기도감염 진료건수가 100건 미만인 의료기관은 제외했다.
상급종합병원 항생제 처방률 낮다
전국 40개 상급종합병원의 2015년 하반기 항생제 처방률 평균은 19.13%로 타 의료기관에 비해 낮았다. 이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상급종합병원 중 대부분(33개)은 항생제 처방률 1등급을 부여받았고, 8개 의료기관만 2~3등급으로 분류됐다. 서울대학교병원(13.08%),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12.85%), 삼성서울병원(14.31%),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2.97%), 서울아산병원(17.29%) 등 이른바 ‘빅5’ 병원의 항생제 처방률은 낮은 편에 속했다. 상급종합병원 중 항생제 처방률이 가장 낮은 병원은 전남대학교병원 (0.65%)이었다. 고대안암병원(2.42%), 고신대병원(2.92%)이 그 뒤를 이었다. 그러나 울산대학교병원·부산대학교병원·부산백병원·전북대학교병원·동아대학교병원은 2등급, 한양대학교병원·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원광대학교병원은 3등급으로 상급종합병원 중에서는 항생제를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한양대병원의 관계자는 항생제 처방률이 높은 이유에 대해 “처방률 등급에 대한 자료가 2015년도 것인데, 이를 병원 측에서 알게 된 이후부터는 항생제 사용 지침을 개발해 배포하고 내성정보를 교류하는 등 저감 노력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는 처방률이 많이 낮아진 상태”라고 말했다.
전남대병원의 장희창 교수는 항생제 처방률이 낮은 이유에 대해 “급성상기도감염에 대해 어떤 경우에 항생제를 쓰거나 안 써도 되는지의 기준을 의사가 정확히 알아야 항생제 처방률을 줄일 수 있다”며 “전남대 의대에서는 수년전부터 의과대학 교육과정을 개편해 급성상기도감염에서 항생제 투여 여부 기준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항생제 과잉처방을 피하는 진료를 습관화하고 있어 이러한 결과가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전국 의료기관 항생제 사용 실태 & 항생제 왜 주의해야 하나? ①
전국 의료기관 항생제 사용 실태 & 항생제 왜 주의해야 하나? 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