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된장마을 '무수촌' 촌장 박소율씨

사과로 유명한 고장 경북 영주에서 풍기로 가는 길목에는 '지나면 자그마한 마을' 지동리가 있다. 그곳에는 500년의 세월을 간직한 정자 '일우정'이 있고, 된장이 무르익는 마을 무수촌이 있다. 무수촌의 박소율 촌장을 만나 그녀의 힐링 스토리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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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된장마을 '무수촌' 촌장 박소율씨
된장을 만들면서 기다림의 미학을 배웠다

'근심이 없는 마을'이라는 뜻의 무수촌이 있는 경북 영주시 순흥면 지동리는 옥천 전씨의 집성촌이다. 현재는 50가구 정도 살고 있다. 무수촌 초입에 들어서면 보이는 옥천 전씨 6대 종갓집에는 셋째 며느리 박소율씨가 500년 이상 된 고택을 지키고 있다. 박 촌장은 17년째 된장, 고추장, 간장 등 전통장을 담그며 살고 있다.

"1998년에 이 집에 들어왔어요. IMF 때 남편과 제가 하던 사업이 각각 부도가 났어요. 남편은 늘 고향을 그리워했어요. 그래서 남편이 먼저 시골로 들어가자고 말했죠. 처음에는 도시에 살다가 시골생활을 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도시에서 가구 대리점을 하며 늘 바쁘게 살면서 사람들과 어울리길 좋아하던 박 촌장에게 느린 템포의 시골생활은 어딘가 모르게 어색했다. 하지만 어떤 일이라도 해야겠다는 그녀의 열정과 끈기가 오늘의 무수촌 된장을 탄생시켰다.

"처음에는 메주도 제대로 못 만들었어요. 고맙게도 주위의 지인들이 저의 딱한 사정을 알고 돈을 모아서 단지 10개와 옹기, 소금과 콩을 줬어요. 이걸로 된장을 만들었는데, 주위 사람들의 반응이 좋더라고요. 그때부터 된장을 만들어보자고 결심했죠."

된장 만드는 과정은 어느 하나도 손쉬운 과정이 없었다. 11월 말에서 12월 초에 메주를 만들고 2개월 정도 자연건조시킨다. 그러면 설날이 오는데 설을 쇠고 나서 12~15일 정도 메주를 띄운다. 음력 정월이 되면 메주를 씻어 말려서 장을 담근다. 이게 끝이 아니다. 45일에서 60일 정도 소금물에 침전을 시켜서 된장과 간장을 분류한다. 분류한 된장과 간장은 3년 이상 자연 발효시킨다.

"된장을 한번 만들려면 적어도 1년이 걸려요. 1년이 걸려서 만든 된장이라도 또다시 자연 발효에 들어가요. 엄청난 기다림이 필요한 작업인 거죠. 작업을 빨리한다고 결과물이 바로 나오는 것이 아니어서 처음엔 힘들었어요. 시간을 들이고 노력하는 데에 비해 소득도 적었으니까요. 처음 해보는 거라 호기심 반 오기 반으로 계속 매달렸던 것 같아요"

무수촌의 된장이 명품 된장으로 알려진 이유는 콩과 숙주종균 때문이다. 오랜 고택에 있던 숙주종균이 다른 된장과 다른 맛을 낸다는 것이다.

"영주에서 나오는 부석태콩을 사용해요. 다른 콩하고 차이점은 단맛이 강하고, 껍질이 얇고 찰기가 있어요. 그래서 된장을 담가보면 단맛이 들고, 껍질이 얇아서 푸석푸석하지 않고 차지죠. 동네 어른들도 똑같이 된장을 담그는데, 우리 집 된장하고 냄새가 달라요. 저는 그 차이가 균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집 된장은 향이 역하지 않아서 된장에 거부감을 느끼던 사람도 맛있게 먹을 수 있어요. 된장에서 퀴퀴한 냄새가 나는 건 균 상태가 좋지 않기 때문이죠."

된장을 만들면서 그녀의 삶도 달라졌다. 기다림의 미학을 몸소 경험한 것이다. 이전에는 일상에 치여 바쁘게 살아왔지만 무수촌에 와서부터는 삶의 리듬이 한 템포 늦춰지고 당장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기다리면 언젠가는 만족스러운 결과가 생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된장이 숙성돼서 깊은 맛을 내는 것처럼, 박 촌장은 인생도 기다림의 과정을 겪으면서 숙성되고 발효돼 더 깊은 맛을 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전에는 5분도 기다릴 줄을 몰랐어요. 그런데 이제는 이게 아닌 것 같아도 기다려보고, 금방 결과가 나타나지 않아도 기다리는 걸 배웠어요. 그런 과정이 있어야 좀 더 인생을 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사람을 이해하는 폭도 넓어지는 것 같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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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에 사용되는 재료와 된장
모든 일을 한 발짝 뒤에서 바라보면 마음이 편해진다

된장을 담그는 일 자체가 행복한 삶의 비결인 것 같다고 했더니, 박 촌장은 하나가 더 있다고 한다. 바로 애완견 '이쁜이'다. 자식들이 다 서울에서 지내기 때문에 가끔 적적할 때가 있지만, 그때마다 적적함을 달래주는 게 이쁜이다.

"정말 얘(이쁜이)는 제 생활의 힐링 포인트예요. 6개월 전 장날에 데리고 왔어요. '장날의 행복'이죠. 견종이 궁금해서 애완병원에 가서 물어보니까 수의사 선생님이 씩 웃으면서 '그냥 이쁜이에요'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때부터 이쁜이라고 부르게 됐어요."
소중한 반려견을 얻은 박 촌장은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 하루하루를 즐겁게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이쁜이는 저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냥 버려진 잡종견이었을지 몰라요. 저와 만났기 때문에 저와 이쁜이는 서로 의지할 수 있는 관계가 됐잖아요. 사람의 인생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지니까요.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인연의 소중함을 알게 됩니다"

무수촌에 들어와서 인생 공부를 많이 하게 됐다는 그녀는, 시골 어르신들과 대화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사는 법을 배웠다.

"처음 된장을 만들 때였어요. 저는 된장을 만드는 법을 모르기 때문에 어르신들에게 많이 여쭤 봤죠. 청국장을 만들 때 '이러면 돼요?' 하면 그때마다 어르신들의 대답은 '다 된다'였어요.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 맛이 다르다고 그렇게 화낼 필요 없다는 뜻이었죠. 그때 모든 일을 볼 때 한 발치 뒤에 서서 바라보는 법을 배운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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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율 촌장이 만든 된장,볶음 고추장, 쌈장
나물 위주의 반찬과 자연식이 건강의 비결

박 촌장은 올해 56세. 실제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 주름 하나 없는 피부가 인상적이어서 피부과 시술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이보다 훨씬 젊게 사는 비결이 궁금해 이것저것 물어봤지만, 무언가 특별한것은 없었다. 그녀는 채소 위주의 식습관과 발효 식품을 먹어 도움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특별히 건강관리를 위해 시술을 받거나 보약을 먹거나 하지 않아요. 그런데 주위 사람들이 피부가 좋다고,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고 해서 식습관 때문이겠다 싶더라고요."
그녀는 삼시 세 끼를 꼬박 챙겨 먹는다. 특히 아침밥은 반드시 챙겨 먹는다. 고구마 줄기, 무 잎파리, 양배추, 깻잎 등 채소 위주의 반찬은 밥상 단골 메뉴다. 생선도 하루에 두 번 정도 먹는다. 박 촌장이 또 챙겨 먹는 것이 있다. 청국장 가루와 식초 콩가루다. 자연 발효된 청국장 콩이 피부 미용의 비결인 것이다.

"청국장 가루는 다양한 용도로 먹을 수 있어요. 어떤 첨가물도 넣지 않고 발효된 청국장 콩을 갈아서 먹기 때문에 자연 그대로를 섭취하는 셈이죠. 바나나와 청국장 가루를 함께 갈아서 먹을 수도 있고, 플레인 요구르트에 넣어서 먹을 수도 있어요. 생청국장은 한 숟갈 떠서 김에 싸서 간장에 찍어 먹어도 맛있죠."

규칙적인 생활습관도 건강의 비결이다. 아침 일찍 항아리에서 장을 꺼내 담아야 장에 곰팡이나 벌레가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박 촌장은 매일 아침 다섯 시 반에 기상한다. 아침에 일어나 동네 한 바퀴를 돌고 꼭 목욕을 한다.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목욕하는 게 일종의 의식이에요. 심신이 이완되면서 마음이 편해져요. 깨끗하고 상쾌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니까 일도 더 잘 되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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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율 촌장
즐거움도 어려움도 같이 나누면서 사는 삶을 살고 싶다

묵묵히 전통장을 담그고 있는 박 촌장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일에 도전한다. 어떤 것을 열심히 배우고 열정을 쏟는 것도 삶을 건강하게 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일주일에 한 번은 숙명여대 전통음식대학원에서 요리를 배웠어요. 그리고 지금은 푸드스타일리스트가 되는 데 필요한 과정을 공부하고 있어요. 또 대구 경북농민사관학교에서 경영학을 공부하죠. 발효 식품도 더 배우고 공간연출도 배워서 우리 집에 오는 분들이 전통음식의 맛뿐 아니라 멋도 알고 가셨으면 합니다."

계속해서 전통장은 담그겠지만, 박 촌장이 가지고 있는 자그마한 꿈이 있다.
"누구든지 우리 집에 오면 오롯이 하루를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예요. 제가 사는 집 위쪽에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사람들과 함께 나누면서 살고 싶어요. 즐거움이 있으면 같이 하고, 어려움이 있으면 곁에 있어 주고 싶어요. 삶을 살아가는 과정이 비록 슬프고 외롭더라도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