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클리닉 /김숙기 부부상담가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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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풍경

수십 년간 직장생활에 몸 바친 남편은 도시가 지겹다며 귀향하려 한다. 반면 수십 년간 집에서 남편과 자식 뒷바라지만 해온 아내는 이제야 도시를 즐길 시간이 났다며 즐거워한다. 은퇴 후 뚜렷해지는 주거환경 가치관은 부부 사이를 위협하는 거대한 방해 요소다.

한 60대 남성이 이혼하고 싶다며 최근 필자를 찾았다. 한참 얘기를 들어보니 갈등의 쟁점은 퇴직 후에 살고 싶은 곳이 각자 다르다는 것 단 하나였다.

도시에 지쳤다, 시골로 가고 싶다
남편은 퇴직만 기다려왔다. 퇴직하면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어린 시절을 보낸 조용한 시골마을로 이사 가겠노라 벼르고 별렀다. 부푼 꿈을 아내에게 말하면 아내는 "은퇴 후에나 생각해보자" "애들 결혼 때까지만"이라고 둘러댈 뿐 크게 동의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해 남편이 퇴직하고, 올봄에 둘째가 결혼하자 갈등이 수면 위로 올랐다. 귀향을 주장하던 남편이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며 시골집으로 혼자 이사를 해버린 것이다. 자신이 귀향을 밀어붙이면 아내가 따라올 줄 알았는데, 기대와 달라 배신감이 말도 못하게 컸단다. 30년간 처자식 먹여살리려고 죽어라 일만 했는데, 이제 돈을 벌지 않으니 아내가 무시하는 것 같기도 했다. 결국 남편은 황혼이혼을 결심했다.

도시에서 제대로 된 삶을 즐겨보고 싶다
남편이 애타게 귀향을 외칠 때마다 아내는 쉽게 공감하지 못했다. 도시가 도대체 왜 지겨운 걸까. 이제야 자식들 모두 출가시키고 오롯이 자신의 생활에 집중할 수 있어 행복해졌는데, 이 편안한 일상을 깨고 심심하면서도 낯선 시골로 가고 싶지 않았다. 당장 일상생활도 불편해진다. 고혈압이 있어서 한 달에 한 번은 검진을 위해 병원을 찾아야 한다. 매일 아침 동네 친구들과 운동하는 재미도 포기하고 싶지 않다. 수십 년간의 요리 경력을 발휘해 내년쯤 작고 깔끔한 식당을 차리고 싶다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주일마다 성당을 찾아 미사를 드리는 것도 중요한 일과다. 이제껏 남편의 말에 싫다는 내색을 안 한 건 남편도 퇴직 후 지금 있는 자리에서 안정을 느끼면 마음이 달라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부가 윈윈할 수 있는 타협점을 찾아보자
남편과 아내의 가치관이 모두 확고해 보인다. 이럴 때 화목한 부부 관계를 다시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해보자. 남편은 남편대로 치열한 경쟁사회에 넌덜머리가 난 것일 수 있다. 아내는 아내대로 가족의 그림자였던 처지를 벗어버리고 홀가분하게 자신의 삶을 펼쳐보고 싶은 것일 수 있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무조건 화내거나 묵살하지 말고, 배우자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진지하게 물어보자. 나와 생각이 다른 배우자에 대한 배신감이나 분노, 배우자가 나를 무시한다는 자괴감 같은 잘못된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남편의 경우 아내가 아내, 엄마라는 이름을 버리고 온전히 자신의 삶에 집중하려는 욕구가 절실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자 오해가 풀렸다.

둘째, 냉철하게 제2의 삶을 계획하자. 막연한 환상만 지니지 말고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잘 파악해서 현실적인 제2의 삶을 그려보자. 미래에 필요한 의료, 건강 관련 욕구를 계획하고 수립하는 게 필요하다. 자신이 지속적으로 흥미를 느낄 수 있고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활동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셋째, 윈윈할 수 있는 타협점을 찾자. 은퇴 후 삶은 그동안의 삶의 방식을 끝내고 다음 단계로 진입하는 출발점이다. 부부 모두에게 남은 인생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며, 행복하기 위해서는 협의 과정이 필수적이다. 상대방 입장에서 이해는 하지만 각자 원하는 삶이 정 다르다면 꼭 같은 공간에 함께 살아야 한다는 강박적 사고에서 탈피하는 것도 방법이다. 몸이 떨어져 있어도 배우자와 수시로 소통하면서 함께할 수 있는 세상이다. 서로를 응원하고 지지하면서 주말부부, 격주부부를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각자가 소망했던 퇴직 후의 삶도 살아볼 수 있고 알콩달콩한 제2의 신혼기를 맞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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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숙기 전문가

김숙기
나우미가족문화연구원 원장. 부부 상담 및 부부 갈등 조정 전문가이자 부부 코칭 및 가족 리더십 전문가다. KBS <사랑과 전쟁>, TV조선 <법대법> 등에 출연해 갈등을 빚고 있는 부부들의 고민을 해결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