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출 줄 알면 몸과 마음이 행복해져요

김성수(85) 대한성공회 주교는 '우리 사회에 평화의 씨앗을 뿌려온 성자'라는 평을 듣는다. 대한성공회의 부흥을 이끌었으며 6·10 국민대회의 서막을 열어 민주항쟁의 불씨를 지핀 주역이다. 성베드로학교를 세워 지적장애인을 교육했고 학교를 졸업한 이들이 오갈 데 없어지자 일터까지 만들어 그들을 보살폈다.

이런 업적이 마치 과거의 영광일 뿐이라는 듯, 그는 지금 인천 강화도의 인적 드문 곳에서 평범한 할아버지처럼 살고 있다. 그를 찾아가 행복하냐고 물었더니, "모든 사람이 나만큼만 행복하면 좋겠다"며 웃었다. 어떻게 그리 행복하시냐고 묻자 답이 돌아왔다. "무식한 바보라서 그렇지 뭐, 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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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대한성공회 주교
강화도 지적장애인 마을에서 사는 '성자'
김성수 주교가 촌장으로 있는 인천 강화도 온수리 '우리마을'. 60명 정도의 지적장애인들이 생활하고 일도 하는 곳이다. 입구에 도착해 사무실로 들어가는데 건물 옆에 딸린 고구마 텃밭을 둘러보다 나오는 김성수 주교를 만났다. 진달래색 생활한복에 짙은 청바지를 입고 팔을 앞뒤로 크게 저으며 걸어오다가, 기자를 만나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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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대한성공회 주교

주교님, 참 멋지시네요!
하하, 고마워요. 오늘 아침에는 인터뷰 하러 와준다고 하기에, 오랜만에 신경 써서 모양을 냈어. 생활한복도 멋있게 차려 입어봤지. 청바지도 꺼내 입고 말이야. 날이 추워지고 있으니 너무 밝은 색보다는 어두운 걸로 골라봤어요.

참 잘 어울리십니다. 건강도 아주 좋아 보이세요. 주교님께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법에 대해 여쭈러 왔는데, 몸 건강 챙기는 비법도 들어야겠는걸요?
겉모습만 그럴싸해 보이는 거야. 실제로는 혈압약에 심장병약에, 여덟 개쯤 되는 약을 매일 챙겨 먹고 있어. 그래도 좋게 봐주니 고마워요.

전혀 안 그래 보이세요. 얼굴빛도 훤하시고요.
기분이 좋아서 그런 게 아닐까요. 지금 기분 최고야.

좋은 일 있으셨어요?
기분은 늘 최고로 좋아. 매일, 매 순간 아주 행복하거든. 뭐 특별히 이유를 붙여보자면 오늘은 새로운 손님도 만나는 날이고, 날씨도 아주 좋잖아요.

늘 행복하다고 하시니 평소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합니다.
별것 없어요. 특별히 하는 일이 없거든. 그냥 이곳에서 생활하는 친구들의 할아버지로 지내고 있지요. 출근도 늦게 해. 아침 11시 30분쯤 나와서 여기 친구들하고 같이 점심을 먹어요. 그러고 나서 직원들하고 커피도 한 잔 하고, 얘기도 좀 하지요. 그리고 집에 들어가서 한 시간쯤 오수를 즐겨요. 다시 사무실로 나와서는 신문도 보고, 잡무도 잠깐 보고. 다섯시 반쯤에 저녁을 먹고 집에 들어가지. 그 뒤에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좀 보다가 꾸벅꾸벅 졸고는 새벽 1시쯤 잠자리에 들어요. 그게 일과야. 아직도 서울에서 찾는 이가 좀 있어서, 한 달에 두세 번 정도 서울에 가.

운동은 따로 안 하세요?
해야 하는데 내가 참 게을러서 말이야. 이 경치 좋고 공기 맑은 곳에서 산책도 잘 안 해. 하하.

할아버지, 우리는 최고다!
한참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우리마을에서 생활하는 지적장애인 두세 명이 김성수 주교 앞을 지나갔다. 30대 초반 쯤으로 보이는 이들은 김 주교를 발견하더니 양손의 엄지손가락을 내밀며 밝게 웃었다. 김 주교도 "아유 최고야, 최고"라고 말하며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고는 밝게 웃었다. 영락없는 손자와 할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지적장애인들과 사이가 좋으신가 봐요.
그럼. 우리 친구들이 다 착하고 인사도 잘해. 아, 내가 30~40대를 두고 친구들이라고 부르는 게 이상하지? 나와 친구들, 직원들이 서로를 모두 편하게 부를 수 있는 호칭을 고민하다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모두 '친구'라고 칭한 게 생각나서 그렇게 부르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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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을 사무실 입구. '어서오시겨'는 '어서오시게'의 강화도 사투리다.
이곳에서 장애인은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몇몇은 콩나물 공장에서 일을 하고, 몇몇은 두꺼비집에 들어가는 부품을 단순 조립하고 있어. 일부는 고구마 를 키우기도 하지. 특히 콩나물은 깨끗하고 정성스럽게 기른 거라서 맛이 아주 좋아요. 친환경 인증도 받았고, 품질이 좋아서 생협과 풀무원에 납품하고 있지. 우리 친구들이 포장할 때 손으로 한 줌 집어서 포장지에 넣는데, 정확하게 300g이 딱 맞는다니까. 달인이야, 아주 대단해.

장애인에게 특별히 관심 갖게 된 이유가 있으신가요?
엄밀히 말하면 내 의지나 선택은 아니었어요. 영국에서 공부할 때였는데, 당시 한국에 있던 주교로부터 편지가 왔어. 성공회가 장애인을 대상으로한 복지사업을 해볼까 하는데 맡아서 운영해보라는 내용이었지. 이후 귀국 길에 영국, 캐나다, 미국, 일본의 선진 사례를 배우고 들어와서 특수학교인 성베드로학교를 만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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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장애인들이 부품 조립을 하고 있다
의지가 아니었다고 하시니 여쭙는 건데, 혹시 후회는 없으신가요?
전혀요. 지금까지의 내 인생을 반추해보면, 그냥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들어. 좀 교만해 보여요? 하하. 하지만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해요. 후회도 없고요. 그러니 잘 된 일이죠. 나는 이제껏 "아, 이걸 해봐야겠다"고 마음먹어서 선택한 게 거의 없어. 주변에서 해라,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권고해준 덕에 물살에 휩쓸리듯 여기저기 밀려서 움직였지요. 어떻게 보면 참 바보 같은 일인데, 운 좋게도 우리마을까지 만들게 됐으니 아주 기쁘고 행복한 기회였던 것 같아.

유복한 유년시절을 보내셨다고 들었습니다. 낮은 곳에서 나눔 과 봉사를 실천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나눔을 생활화하는 어머님께 크게 영향을 받기도 했고, 10년쯤 크게 앓았던 경험도 있으니까. 청소년기에 폐 결핵을 크게 앓았어요. 병이 옮을까봐 사람들은 나를 멀리 했고, 이때 외로움을 크게 느꼈지. 의사가 꼼짝 말고 누워 있으라고 했기에 누워 지내는 날이 많았는 데, 건강해지면 나처럼 외로움에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소외당하고, 남들이 내민 손조차 잡기 어려운 상황이 얼마나 힘든지 알게 됐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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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대한성공회 주교
장애인을 위해 선친께 물려받은 사유지를 선뜻 내놓으셨다고 들었어요.
하하, 내가 한 거 아니야. 성베드로학교에서 공부한 학생들이 졸업식 날 학교에 오지 않았어요. 졸업하면 갈 곳이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인가 봐. 우리 친구들이 졸업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고향에 땅이 좀 있는 게 생각나서 거기에 직업재활시설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만 했어.

그 땅은 아버지 것이었는데, 원래부터 동네 주민에게 개방하면서 누구든 여기서 운동하고 편하게 이용하라고 하셨거든. 난 그걸 이용할 생각만 한 거야. 땅만 있으면 뭐해? 건물을 짓고 운영하려면 돈이 필요하잖아. 그래서 여기저기서 도움을 받아 건물을 지었어. 결국 내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는 거지. 그런데 요즘에 사람들이 이게 다 내가 일궈낸 결과라고 하니까 난 참 우습고 부끄러워. 한 일도 없는데 남이 해놓은 좋은 일의 영광만 내가 다 누리는 것 같아서 말이야.




마음속의 욕심을 멈추면 매사가 행복해진다
대화를 나누는 내내 김성수 주교의 얼굴에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매순간 행복하다고 했는데, 한치의 거짓 없이 마음에서부터 우러나 오는 말인 것 같았다. 치열한 생활 속에서 짜증내며 불평하기 바쁜 기자에게는 마음이 풍요로운 김 주교가 신기하기만 했다. 그에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비결을 물었다.

어떻게 하면 매사에 행복할 수 있나요?
마음먹기 달렸지 뭐. 내가 갖고 있는 것에 만족하고, 갖지 못한 것이나 현실적으로 이뤄지기 힘든 것에 대해서 욕심내지 않는 게 방법이라면 방법이랄까. 사실 내 나이만큼 산 사람 중에 나보다 훌륭한 사람이 얼마나 많겠어. 돈이 많거나 똑똑하거나 여러 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지. 그런데 아무 것도 모르는 무식한 나 같은 사람이 그걸 부러워하고 탐을 내봐요. 어차피 갖지도 못할 텐데, 괜히 스트레스만 받고 마음에 결핍만 생기잖아요. 그러니까 그냥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하고 있는 일을 더 잘 할 수 있도록 앞만 보고 묵묵히 걷는 거지.

최근 어떤 자리에서 연세대 교수를 지낸 양반이 축사하는 걸 들었어요. 청산유수더라고. 그걸 들으면서 내가 만약 '나는 왜 저 사람만 큼 말을 잘 하지 못할까. 저 사람의 반의 반만이라도 말을 잘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욕심을 냈다면 불행하지 않았 을까? 나는 '아, 저렇게 멋진 축사를 들을 수 있어서 축복이다. 기분이 참 좋다'라고 생각하며 감사했어요. 결국에는 내가 나 자신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고 있으면서, 내게 과한 것을 탐내고 있다고 여겨질 때는 멈출 줄 아는 게 중요한 것 같아. 참 어려운 거지만, 늘 마음속에서 욕심을 멈추려고 애를 쓰는 거지.

말씀하신 것처럼 무언가를 원하는 마음이 과해져 욕심이 될 때 스스로 제동을 건다는 게 참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어떻게 해야 그게 가능해질까요?
나도 말로 하긴 참 어려워. 내가 다 옳은 것도 아니고 말이야. 하지만 나는 무식하니까 가능했던 것 같아. 시간이 가면 저절로 얻어지거나 해결되는 것도 많았고. 아, 매사에 바보처럼 하하하 하고 웃어 넘겨버리는 것도 도움이 되는 것 같아.

예를 들어 볼까? 내가 여기 우리마을에 들어온 지 6년쯤 됐어요. 오기 전에는 추석에 선물이 열 개씩 들어왔다면, 지금은 세 개 정도만 들어온다고 해봐. 그걸 보고 '괘씸한 사람들, 내가 얼마나 잘 해줬는데 나를 잊어?'라고 생각하면 내 마음만 힘들어요. 어쩔 거야, 이미 세 개만 들어온 것을. 그냥 '아, 내가 세 개 받을 그릇밖에 안 되는구나. 세 개라도 받아서 다행이고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하하하 웃어버리면 마음이 편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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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을 텃밭에서 영글어 가는 옥수수

지적장애인의 은퇴 후까지 보살피고 싶다
김 주교가 선행을 베풀며 평화의 씨앗을 뿌리는 성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을 낮추고 매사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가짐이 밑바탕 된 덕분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넉넉한 마음의 김성수 주교의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됐다.

주교님의 꿈은 무엇인가요?
양로원을 만드는 거야. 이 건물 뒤에 사용하지 않은 땅이 좀 있어요. 여기다가 작게나마 양로원을 지어서 우리 친구들이 노후를 보낼 수 있게 해주고 싶어. 성베드로학교 1기 졸업생이 54세인데, 여기 우리마을에서 일하며 지내고 있어요. 이 친구가 4~5년 뒤에 은퇴해야 하거든. 그 뒤에 어디서 어떻게 생활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 때가 된 거죠.

양로원이 생기면 우리마을이 지적장애인에게 일터를 제공하는 수준에서, 장애인의 삶 전체를 관리·보장해주는 역할까지 할 수 있겠네요.
그렇지. 성베드로학교에서 공부한 뒤 졸업하고, 우리마을에 취직하고, 여기서 일하며 번 돈을 저금했다가, 은퇴 후 양로원에 가서 일생을 마칠 수 있게 해주는 게 궁극적인 목표예요. 물론 우리마을이 한국의 모든 지적장애인을 돌볼 수 있는 것은 아니야. 규모는 작겠지.

중요한 것은 사회에 지적장애인의 일자리와 노후를 보장해줄 수 있는 복지 모델의 예시를 보였다는 점이에요. 우리 친구들이 이곳에서 사회구성원으로서 역할도 충분히 해내면서 일생을 잘 마친 예시가 나오면 비슷한 유형의 시설이 많이 생길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 그러면 지적장애인이 한국에서 살아가는 게 지금보다 더 수월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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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대한성공회 주교

"마음 곱게 먹고, 의사 말은 무조건 따릅시다"

<헬스조선> 독자들이 보다 건강하고 풍요로운 마음을 지닐 수 있도록 조언 부탁드립니다.
내 삶과 방식이 정답은 아니야. 다만 내가 살아오면서 생각한 것을 비춰서 내 나이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얘기한다면 "마음을 곱게 가지라"고 말하고 싶어. 건강하다고 너무 자랑 말고, 몸이 약하다고 너무 실망 말고, 나이 먹었다고 다 포기하지 말라는 거야. 너무 크고 멀리 있는 것을 바라보지 말고 물 흐르듯 자연스레 살았으면 좋겠어요.

또 한 가지는, 아플 땐 바보가 되라는 겁니다. 의심하지 말고 그냥 의사선생님 말씀을 믿고 치료에 전념했으면 좋겠어. 내가 폐결핵에 걸렸을 때도, 아내가 임신 중에 몸이 나빠졌을 때도 의사선생님 말씀만 믿고 따랐더니 다 괜찮아졌어요. 나이 먹어가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조언이 아닐까? 하하.




글 김하윤 기자 | 사진 김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