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칼럼

귀약을 눈에 넣으면 안 되는 이유

글 정재훈(약사)

안약을 귀에 넣어도 될까? 캐나다 토론토에서 신참 약사로 일하던 어느 날, 정말 그런 처방이 나왔다. 환자가 내민 처방전에는 안약을 귀에 넣으라는 의사의 지시가 적혀 있었다. 처음 본 처방이라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의사가 실수로 처방 지시문을 잘못 적은 건 아니었다.

안약을 귀에 넣는 것은 가능하다. 눈은 약을 투여하는 신체 부위 가운데 가장 민감한 곳이어서, 안약을 만들 때는 조건이 매우 까다롭다. 눈을 자극하는 성분이 들어가서는 안 되고, 산도나 농도를 될 수 있으면 눈물과 비슷한 정도로 맞춰주어야 하며, 무엇보다 제조과정에서 균에 오염되지 않도록 멸균시설에서 만들어야 한다. 필요할 경우, 안약을 귀에 한두 방울 넣어도 무방한 이유다.

실제로 귓속에 세균 감염이 있어서 특정한 항생제를 써야하는데 시판 중인 귀약(점이제)이 없는 경우에는 안약을 귀에 쓸 수도 있다. 이런 환자가 많다면야 제약회사에서 따로 귀약을 만드는 게 낫겠지만, 드문 있는 일이라 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경우에만 안약을 귀약으로 쓰게 된다. 단, 의사가 지시한 경우에 한해서이지, 환자 마음대로 어떤 안약이든 귀에 넣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귀약은 멸균공정 거치지 않는다

반대로 귀약을 눈에 넣어도 될까? 그랬다가는 큰일 난다. 귀에 넣는 점이제는 안약과는 달라서 멸균공정을 거쳐야 하는 약이 아니다. 게다가 귀가 눈만큼 민감하지도 않다. 모르고 귀약을 눈에 넣었다가는 자극감이나 통증 등의 부작용을 느낄 수 있다. 여기에도 예외는 있다. 제조사에서 원래부터 눈과 귀에 둘 다 쓰는 것을 염두에 두고, 양쪽으로 다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점안·점이 겸용 약이 있다. 그런 약은 눈에도 사용하고 귀에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사용하는 양은 각기 다르다. 귀는 약을 두세 방울 떨어뜨려도 충분히 수용할 수 있지만, 눈은 약을 한 방울만 넣어도 받아들일 공간이 부족하다. 안구 주변에 잡아둘 수 있는 눈물의 양은 0.03mL에 불과하다. 보통 안약 한 방울의 용량이 0.05mL이니 한 방울만 떨어뜨려도 절반은 흘러넘치는 셈이다. 깜박거리면 눈이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은 더 줄어들어서, 겨우 0.007mL가 된다. 눈에 약을 넣을 때 한 방울만 떨어뜨리고, 눈을 깜박거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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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셔터스톡

질좌약과 항문좌약은 녹는 방식 달라

약이 원래 용도와 다르게 쓰이는 경우는 안약을 귀에 쓰는 경우 말고도 종종 있다. 예를 들어 물과 함께 복용하는 정제를 질정처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특정한 약 성분이 들어간 질좌약을 사용해야 하는데, 따로 제약회사가 만들 정도로 자주 쓰이는 용도가 아니라서 시중에 약이 없을 때, 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먹는 알약을 질좌약으로 넣어주도록 하는 것이다. 원래 먹는 약을 좌약처럼 쓰는 게 걱정스러운 환자들도 있겠지만, 이 경우도 큰 문제는 없다.

하지만 항문에 넣는 좌약을 질정으로 사용할 수는 없다. 두 종류의 좌약이 작동하는 원리가 다르기 때문이다. 보통 항문에 넣는 좌약은 체온에서 녹는 방식이라서 카카오 지방 같은 지방을 이용하지만, 질좌약은 일반 정제처럼 물에 녹아서 약성분을 내보내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약은 그 제형에 따라 원래 용도와는 다른 방식으로 안전하게 쓸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위험하거나 피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약이 몸으로 들어가는 길이 달라지면 그 길이 안전한지 먼저 점검부터 해봐야 한다.

본래 용도를 벗어난 사용법이 위험을 초래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정로환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설사에 사용하는 정로환을 빙초산과 물에 개어서 발을 담그면 무좀이 낫는다는 잘못된 정보를 듣고, 실제 그대로 따라했다가 피부손상, 화상과 같은 해를 당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캐나다 약국에서 일할 때는 더 황당한 일도 있었다. 우리나라는 보통 술을 판매하는 데 큰 제한이 없지만, 캐나다에서는 알코올 중독자에게는 술 판매 자체를 금지할 수 있다. 그런데 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고 있어서 술을 구입할 수 없던 한 환자가 어느 날 약국에 와서, 구강청정제를 사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술 냄새를 폴폴 풍기며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위장약을 찾으며 약국에 돌아왔다. 재활치료를 받던 중, 알코올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구강청정제를 마셔버린 것이다.

입을 헹군 다음 뱉어내도록 만들어진 구강청정제를 마셨으니 위를 자극하는 성분 때문에 속이 뒤집어지는 고통을 피할 수 없었고, 다시 약국을 찾아온 그를 보며 앞으로 환자에 따라서는 구강청정제를 주는 것도 조심해야겠다는 다짐을 한 기억이 난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서 얻는 교훈

가습기 살균제 사건 때문에 온 나라가 분노하고 있다. 보도된 바에 따르면 이번 사태로 지금까지 무려 1500여 명이 피해를 입었고, 이 중 239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많은 전문가들은 가습기 살균제가 이렇게 비극적인 결과로 이어진 한 가지 이유로 제조사가 가습기 살균제의 사용 방법에 대해 잘못된 정보를 제공한 것을 지적하고 있다.

비누로 손을 씻는 것과 비눗물을 마시는 것은 다르다. 가습기 살균제로 물통을 세척하는 것과 물통에 가습기 세척제를 넣고 그걸들이 마시는 것 역시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일부 가습기 살균제에 사용된 CMIT와 MIT라는 성분은 일부 샴푸에도 들어 있다. 머리를 감고 물로 충분히 헹구어내면 제거할 수 있으니 별 문제가 없으나 바르는 로션에 이런 성분이 들어 있으면 곤란하다. 피부와 접촉하는 시간이 길기 때문이다.

그래서 CMIT와 MIT 성분은 샴푸에는 허용되지만, 바르는 화장품에는 허용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같은 성분을 들이마시는 것은 어떨까? 피부에 남았을 때 자극이 있는 성분이라면 흡입할 때도 해로울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국립환경과학원의 자료에 보면 이런 성분을 들이마실 경우, 코와 목에 자극을 주며 심하면 재채기와 호흡곤란, 두통을 야기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보통 외국에는 물에 석회질이 많이 들어 있어서 초음파 가습기를 안 쓰고 물을 끓이거나 팬으로 증발시키는 기화식 가습기를 많이 쓴다. 초음파 가습기는 물을 작은 입자로 쪼개어 날려 보내는 방식이어서 물속에 칼슘, 마그네슘 등의 미네랄이 녹아 있을 경우, 이런 성분도 함께 날려 보낸다. 그 때문에 물속에 미네랄이 많은 지역에서 초음파 가습기를 쓰면 가구나 가전제품에 미네랄 성분이 달라붙어 하얀 얼룩이 끼고, 이로 인해 물속에 미네랄이 많은 지역 사람들은 초음파 가습기 사용을 기피한다.

우리나라는 물속의 미네랄 함량이 비교적 낮다보니 초음파 가습기를 사용하는 데 별 문제가 없는데다가 가습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무를 눈으로 확인할 수있다보니 다른 종류의 가습기보다 더 많이 사용되곤 한다. 하지만 초음파 가습기는 물을 초음파로 때려 잘게 쪼개진 물방울(연무) 형태로 분무하는 과정에서 세균과 물속의 화학물질을 함께 날려 보낼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수증기 외의 이물질을 들이마시게 되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약의 용도가 달라지면 위험성도 달라지고, 그에 따라 안전성 점검도 필요하다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지만, 이를 무시한 제조업체들과 방조한 정부는 결국 엄청난 비극을 불러왔다.

약은 성분만 중요한 게 아니다. 용도에 따라 그에 맞는 제형과 사용방법이 있다. 몇몇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약은 원래의 용도로 사용하는 게 제일 안전하다. 안전이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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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과학·역사·문화를 아우르는 다양한 관점에서 약과 음식의 이면에 숨겨진 사실을 탐구하는 데 관심이 많은 약사다. 현재 대한약사회 약바로쓰기운동본부 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방송과 글을 통해 약과 음식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대중에게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정재훈의 생각하는 식탁》이 있다. 경기도 분당 정자동에서 ‘J정약국’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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