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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직한 '나의 의사', 주민과 개원의가 함께 만들어야 합니다" - 노만희 신임 대한개원의협의회 회장
글 김공필 편집장 | 사진 김지아 기자
입력 2015/09/03 15:04
지난 7월 대한개원의협의회 회장에 취임한 노만희(노만희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회장은 약 3만 명의 개인병원 의사들을 대표한다. 노 회장에게서 개인병원의 현안은 무엇인지, 국민들이 동네 병의원을 잘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들어봤다.
노만희 대한개원의협의회 회장은?
한양대 의과대 의학박사, 서울백제병원 원장 역임.
현재 한양대 외래교수, 노만희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대한신경정신과의사회 회장
1차 의료기관이라는 다소 어려운 용어로 불리는 개인병원(동네 병의원)은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기초라고 할 만하다. 지역 곳곳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 일반 주민들의 건강을 일차적으로 책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개인병원 의사(개원의)들이 모여서 만든 이익단체가 대한개원의협의회다. 의사 단체 가운데 회원수가 가장 많으며, 의료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상당하다. 노만희(59) 신임 대한개원의협의회 회장은 지난 6월 개혁을 내세우며 신임 회장 선거에 출마해 유효 투표수 70표 중 41표를 얻어 당선됐다.
약 60%의 지지를 얻어 당선됐습니다. 지난 회장을 여유 있게 제치고 당선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지난 10년간 개원의 수는 2만5000명에서 3만 명으로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또한 대한개원의협의회는 의사단체 내에서 중요한 기구로 부상했습니다. 협의회의 역할을 강화하고 기존 사업방식에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는 의사들의 요구가 반영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재임 기간 동안 어떤 점에 주력할 계획입니까?
통합과 협력이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현재 개원의 단체는 대한개원의협의회와 각과별 개원의협의회가 병렬적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두 협의회를 통합하는 것이 첫 번째 과제입니다.
"상급종합병원으로 환자쏠림현상 심각해"
개원의들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중요한 현안들은 무엇입니까?
좀 어려운 이야기지만 의료전달 체계의 붕괴입니다. 우리나라의 동네 병의원은 거의 대부분 전문의들이 개원하기 때문에 의료 수준은 국제적으로 자부할 수 있을만큼 높습니다. 하지만 환자들이 대학병원 등 상급종합병원으로 쏠림을 막을 수 있는 정책이 부재합니다. 결국 환자들은 (상급종합병원에서) 짧은 시간에 값비싼 진료를 받고, 동네 병의원들은 생존을 위해 비급여 시술(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고가의 시술)에 기대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의원-병원-종합병원-상급종합병원으로 이어지는 전달체계를 확립하고 공공의료와 민간의료의 역할을 명확히 구분하여 정책을 집행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는 국민의 건강과 의료비 상승을 막기 위한 최우선 과제입니다.
개원의들은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원격진료(환자가 병원에 안 가고 인터넷 등을 통해 의사와 연결하여 받는 진료)에 반대하는 입장이지요?
개원의들의 유불리를 떠나서, 우리나라는 대부분 병원이 거주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병원 접근성에 큰 문제가 없다는 말입니다. 호주처럼 병원에 가기 위해서 차로 몇백km를 달려야 하는 상황이 아닙니다. 도시는 물론이고 농어촌도 20~30분만 가면 병원이 있으니 굳이 원격진료를 전반적으로 시행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물론 병원이 먼 일부 지역에는 시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의사가 환자를 직접 만나서 눈으로 보고 목소리 들어 보고 만져 보며 진단하는 것과 원격진료와는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IT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원격진료는 대세라는 주장이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공상과학영화에 나오는 듯 통 안에 들어가면 모든 건강정보를 파악해 진단해 주고 로봇이 수술까지 하는 세상이 온다면 모르겠지만, 현재는 의료진의 기술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상태이므로 원격진료의 필요성이 떨어진다고 봐요. 원격진료는 제한된 범위에서 할 수 있고, 할 필요도 있지만 전국적인 범위에서 일괄적으로 시행하려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상급종합병원으로 쏠리는 현상을 막을 수 있는 정책이 부재하다고 했는데, 어떤 정책이 있을까요?
의료전달 체계와 관련된 것인데요, 이미 정의되어 있는 것처럼 의원-병원-상급종합병원 체계를 지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금도 상급종합병원의 쏠림을 막기 위해 진료의뢰서를 제출하도록 되어 있지만 너무 쉽게 상급종합병원에 갈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동네 병의원에서 환자가 진료의뢰서를 요구할 때 써주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의사의 양심으로는 굳이 대학병원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되더라도 환자를 놓치기 싫어서 써주는 경우가 많거든요. 환자들도 동네 병의원과 대학병원의 진료비가 큰 차이 없으니 아무래도 대학병원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에서 대학병원을 찾는 거죠. 또 정부에서 동네 병의원의 의료비 부당청구 사례 등을 홍보하듯 공개하니까 불신이 커지는 거죠. 이렇게 해서 병원쇼핑 현상이 늘어나는 것이고요.
"개원의는 지역주민에게 '나의 의사' 믿음 줘야"
개인병원들이 너무 상업화되어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개인병원은 생존을 위해서 비급여 시술에 기대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쌍꺼풀 수술을 성형외과에서만 했는데 지금은 성형외과 전문의가 아니어도 합니다. 보톡스나 필러 시술은 피부과 아닌 타과에서도 여기저기 합니다. 이런 상황은 의사들이 의과대학에서 배운 것과는 맞지 않죠. 흉부내과 전문의가 개원해 감기환자를 함께 보는 건 우리도 못마땅하게 봅니다. 그러나 회원들에게 이를 정도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져 버렸어요.
개인병원 사이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각하다고 합니다.
병원의 빈익빈 부익부는 현실입니다. 약 10년 전에는 상위 20~30% 개원의들이 의료보험의 70~80%를 가져가는 구조였습니다. 지금은 많이 완화되었을 것으로 봅니다만, 상위와 하위의 격차가 여전히 심한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하위 소득의 의사들이 경영의 어려움을 겪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들이 살아갈 방법을 찾아주는 것이 개원의협의회의 일이기도 합니다.
무리하게 투자하지 않고 지역 아파트 상가 등에서 작은 규모로 운영하는 병의원도 어렵습니까?
더 어렵다고 봐야죠. 환자 수가 많은 지역은 좀 낮겠고요. 순수한 마음으로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 마음만 가지고 병원을 운영해도 수입이 어느 정도 보장되면 좋은데 그게 어렵습니다.
개원의들이 앞장서서 개선해 나가야 할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원의는 동네 병의원의 경영자이면서 서약을 한 의사입니다. 환자들과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 그들의 신체적인 아픔뿐만 아니라 모든 아픔을 보듬어줄 수 있는 '나의 의사'라는 믿음을 심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환자와의 관계에서는 신뢰가 가장 중요합니다. 생존을 위해서 비보험 진료를 한다고 하더라도, 동네 병의원 의사가 기본적으로 해야 할 건 보험 진료입니다. 감기 걸리거나 관절이 아플 때 가까운 곳에 있는 병의원이 떠오르도록 의사들이 잘 해야죠. 교과서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중요한 것입니다.
"동네 병의원이 감염병 예방 최전선에 있어"
최근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국내 의료문화의 문제점이 드러났습니다. 동네 병의원은 감염병과 관련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많은 사람들이 병원내 감염의 주요 원인의 하나로 간병 문화를 이야기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감염병 발생 초기에 파악하는 것입니다. 감염병 모니터링의 1차 담당은 동네 병의원이 해야 하므로 동네 병의원을 대상으로 감염병 모니터링 교육과 지원을 해야 합니다.
동네 병의원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개원의와 주민 모두에게 도움된다고 생각합니까?
동네 병의원은 무엇보다 지역사회에 밀착한 서비스를 해야 합니다. 병원에 찾아오는 환자를 치료하는 것은 물론이고, 지역사회의 건강증진이나 예방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그리고 중증질환의 경우 대학병원 등 상급병원으로 안내하는 등 의료전달 체계에서 1차 관문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합니다.
지역주민들이 동네 병의원을 좀더 잘 활용하기 위해 염두에 두면 좋은 점은 무엇일까요?
동네 병의원에는 대부분 충분한 지식과 경험이 있는 전문의들이 진료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건강을 지속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여기저기 '의료쇼핑'을 다니기보다는 한두 군데 동네 병의원을 지정해서 아플 때 우선적으로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현재 병의원 간의 의료정보는 서로 공유되지 않으므로 자신의 건강을 꾸준히 체크해줄 병의원이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합니다.
노만희 회장은 서울 한남동에 정신과 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정신과 전문의이며, 대한신경정신과의사회 회장직도 맡고 있다. 현대인들의 정신건강과 관련한 질문을 몇 개 보태봤다.
"배려·감사하는 마음이 정신 건강에 좋아"
일반인이 건강한 정신을 지킬 수 있는 중요한 요소 3가지를 꼽는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정답은 없습니다. 그러나 첫 번째는 신체적 건강 유지라고 생각합니다. 신체적 건강 없이 건전한 정신이 유지될 수 없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신체적·정신적 건강한 상태를 건강으로 정의내리고 있어요. 두 번째는 긍정적 마인드와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피해의식이 너무 큽니다. 다른 차량이 조금만 실수해도 빵빵거리고 남의 잘못은 사소한 것도 참지 못합니다. 집에서는 아이 탓하고 회사 가서는 상사 탓하고, 이렇게 하면 자기에게 득 될 게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감사할 줄 모릅니다. 감사하다고 표현하면 상대방에게 내 마음이 전달될 뿐 아니라 내 마음도 정화됩니다. 그러다 보면 인간관계가 제대로 매겨집니다.
정신과 전문의로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한 개의 단어가 있다면요?
'배려'지요. 아무리 사랑을 하더라도 배려하는 마음이 없고 그것이 상대방에게 느껴지지 못하면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회장님 자신의 마음 건강을 지키기 위해 실천하는 생활법이 있습니까?
화나 스트레스로 인한 부정적인 감정을 마음속에 오랫동안 담아두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또 업무 외에 제가 좋아하는 무엇인가를 하려고 노력합니다. 꼭 특별한 것은 아닙니다. 우연한 기회에 사이클링을 시작해 꾸준히 하고 있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겁니다. 목표를 정해 놓고 언제 어떤 산을 오른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주일에 두세 번 한강변을 달리면서 속도에 전념하기보다는 생각을 정리합니다. 그리고 열살 된 말라뮤트(알래스카 원주민의 썰매를 끌던 대형 애완견)와 매일 밤 산책하면서 하루 일과를 정리합니다.
노만희 회장에게 애견에게서 무엇을 배우냐고 물었더니, "늘 한결 같아서 좋다"고 말했다. 노 회장의 대한개원의협의회장 임기는 3년이다. 노 회장은 "3년 동안 개원의들을 대표해서 일하겠지만 개원의의 이익만 추구하는 회장은 되지 않겠다"며 인터뷰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