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칼럼
혈관에 공기 얼마나 들어가면 위험할까?
글 문국진 박사
입력 2016/06/28 13:17
사람 몸은 의학과 예술의 만남
프랑스의 시인이자 소설가, 극작가, 화가이며 영화감독까지 겸한 장 콕토(Jean Cocteau, 1889~1963)의 <수혈>(1950년경)이라는 미술도자기 작품이 있다. 제목은 <수혈>인데 포옹하고 있는 두 남녀가 5개의 수혈관을 입에물고 혈관 아닌 입으로 수혈하고 있는 모습이다. 관내의 붉은 점은 적혈구를, 그리고 그림을 둘러싼 둥근 관내의 푸른 점은 정맥혈을 표현했다. 1950년대 피크에 달했던 헌혈운동의 중요성을 알리고 있는데, 헌혈은 마치 남녀간의 사랑처럼 사람을 생기발랄하게 구현해내 헌혈을 촉진하는 데 크게 한몫을 했다.
필자가 이 작품을 보면서 생각한 것은, 수혈이나 수액(輸液)이 응급환자를 비롯해 위험한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치료방법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지나칠 정도로 수액치료를 실시하다보니 이를 돌봐주는 간호사 수가 모자라 환자나 그 가족이 수액튜브를 통해 공기방울이 들어가는 것을 보고 소리쳐도 간호사에게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환자 측은 생명의 위험을 느껴 강력히 항의해 병원 측과 마찰이 야기되기도 한다.
아무튼 공기가 혈관을 통해 자기 몸 안에 들어간다는 것은 누구를 막론하고 심각한 일이다. 일손이 모자란다는 것이 공기 주입의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없고, 또 몇 방울의 공기는 결코 생명에 지장이 없다는 주장만을 내세워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공기가 혈관을 어느 정도 통해 들어가면 사람이 죽는가’라는 질문을 필자에게 하는 사람이 많다.
시장바구니 들고 길에서 사망한 30대 주부
이 문제에 답이 될 사람을 통해 실험한 성적은 없기 때문에 누구라도 정확한 답을 할 수 없다. 그러나 혈관주사기나 수액튜브의 공기가 몇 방울 들어갈 정도로는 사람이 죽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비공개된 것이지만, 일본군이 중국을 침략했을 때 포로들의 사형을 집행하는 데 혈관에 공기를 주입하여 실행하였다고 한다. 이때 포로들에게 약 200cc 공기를 주입하니까 사망하더라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비공개 자료는 신빙성이 없다고 좀더 확실한 설명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에는 필자가 감정한 사례를 설명해주곤 한다. 30대 주부인 S씨가 장을 봐서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시장바구니를 든 채 쓰러져 갑자기 사망한 사건의 사인구명을 위한 감정을 의뢰받은 일이 있다. 가족들은 S씨가 평소에 매우 건강하여 죽을 만한 신체적 이상이나 주위 환경 등이 하나도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S씨를 부검했더니 몸에 외상이 없고, 내부검사에서도 사인이 될 만한 특별한 소견은 발견할 수 없었다. 단지 이상이 있다면 자궁이 임신 3개월 정도로 커져 있었고 그 내막(內膜)에는 신선한 손상, 즉 소파술을 시행한 흔적이 있을 뿐이었다.
분명히 사람은 죽었는데 그 사인이 될 만한 어떤 소견을 발견하지 못한다는 것은 부검을 담당한 의사로서는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말로 사인이 될 만한 변화가 없는 것인지, 아니면 사실은 어떤 변화가 있는데 그것을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인지 몹시 고민하게 되며 이를 해소하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리곤 한다.
아무튼 S씨 사건이 마음에 걸려 있었는데, 하루는 미국의 한 잡지에서 아기를 낳은 산모 기사를 읽게 됐다. 출산 후 자궁의 수축을 속히 촉진시키기 위해 가슴과 무릎을 바닥에 대고 엉덩이를 높이 처드는 슬흉위(膝胸位, Kneechest Posture)를 취하던 산모가 갑자기 쓰러져 사망해 부검했더니, 공기가 혈관 내로 들어가 혈액순환이 막히는 공기색전(空氣塞栓, Air Embolism)이 사망원인으로 밝혀진 내용이었다. 슬흉위는 태아를 낳아 확장된 자궁을 빨리 제자리에 돌아가게 하기 위해 취하는 체위(體位)로 흔히 실행하는 방법이다.
소파술 후에 매우 드물게 공기색전 생길 수 있어
이물이 혈관 내에 들어가 혈관이 막히는 것을 ‘색전(塞栓)’이라 하며, 그 원인이 공기면 ‘공기색전’이라고 한다. 이에 필자는 크게 자극을 받았다. 왜냐하면 S씨의 사인도 소파술 후에 온 공기색전일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S씨의 사건이 있은 지 약 3년이 지난 어느 가을 S씨 사건의 내용과 비슷한 또 하나의 사건이 발생되었다. 30대 후반의 주부 K씨 역시 시장에서 집으로 가던 길에 시장바구니를 쥔 채 길가에서 사망한 것이다. S씨 경우를 생각하여 부검하기 전에 충분한 상황 설명을 그 남편에게서 듣기로 했다. 그런데 K씨는 S씨와는 달리 임신한 사실이 없었다. 그러나 만일을 위하여 시체를 절개(切開)하기 전에 질경을 사용하여 자궁 상태를 검사하니 자궁은 임신 2개월 정도로 비대해 있었고, 역시 소파술을 받은 흔적이 발견됐다. K씨의 부검은 술식(術式)을 달리하기로 했다.
K씨의 경우 공기색전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심낭(心囊)을 절개하여 그 속에 물을 부어 관찰했다. 심장을 칼로 찌르는 순간 크고 작은 기포가 솟아올랐다. 즉 K씨는 공기색전으로 사망한 것임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여성들 가운데는 자신이 임신한 사실을 남편이나 주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지 않고 혼자 병원에 가서 유산 수술을 받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시장에 다녀오는 것처럼 보이기 위하여 시장바구니를 들고 나가는 것 같다. 물론 소파술을 받는다고 해서 모두 공기색전을 일으키는것은 아니며, 그 빈도는 그야말로 극히 낮다.
르누아르 <우산들> 속의 시장바구니 든 여인
다시 사람 혈관에 어느 정도의 공기가 들어가야 공기색전이 야기돼 사망하는지의 문제로 돌아가, 일본군의 사례로 부족한 사람에게는 K씨의 감정 사례로 납득시키려했다. 인상파 화가가 르누아르(Auguste Renoir, 1841~1919)의<우산들>(1888)은 비오는 날 사람들이 우산 쓰고 있는 것을 주제로 한 그림이다. 그림 중심의, 푸른 옷을 입고 우산을 쓰고 눈을 지그시 아래로 깔고 있는 여인은 르누아르의 단골 모델인 여배우 에렌 안리오로 추측된다.
왼쪽에 우산을 쓰지 않고 시장바구니를 끼고 있는 여인은 생김새로 보아 잔느 사마리인 듯하다. 잔느 사마리 역시 르누아르의 단골 모델이었는데, 그림 속의 그녀는 미인은 아니지만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주위의 분위기를 잘 살리고 있으며, 표정은 독자적인 매력을 나타내고 무언의 눈동자에서 어떤 사연이 있는 이야기를 곧 꺼낼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면서도 지적인 유혹감도 있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지 더욱 궁금해져 필자는 주제인 우산이나 화면 중심의 여인보다는 왼쪽의 바구니 낀 여인에게 시선이 더 간다. 왜냐하면 필자는 이렇게 젊은 여성이 시장바구니를 끼고 있는 모습을 보면 직업의식이 발동되어 뇌리를 스치고 지나는 S씨와 K씨의 사건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사회 강연이나 학생을 대상으로 강의할 때 이 그림을 제시하며 이렇게 젊은 여성이 시장바구니를 들고 길가에 쓰러져 사망한 감정을 맞게 되면 반드시 자궁검사를 하고 공기색전을 확인하는 부검 술식을 택하라고 한다.
문국진
문국진 박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법의학자다. 서울대학교의대를 졸업하고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법의학과 과장,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 교수, 뉴욕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 객원교수를 역임했다. 현재는 대한민국학술원 회원, 대한법의학회 명예회장,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평화교수 아카데미상, 동아의료문화상, 대한민국학술원상, 함춘대상, 대한민국과학문화상 등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