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라이프
르누아르의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와 로제 와인
글 서민희(서울과학기술대학교 강사, 금속공예작가) | / 사진 셔터스톡
입력 2016/05/21 11:00
명화 속 와인 이야기
두 점 그려진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일본 제지회사인 다이쇼와(大昭和)의 명예회장 료에이 사리토는 1996년 삶을 마감하면서 그가 사랑한 두 점의 그림을 함께 화장해달라고 유언합니다. 이때, 그가 선 택한 두 점의 그림은 빈센트 반 고흐의 <가셰 박사의 초 상(Portrait of Dr. Gachet, 1890)>과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Dance at Le moulin de la Galette, 1876)>입니다. 료에이 명예회장은 1990년 5월 15일 크리스티즈 경매를 통해 8250만 달 러(약 943억원)에 <가셰 박사의 초상>을 구매했고, 그로부터 불과 2일 후 소더비 경매를 통해 7800만 달러(약 891억원)에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를 구입했습니다. 료에이 명예회장 사망 후 두 그림의 행방이 묘연해지자 미술계에서는 여러 가지 설이 난무합니다.
르누아르는 이런 미래를 이 미 예측했을까요? 고흐가 남긴 두 점의 <가셰 박사의 초상>은 구도는 거의 같지만 색 감과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물체들은 각각 다르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대 부분의 작가들은 같은 제목 의 그림이라고 하더라도 조 금씩 다르게 표현해 작업했습니다. 하지만 르누아르가 남긴 두 점의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는 거의 비슷하게 그려졌습니다. 단, 료에 이가 소장한 작품의 크기는 78×114cm인 데 비해 또 다 른 작품 한 점은 그것보다 큰 131×175cm입니다. 덕분에 현재 우리는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을 통해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물랭 드 라 갈레트’는 파리의 몽마르트 언덕에 위치한 풍차입니다. 17세기부터 존재한 이 풍차를 19세기 드브레 가문이 인수해 레스토랑을 운영합니다. 이 레스토랑은 갈색의 빵과 디저트의 한 종류인 갈레트(Galette) 를 제공하고 공공 무도회장의 역할을 해 젊은 파리지앵들에게 인기를 끕니다. 우리는 이곳을 즐겨 찾던 르누아 르를 비롯해 고흐와 카미유 피사로(Camille Pissarro, 1830~1903) 등의 예술가들이 남긴 작품을 통해 당시 이곳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안의 핑크빛 로제 와인
르누아르의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속에는 댄 스 파티가 무르익어가고 있고 오른쪽 앞쪽의 테이블 위 의 글라스 안에 핑크빛 음료가 담겨 있습니다. ‘물랭 드 라 갈레트’에서 춤과 함께 빵과 와인을 즐겼다는 기록으로 핑크빛 음료가 로제 와인임을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로제 와인 산지 두 곳과 대표 와인을 소개하겠습니다.
복합미가 좋은 ‘이 기갈 타벨 로제(E. Guigal Tavel Rose)’
프랑스의 론 남부에 위치한 타벨과 리락 지역은 대표적 인 로제 와인 산지입니다. 이곳에서는 레드 품종인 그르나슈(Grenach)와 생쇼(Cinsault)가 블랜딩되어 무거운 바디와 강렬한 풍미를 가진 로제 와인이 만들어집니다. 로제 와인은 깊고 구수한 복합미가 매력적입니다. 리락 에서는 로제뿐만 아니라 레드와 화이트 와인도 생산되지만 타벨에서는 오직 로제 와인만 생산됩니다.
2003년 영국의 와인 전문지 <디켄더(Decanter)>는 이 기갈(E. Guigal)을 세계 최고의 쉬라(Syrah) 와인 생산자라며 ‘론 지역의 왕’이라고 칭찬했습니다. 이 기갈은 타벨 지역에서 그르나슈와 생쇼에, 그들의 대표 품종인 쉬 라를 소량 블랜딩합니다. 타벨에서는 스테인리스 스틸 통만을 사용하여 과실 풍미에 집중한 와인을 만듭니다.
이 기갈 타벨 로제는 맑은 살구빛을 띱니다. 후각으로 레드베리와 체리 등의 과실과 꽃의 풍미 를 시작으로 뒤쪽으로 스모키한 미네랄이 느껴집니다. 입안에서 과실의 섬세한 풍미와 가장 먼저 만날 수 있으며, 기분 좋은 산도와 함께 충분한 바디감의 균형 잡힌 밸런스로 우아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매력적인 미네랄을 가진 ‘샤토 데스클랑, 락 엔젤(Chateau D’esclans, Rock Angel)’
연중 따뜻한 기후라 휴양지로 각광받는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Provence) 지역에서 생산되는 대부분의 와인은 로제입니다. 프로방스의 로제 와인은 옅은 색과 함께 풍 미의 강도가 약해서 음료를 마시듯이 편하고 쉽게 즐기기 좋습니다.
유명한 와인평론가 잰시스 로빈슨은 2015년 “로제 와인 산업에 큰 기여 한 사샤 리쉰(Sacha Lichine)에게 감 사한다”고 했습니다. 샤토 데스클랑 (Chateau D'esclans)의 대표인 잰시스 로빈슨은 보르도에서 태어나 미국에 서 교육을 받은 후 소믈리에와 와인도 매상 등의 경험을 가지고 미국 부유층 을 상대로 투어를 기획해 프랑스 남부 와인 시장의 활성화에 일조하고 있습 니다.
샤토 데스클랑은 2014년 그들의 플래그십 와인의 이름에 락 엔젤(Rock Angel)이라는 명칭을 덧붙입니다. 이것은 자갈(Rock) 토양의 테루아를 잘 표현한 미네랄리티가 살아있는 와인을 생산하는 데 집중하려는 의지를 담았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샤토 데스클랑, 락 엔젤 2014 는 레드 품종인 그르나슈와 화이트 품종인 베르멘티노(Vermentino)가 블랜딩됩니다. 글라스 안에서 여리여리 매력적인 연분홍빛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상대로 산뜻한 미네랄으로 시작해 잘 익은 복숭아 풍미가 올라옵니다. 입안에서 안정적인 산도 밸런스를 보여주며 허브와 이름 모를 말린 꽃의 풍미를 거친 은은한 미네랄 마무리가 매력적입니다.
서민희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공예문화정보디자인학과 강사 겸 금속공예작가로 개인전을 5회 개최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에서 금속공예와 주얼리를 전공했고 템플대학교 에서 CAD-CAM 학위를 받았다. 영국 와인전문교육기관 WSET를 수료한 와인 전문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