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칼럼

약 때문에 입맛이 떨어졌다면?

글 정재훈(약사) | / 사진 셔터스톡

약藥문問약藥답答

끝이 보이지 않던 여름도 지나가고, 가을 문턱이다. 더위에 지친 미각이 마땅히 다시 살아나야 할 천고마비의 계절에도 좀처럼 입맛이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있다. 미각 이상 때문이다. 미각 이상의 원인은 여러 가지다. 나이가 들면서 미각이 둔해지기도 하고, 비염이나 기타 호흡기질환으로 후각 이상으로 맛을 제대로 못 느낄 수도 있고, 흡연이나 구강질환이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혹시 내가 복용 중인 약 때문에 입맛이 떨어질 수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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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 치료를 위해 복용 중인 약이 입맛을 떨어뜨리다니, 이런 고약한 경우가 어디 있나 싶지만, 약 때문에 미각 이상이 생기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약이 미각세포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질병 치료를 위해 복용 중인 약이 입맛을 떨어뜨리다니, 이런 고약한 경우가 어디 있나 싶지만, 약 때문에 미각 이상이 생기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약 자체가 맛이 고약한 경우다. 약을 먹으면 한 곳으로만 가는 게 아니고 몸 전체로 퍼지는데, 이 과정에서 일부가 혀의 미각세포까지 도달하면 (분명히 삼켜버린 약인데) 그 맛이 혀에서 느껴지는 것이다. 당뇨병 치료약 중에서 메트포르민은 치료 효과가 우수하고 비교적 안전하며 체중을 늘리는 부작용이 없어서 많이 쓰이는 약인데, 맛과 냄새가 참 고약하다. 간혹 입안에 금속성 맛이 나는 부작용을 경험했다는 사람도 있고, 마치 녹슨 못을 빠는 듯한 맛이 느껴진다고 불평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가 하면, 미각을 느끼는 신경 체계에 영향을 주어서 맛을 못 느끼거나 이상하게 느끼도록 만드는 약도 있다. 혈압약 중에 ACE억제제, 안지오텐신차단약(ARB), 칼슘차단약, 이뇨제 등이 그렇다. 그중 캡토프릴이라는 혈압약은 최근에는 많이 쓰지 않는 약이지만, 예전에 많이 사용될 때는 이 약의 부작용으로 미각 이상을 겪는 사람이 많았다. 자료에 의하면 이 약을 복용 중에는 맛을 아예 못 느끼게 될 수도 있고, 또는 쓴맛이나 짠맛을 느끼게 되는 부작용을 경험할 수도 있는데, 심지어 단맛이 나는 음식을 먹었는데 짠맛이 나기도 한다. 일부 항생제와 우울증치료제,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기 위해 쓰는 스타틴 계열의 약도 이와 비슷하게 미각 이상을 일으킬 수 있다.

 

약이 침을 말려 맛을 못 느끼는 경우도 있어
끝으로 약 때문에 침이 말라서 맛을 느끼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구강건조증은 말 그대로 입안이 말라 구강 점막이 갈라지거나 함몰이 생기는 것을 말한다. 건강한 성인의 입속에서는 하루에 1000∼1500mL 정도로 많은 양의 침이 분비된다. 내가 언제 그렇게 많은 침을 흘렸는지 의아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침은 주로 음식물 씹는 도중에 나오며, 수면이나 안정을 취할 때는 소량만 분비되어서 침 흘린 기억이 없는 것이다. 음식 먹을 때 맛을 제대로 느끼려면 침이 꼭 필요하다. 음식 맛을 내는 성분이 먼저 입안에서 침에 녹아야 혀의 미뢰에 있는 감각세포가 맛을 감지할 수 있다. 침이 말라버리면 음식 맛을 느끼기 어려워진다. 침 속에는 리소자임이라는 살균효소가 들어 있어서 입속 세균의 번식을 억제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침으로 인한 자정작용이 효과적으로 이뤄지지 않으면 충치가 발생하기 쉽고, 구강 점막 감염 및 치주염 발생 위험도 높아지며, 심지어 입안에 곰팡이가 피어날 수도 있다. 침이 잘 분비되지 않으면 미각 이상뿐만 아니라 음식 먹기도 힘들어지고, 말하기도 어려워진다.

침이 마르는 구강건조증은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는 심각한 문제다. 나이 들면서 생기는 만성질환이 구강건조증의 원인이 될 때도 있지만, 가장 흔한 원인은 약이다. 현재까지 500개 이상의 약물이 타액 분비를 감소시키거나 타액 조성을 변화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우울증 치료약 가운데 삼환계 항우울제(TCA)라는 종류의 약은 짠맛이나 단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미각 이상에 더해서 입안이 건조해지는 구강건조 증상이 함께 있을 수 있는데, 이런 경우 실제로 입냄새가 나기도 하지만, 실제 입냄새가 안 나는데 미각 이상으로 인해 입 냄새가 난다고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있다. 전립선 비대증에 사용하는 알파차단제라는 약도 때때로 구강건조증의 원인이 된다. 이런 약물이 차단하는 교감신경이 전립선뿐만 아니라 침샘에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밤에 전립선비대증 치료약을 먹고 아침에 일어났더니 입이 마르고 입맛이 없더라고 이야기하는 환자가 과민한 게 아니라, 약이 정말로 그런 부작용의 원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약의 구강건조증 부작용을 경험하는 가장 흔한 경우는 감기약을 먹고 난 뒤다. 종합감기약에는 보통 ‘1세대 항히스타민제’라 불리는 약 성분이 들어 있는데, 이런 항히스타민제에는 침의 분비를 줄이는 항콜린 작용이라는 부작용이 있다. 콧물만 말리면 좋은데, 입속의 침도 함께 말리는 셈이다. 감기로 입맛이 줄었을 때는, 감기 때문에 입맛이 떨어진 것인지, 감기약 때문에 입이 마른 것인지 생각해볼 일이다. 마찬가지로, 요실금치료에 쓰이는 약에도 항콜린 부작용이 있어서 구강건조증이 나타난다.

 

장기 복용 시 몸이 미각 이상에 적응해
약으로 인해 입맛이 줄어들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항생제를 1~2주 짧게 사용하는 경우처럼 단기간 약을 써야 할 때는 그냥 참고 복용하는 게 제일 쉬운 해결책이다. 약으로 인한 미각 이상은 매우 성가신 부작용이지만, 대부분의 경우 약을 끊고 2~3주가 지나면 미각 이상이 사라진다. 반대로 우울증 치료약이나 당뇨병치료제처럼 약을 오랫동안 꾸준히 복용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이런 부작용이 걱정거리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다행히 대부분의 경우, 약을 계속 복용하면, 몸이 적응하면서 미각 이상 같은 부작용은 점차 줄어들어서 나중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진다. 앞서 언급한 당뇨병 치료약 메트포르민은 처음에는 간혹 미각 이상을 일으킬 수 있지만, 복용한 지 짧게는 1주일에서 길게는 한 달 정도가 지나면 미각 이상이 사라진다. 이 사이 적응 기간에는 무설탕 껌이나 캔디, 또는 얼음을 입에 넣고 서서히 녹여 먹으면 불쾌한 맛을 덮을 수 있다. 신맛이 나는 음료수가 일시적으로 다른 맛을 덮는 마스킹 효과를 내어 도움이 될 수 있다.

약으로 입이 마르는 경우에도, 입안을 소량의 물로 자주 적셔주거나 무설탕 껌이나 캔디를 사용하면 도움이 된다. 설탕이 들어 있는 캔디는 입속의 세균도 먹이로 사용할 수 있어서 좋지 않다. 무설탕 캔디나 껌에는 자일리톨이나 솔비톨 같은 당알코올 성분이 들어 있는데, 이런 것들은 단맛이 나면서도 입속의 미생물은 먹이로 쓸 수 없는 것들이라 입안에 침이 돌도록 자극하면서도 충치를 일으키지 않는다. 자일리톨 같은 경우 충치 예방 효과도 있다. 그러나 이런 당알코올이 장에 가면 미생물에 의해 발효되기 때문에 너무 많이 먹으면 설사나 복통의 원인이 될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구강건조증이 심한 경우 처방약이 필요하다. 필로카핀이라는 알약을 복용하면 침 분비를 자극해서 도움이 될 수 있고, 입안에 인공타액을 뿌려주는 것도 입안 점막에 수분을 유지시켜주고 구강건조증을 완화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약으로 인한 미각 이상이 너무 심해서, 복용 중인 약을 끊고 다른 약을 바꿔주고 나서야 비로소 입맛이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전문가와 상담 없이 약을 임의로 중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입맛을 돌아오게 하려다가 잘 관리되던 만성질환이 도로 악화되는 불행한 사태가 생길 수 있다. 약으로 인한 미각 이상이 의심된다면, 우선 가까운 병원이나 약국을 방문해서 상담을 받아보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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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약사

정재훈
과학·역사·문화를 아우르는 다양한 관점에서 약과 음식의 이면에 숨겨진 사실을 탐구하는 데 관심이 많은 약사다. 현재 대한약사회 약바로쓰기운동본부 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방송과 글을 통해 약과 음식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대중에게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정재훈의 생각하는 식탁》이 있다. 경기도 분당 정자동에서 ‘J정약국’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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