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 속 와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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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지오의 <바커스>

로마 신화 속 와인의 신 ‘바커스’

흰색 천을 걸친 한 남자가 머리에는 포도 덩굴로 만든 장식을 쓰고 왼손에 붉은 포도주를 담은 유리잔을 들고 있습니다. 그의 앞에는 포도를 비롯한 과일을 담은 바구니와 와인이 든 유리병이 놓여 있습니다. 누울 수 있는 안락의자가 붙은 식탁인 트리클리니움(Triclinium)도 보입니다. 이를 통해 이 작품이 고대 로마가 배경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어의 ‘에이콘(그림)’과 ‘그라페인(그리다)’의 합성어에서 유래한 도상학(圖像學, Iconography, 아이코노그래피)은 예술 작품이 지니고 있는 의미를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로마신화 속 와인의 신 바커스(Bacco)의 도상학에 따르면, 바커스는 벗은 몸으로 포도잎 왕관을 머리에 쓰고 손에는 포도송이와 와인잔을 들고 있습니다. 바로 위 작품 속 인물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이 작품은 이탈리아 우피치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바로크 양식의 대표적인 작가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지오(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71~1610)의 <바커스(Bacco, 1596~1597)>입니다.

 

그림 속 와인의 재료는 산지오베제 포도

작품 속에서 바커스가 마시고 있는 와인은 무엇일까요? 고대 그리스인은 이탈리아를 ‘포도의 땅’이라는 의미의 이노트리아(Oenotria)로 불렀습니다. 이탈리아에는 기원 전에 재배되던 토착 품종의 포도가 현재까지 재배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에는 현재 1000여 종의 양조용 포도가 재배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그중 위 작품을 소장한 우피치 미술관이 위치한 토스카나(Toscana) 지역의 토착 품종인 산지오베제(Sangiovese)는 고품질 와인의 재료로 쓰입니다.

바커스와 함께 로마 신화 속에 등장하는 신들의 왕이자 하늘을 주관하는 주피터(Jove)와 상피(Sanguis)의 라틴어를 합성한 산지오베제는 ‘주피터의 피’라는 별명을 갖고 있습니다. 산지오베제로 만들어진 와인은 신선한 딸기와 블루베리, 시큼한 체리와 함께 약간의 향신료 풍미가 납니다. 오크통에서 숙성하면 나무와 타르의 풍미를 더합니다. 이번 호에는 산지오베제 품종으로 만드는 토스카나의 대표 와인을 소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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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케제 안티노리 키안티 클라시코 리제르바 (Marchese Antinori, Chianti Classico, Riserva)

오크의 풍미가 풍부한,
마르케제 안티노리 키안티 클라시코 리제르바

토스카나의 와인 명문가로는 1385년부터 지금까지 26대에 거쳐 가족 경영을 해오고 있는 안티노리(Antinori)를 꼽을 수 있습니다. 안티노리의 대표적인 와인은 티냐넬로(Tignanello)입니다. 와이너리가 속해 있는 키안티(Chianti) 지역에서는 산지오베제 품종 70% 미만에 화이트 품종을 10% 이상 블랜딩해서 만들어야만 높은 등급을 받을 수 있었지만, 티냐넬로는 규정에 맞지 않는 비율로 1971년 그들의 첫 번째 빈티지를 가장 아래 등급인 IGT로 생산합니다.

계속되는 연구 끝에 티냐넬로는 1982년부터 각각의 빈티지마다 비율은 약간 달라지지만 산지오베제 80%에, 국제 품종인 카베르네 소비뇽과 카베르네 프랑 20%를 블랜딩하여 만듭니다. 이는 현재 키안티의 규정에 영향을 미쳐 티나넬로는 가장 윗 등급인 DOCG를 받을 수 있지만 여전히 상징적으로 IGT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반면, 안티노리 가문에서 티냐넬로와 매우 흡사하지만 가장 윗 등급인 DOCG의 와인도 만들어집니다. 마르케제 안티노리 키안티 클라시코 리제르바(Marchese Antinori, Chianti Classico, Riserva, 이하 키안티 클라시코)는 티냐넬로와 같은 포도밭에서 재배된 포도로만들어질 뿐만 아니라 블랜딩 비율 역시 흡사합니다. 2010 빈티지로 비교했을 때 티냐넬로는 산지오베제 80%에 카베르네 소비뇽 15%와 카베르네프랑 5%, 그리고 키안티 클라시코는 산지오베제 90%에 카베르네 소비뇽이 10%로 블랜딩됩니다.

키안티 클라시코 2010은 글라스 안에서 조금 옅은 강도로 가넷색을 띱니다. 오픈 직후 후각으로 약하게 블랙 커런트와 라즈베리가 먼저 느껴지며, 뒤로 바닐라와 연기 등의 오크 풍미가 강하게 느껴집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좀더 진한 과실과 함께 보라색의 제비꽃 풍미가 활짝 피어 오릅니다. 입안에서 잘 익은 붉은 딸기로 시작되어 향신료, 담배와 바닐라를 지나 짭조름한 미네랄의 풍미로 마무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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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텔라 디 캄팔토 로쏘 디 몬탈치노 (Stella di Campalto, Rosso di Montalcino)

섬세함과 우아함을 지닌,
스텔라 디 캄팔토 로쏘 디 몬탈치노

토스카나 지역에서 비교적 최근에 시작되어 주목받는 와이너리로는 스텔라 디 캄발토가 있습니다. 1910년부터 와인 재배가 되던 포데레 산 쥐세페((Podere San Giuseppe) 와이너리는 제2차 세계대전 중 황폐화되었고, 이후 1992년 스텔라가 매입하면서 와이너리명을 그녀 이름으로 바꾸어 다시 포도 재배가 시작됩니다.

스텔라는 바이오다이내믹(Biodynamic) 농법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2005년 인증서를 획득해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Brunello di Montalcino, 이하 부르넬로)의 새로운 스타일을 완성합니다.

부르넬로의 법적 숙성 기간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긴 5년으로 복합미 있는 스타일의 와인입니다. 짧은 숙성을 거쳐 과실 풍미를 살린 로쏘 디 몬탈치노(Rosso di Montalcino)도 있습니다. 스텔라 디 캄팔토 로쏘 디 몬탈치노(Stella di Campalto, Rosso di Montalcino, 이하 로쏘 디 몬탈치노)는 산지오베제 100%로 만들어집니다.

후각으로 아름다운 장미 꽃잎으로 시작되어 말린 붉은 체리가 느껴집니다. 입안에서 다소 가벼운 무게로 잘 익은 라즈베리, 민트와 향신료 등의 풍미가 오밀조밀하게 모여 실키한 질감을 보여주며, 좋은 산도와 함께 미네랄로 마무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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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희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공예문화정보디자인학과 강사 겸 금속공예작가로 개인전을 5회 개최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금속공예와 주얼리를 전공했고, 템플대학교에서 CAD–AM 학위를 받았다. 영국 와인전문교육기관 WSET를 수료한 와인 전문가다.

 




글 서민희(서울과학기술대학교 강사, 금속공예작가) | / 사진 셔터스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