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칼럼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와 소비뇽 블랑
글 서민희(서울과학기술대학교 강사, 금속공예작가) | / 사진 셔터스톡
입력 2016/01/14 13:49
명화 속 와인 이야기
‘그녀의 눈을 본다면 그 누구도 잊지 못할 것이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여성 작가 조르주 상드(George Sand, 1804∼1876)의 ‘모나리자(Mona Lisa)’에 대한 평입니다.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모나리자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천재적인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의 대표작입니다. 단지 르네상스 회화 작품의 하나로 평가받았던 ‘모나리자’가 현재의 명성을 얻은 데는 1911년에 일어난 ‘모나리자 도난사건’이 일조했습니다.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던 이 작품이 어느 날 감쪽같이 사라져 많은 사람의 관심을 모았습니다.
사건 초기에는 스페인의 대표적인 화가 파블로 피카소가 범인 중 한 명으로 지목되기도 했습니다. 스페인의 페르난도 콜로모 감독은 이 사건을 소재로 2012년 영화 ‘피카소: 명작 스캔들(La Banda Picasso)’을 제작했습니다. 행방이 묘연했던 모나리자는 2년 뒤 다 빈치의 고향인 피렌체의 유피지미술관(Uffizi Gallery)에 등장했지만 2주 동안의 짧은 전시 후 루브르박물관으로 반환됩니다. 모나리자의 절도범인 빈첸조 페루지아는 프랑스 법원으로부터 불과 6개월의 징역형을 받았습니다. 그는 “이 그림이 이탈리아로 반환되어야 한다”고 주장해 이탈리아에서 애국자로 추앙됐습니다.
‘모나리자’ 배경인 르와르 밸리는 유명한 와인 산지
‘모나리자’는 그림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명확히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다만 루브르박물관은 그림 속 주인공이 부유한 상인 프란체스코 디 지오콘도의 부인 리자 게라르디니(Lisa Gherardini, 1479~1542 또는 1551)라는 데 무게를 싣고 있습니다. 다 빈치는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이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해 4년 동안 작업하지만 마무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1516년 프랑스의 왕 프랑수아 1세의 초청을 받아 ‘프랑스의 정원’이라고 불리는 르와르 밸리의 클로 뤼세 성으로 가서 작업을 이어갑니다.
그림 속 인물 뒤의 배경이 어디인지에 대한 명확한 기록도 없습니다. 많은 학자가 그림의 오른쪽과 왼쪽에 각각 다른 2개의 장소가 등장한다는 데 동의하지만 정확한 장소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림 그릴 때 통상적으로 배경을 가장 마지막에 그리는 것을 고려하면, 배경 장소는 다 빈치가 그림의 마무리 작업을 한 센트럴르와르 밸리가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다 빈치가 ‘모나리자’를 마무리했한 센트럴루아르 밸리 유역에는 와인 산지가 분포되어 있습니다. 지롱드강 유역에 보르도가, 욘과 손강 유역에 부르고뉴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센트럴루아르 밸리 유역에는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 품종이 재배되고 있습니다. 특히 이 곳의 상세르와 푸이퓌메 지역은 최고의 드라이 화이트 와인(단맛이 거의 나지 않은 화이트 와인) 산지라는 명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상세르와 푸이퓌메에서 생산되는 와인은 명성답게 비싸지만 가격 대비 품질이 좋은 중간 가격대의 와인을 지역별로 한 가지씩 소개하겠습니다.
미네랄의 긴 여운이 매력적인 ‘앙리 나터 클라시크 블랑’
19세기 후반 진딧물의 일종인 필록세라(Phylloxera)가 유럽의 포도밭을 황폐화시킵니다. 폐허 속에서 상세르의 포도 재배자들은 포도 농장의 재건을 시작합니다. 이들이 이때 기존 레드 품종인 피노 누아 대신 새롭게 재배한 품종이 화이트 와인 품종인 소비뇽 블랑입니다. 와인제조업자 앙리 나터가 소비뇽 블랑 제조에 앞장섰고, 앙리 나터의 후손은 대를 이어 지금도 가족 경영을 해오고 있습니다.
소비뇽 블랑 품종은 향이 있어 오크 숙성을 통해 와인의 균형을 잡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오크 숙성을 하지 않지만 루아르 지역에서는 전통적으로 오크 숙성을 합니다.
‘앙리 나터 클라시크 블랑(Henry Natter Classique Blanc)’은 여전히 고집스러운 전통 방법으로 양조해서 아로마의 다양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잔의 위쪽으로 올라오는 특유의 잔디 향이, 소비뇽 블랑 품종이 사용되었음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그 뒤로 레몬, 복숭아 등의 신선한 과일과 함께 느껴지는 아카시아와 오크에서 오는 바닐라의 풍미가 완벽하게 조화롭습니다. 입안에는 상세르 와인다운 좋은 산도와 함께 미세한 꽃꿀 느낌으로 시작해서 라임, 레몬, 자몽의 과실 향이 뒤따릅니다. 특히 진흙과 석회석이 혼합된 해양 화석 토양인 키메르지엔으로부터 오는 상당히 긴 미네랄의 여운이 매력적입니다.
스모키한 풍미의 ‘앙리 부르주아 푸이퓌메 엉 트라베르탕’
상세르 지역의 터줏대감인 부르주아 가문은 10대째 와인을 양조해오고 있습니다. 특히 8대손인 앙리 부르주아는 상세르의 개척자로 불리며 와이너리 이름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고 포도 품종과 테루아(와인 재배 환경)사이의 조화를 중요시하는 와인을 만들어오고 있습니다.
앙리 부르주아는 상세르 지역뿐만 아니라 루아르강 건너편 동쪽에 위치한 푸이퓌메까지 포도밭을 넓힙니다. 푸이퓌메 지역에서 재배되는 소비뇽 블랑은 과거에 퓌메블랑(Fuméu-Blanc)이라 불리었습니다. 블랑은 프랑스어로 ‘화이트’라는 의미이고 퓌메는 ‘훈제’라는 의미입니다. 이름처럼 이 지역 와인은 부싯돌 성분의 토양으로 인해 스모키한 풍미를 가지는 것이 특징입니다.
‘앙리 부르주아 푸이퓌메 엉 트라베르땅 (Henri Bourgeois Pouilly-Fume En Travertin)’은 현대적 방법인 스테인리스 스틸에서 저온 발효하여 과일의 강렬하고 섬세한 맛을 느끼게 해줍니다.
또한 활동을 멈춘 효모와 함께 5개월 동안 숙성시켜 복합미를 더합니다. 엘더 플라워의 향이 후각을 자극합니다. 라임과 레몬를 거쳐 미세한 열대 과일 향에, 훈연의 뉘앙스까지 더해져 다채로운 풍미를 지닙니다. 후각으로 느낀 이러한 풍미는 고스란히 입안에 옮겨집니다.
/서민희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공예문화정보디자인학과 강사 겸 금속공예작가로 5회의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을 개최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교에서 금속공예와 주얼리를 전공했고 템플대학교에서 CAD-CAM 학위를 받았다. 영국 와인전문교육기관 WSET를 수료한 와인 전문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