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대학교병원 혈액종양내과 강정훈 교수

한 해를 마감하고 새해를 맞이할 준비를 하느라 몸도 마음도 바쁜 시기다. 초로의 췌장암 환자가 진료를 마치고 나가면서 “새 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를 건넸다.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저 분이 내년에는 버틸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췌장암은 일반적으로 ‘걸리면 죽는 병’이라는, 예후가 아주 불량한 암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한국 임상암학회에서 건강한 성인 남녀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더니 응답자의 60%가 5년 생존율이 가장 낮은 암으로, 63%가 가장 치료가 어려운 암으로 췌장암을 꼽았다. 이러한 일반인의 인식은 실제 사실과 다르지 않다.

췌장암은 국내 암 발생빈도 8위의 암인데, 매년 5000명 가까운 환자가 발생하고 그 중 8%만 생존한다. 매일 12명이 췌장암 진단을 받고, 매일 11명이 췌장암으로 세상을 뜨는 셈이다. 국내 암 환자의 70%가 완치되는 시대에 유독 췌장암만 20 여년 동안 한 자릿수 완치율에 머무르고 있다.

이렇게 췌장암의 치료 성적이 낮은 이유는 조기 진단 방법이 개발되어 있지 않고 증상이 없거나 소화불량과 같은 비특이적인 증상만 있어서, 80% 이상의 환자가 수술이 불가능할 정도로 진행된 상태에서 진단되기 때문이다. 췌장암에 효과적인 약제들 또한 제한적이다. 다른 암에는 잘 듣는 많은 신약들이 그 효과를 따져보기 위해 시험대에 올랐지만, 췌장암에서는 번번히 효과가 없거나 극히 미미한 것으로 판명이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환자들은 두어 종류의 약제들로 치료한 이후에도 암이 진행하면 더 이상 치료 방법이 없다는 절망의 말을 의사로부터 듣게 된다.


최근 췌장암과 관련된 몇 가지 좋은 소식이 들려와 치료 희망이 커지고 있음을 느낀다.  첫 번째, 췌장암 질환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려는 움직임이 생겨나고 있다. 지난 11월 13일, 세계 췌장암의 날을 맞아서 국내에서도 학회를 중심으로 ‘췌장암의 날’ 행사가 진행됐다. 췌장암이라는 이름조차 낯선 장기에 생긴 암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을 높여 췌장암의 조기 진단율을 높이고 치료에 대한 희망을 높이기 위한 행사로, 정부가 췌장암 정복을 위한 연구에 적극적인 지원을 하겠다고 약속하면서 실질적인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치료 약제에 관한 새로운 소식도 있었다. 현재 국내에서 전이성 췌장암 표준치료에 사용되는 항암제는 1990년대에 임상 시험을 진행한 젬시타빈이다. 이 약제 이후 20여 년간 효과가 증명이 된 이렇다 할 치료 약제가 개발되지 못했지만, 최근 나노 기술을 응용한 아브락산이라는 신약이 효과가 입증되면서 2013년 미국식품의약국의 승인을 얻었고, 국내에서도 출시를 앞두고 있다. 또한 옥살리플라틴과 이리노테칸이란 항암제들을 조합한 항암 요법의 치료 성적이 젬시타빈과 필적하는 효과가 있음이 보고되면서 의사들에게 또 다른 치료 옵션을 제공하고 있다.

2주 전 오셨던 또 다른 췌장암 환자가 떠오른다. 임상시험을 통해 아브락산을 투여받고 있는 중년 여성이었는데, 진료실 의자에 앉자 마자 굵은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셨다. 휴지를 건내주며 이유를 물으니 인터넷에서 췌장암에 대해서 찾아보니, 하는 얘기들이 너무 두렵고 낙담이 되어서라고 하신다. “신약을 투여했으니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보다는 훨씬 좋은 결과가 있지 않겠느냐”고 다독거리자 눈물을 훔치고 가느다란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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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대학교병원 혈액종양내과 강정훈 교수
희망은 고통을 이기는 힘을 준다. 설령 그 크기가 크지 않아도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적지 않은 힘이 될 수 있다. 질병의 고통과 치료에 대한 절망감의 이중고를 겪고 있는 많은 췌장암 환자들이 이런 좋은 소식들이 가져다주는 희망 덕분에 2016년 한 해를 잘 넘기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