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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처럼 아쉬람' 고제순 원장 인터뷰] 건강한 집에서 사는 것부터 행복은 시작된다

이현정 헬스조선 기자 | / 포토그래퍼 김지아

강원도 원주에는 꼭 들러야 할 명소가 있다. 바로 백운산 중턱에 위치한 흙집학교 ‘흙처럼 아쉬람’이다. 이 작은 흙집학교를 만든 고제순 원장은 건축가나 목수가 아니다. 믿기 힘들겠지만 철학박사다. 대학교수를 꿈꾸던 그가 모든 것을 뒤로하고 흙집학교를 세운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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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제순 원장

강원도 원주시 귀래면에 위치한 백운산. 분홍빛 꽃이 흐드러지게 핀 산자락을 오르다 보면 이정표를 하나 만나게 된다. 흙집학교 ‘흙처럼 아쉬람’. 이정표를 따라 걸어간 길 끝에는 작은 흙집 마을이 있다. 작은 움막부터 2층짜리 저택까지, 흙집은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이다. 하지만 흙집 주변을 가만히 걷다 보면 살아 숨 쉬는 흙집과 그를 둘러싼 산이 주는 생명의 에너지에 자연스럽게 마음이 편해진다.

흙집 마을을 지나 작은 오솔길을 따라 걷다 보면 큰 흙집을 한 채 만나게 된다. 이곳이 바로 흙처럼 아쉬람 고제순 원장의 집이다. 커다란 창문이 매력적인 이 집은 고제순 씨가 처음 지은 집이다. 흙집을 짓기 전까지 그는 건축과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1993년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대학교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후 꿈을 이루기 위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냈다. 여러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일하면서 기차에서 쪽잠을 자며 온종일 강의를 하러 다녔다. 생활이 엉망이 되자 병이 어김없이 따라왔다.

“천식에 아토피, 만성피로증후군까지… 시간이 지날수록 증상이 심각해졌습니다. 몸이 가려워 쪽잠을 자는 것마저 어려웠죠. 강의할 때는 천식 탓에 제대로 숨을 쉬기가 힘들었어요. 그렇게 건강이 나빠져 몸과 마음이 지칠 때쯤 삶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지방 대학에 강의가 있어 기차를 타고 가는데 갑자기 ‘나는 행복한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쉽게 답할 수 없었어요. 행복하지 않았던 거죠.”

오랜 고민 끝에 그는 행복에 이르기 위한 세 가지 기본조건을 생각해냈다. 올바른 음식을 먹고, 생명을 해치지 않는 집에 살고, 건강하게 사는 것. 그는 이 세 가지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그때까지 이뤄놓은 모든 것을 뒤로하고 행복을 찾기 위한 도전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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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제순 원장

집도 지었는데 살면서 못 할 일이 뭐 있을까

“행복을 위해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하던 중 떠올린 것은 자연의 삶이었습니다. 인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생명체는 음식, 집, 몸을 돌보는 것 등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하죠. 그런데 인간만이 자신의 생명을 타인에게 의존합니다. 누군가 생산한 것을 먹고, 누군가 지어준 집에 살고, 누군가 자신을 건강하게 지켜주기 기대해요. 그렇기 때문에 건강을 잃었을 때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잃은 듯 무기력해지는 겁니다.”

1995년 그는 고민 끝에 귀농을 결심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자연농법과 자연치유에 대한 공부를 하고, 스스로 집을 짓기 위해 통나무학교에 나가 손수 집 짓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그는 통나무집과 달리 한국의 지형에 어울리면서도 심신에 휴식을 줄 집을 짓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흙집이었다.

“어떤 집을 지을까 고민하면서 책과 자료들을 수집하기 시작했죠. 그때 기와집, 초가집, 귀틀집 등이 다 흙으로 지은 집이라는 점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누구나 쉽게 지을 수 있는 건강한 집, 그게 바로 제가 원하는 집이었어요.”

그중에도 황토로 집을 짓기로 한 것은 황토의 건강 효능 때문이다. 황토에는 철분, 마그네슘, 나트륨 등이 풍부하며, 다양한 효소가 든 원적외선을 뿜어내 혈액순환을 촉진하는 데 도움을 준다. 실제로 <동의보감>에서는 ‘황토 찜질을 하면 심신이 편안해지고 혈액순환에 좋다’고 설명한다. 또한 황토는 콘크리트와 달리 조직이 느슨해 자연적으로 습기와 온도를 조절하는 기능을 하고, 곰팡이와 유해균의 서식을 방지한다. 이 때문에 고제순 원장은 황토를 “건강한 집을 짓는 데 최적화된 재료”라고 말한다.

몇 년간의 공부를 마치고 2000년 5월부터 그는 자신의 첫 번째 흙집을 만들기 시작했다. 초보 건축가에게 집을 만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설계가 일고여덟 번이나 바뀌었다. 비라도 내리는 밤이면 서울에서 부랴부랴 강원도까지 가야 했고, 더운 날씨 탓에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과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포기할 수 없었다.

마침내 그해 11월, 그의 첫 번째 흙집이 완성됐다. 햇빛을 그대로 담아내는 커다란 창문과 거실 한쪽에 설치된 황토 벽난로, 아이들을 위한 2층 다락방 등 첫 작품에는 가족을 생각하는 고제순 원장의 마음이 가득 담겨있다.

내가 찾은 행복,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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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집학교 '흙처럼 아쉬람' 내부 모습

손수 지은 황토 흙집에 살면서 고제순 원장은 건강을 되찾았다. 강원도로 간 후 흙집을 짓고 농사까지 짓느라 강의하러 다닐 때보다 더 바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피곤하지 않았다. 황토 구들방에서 한숨 푹 자고 나면 다시 태어난 듯 몸이 가뿐했다. 아토피와 천식도 씻은 듯 나았다. 흙집에서 산 후 병원이나 약국을 가본 적이 없다는 고제순 원장. 그것이 바로 그가 진정 원하던 삶의 모습이었다. 그렇게 흙집이 주는 건강한 변화를 몸소 체험해본 그는 이 행복을 다른 사람들도 누릴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하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전문가도 아닌 내가 감히 수업을 해도 되나 고민했죠. 내가 아니라도 누군가 교육해주지 않을까했어요. 그런데 집을 찾아온 사람들이 모두 부러워하고 궁금해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사람들을 위해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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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집학교 '흙처럼 아쉬람'

2004년 고제순 원장은 초등학생 딸의 도움으로 <흙집학교>라는 인터넷 카페를 개설했다. 그것이 흙집학교 ‘흙처럼 아쉬람’의 시작이었다. 아쉬람이란 ‘수행자가 머무는 작은 움막’이라는 뜻으로 흙집학교를 찾는 사람들이 흙집 짓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를 단련할 수 있기를 바라는 고제순 원장의 소망이 담겨있다.

“제 호가 ‘여토(如土)’입니다. 흙처럼 생명을 품어 안는 삶을 살고 싶어서 지은 것이었죠. 그래서 이걸 한글로 바꿔 ‘흙처럼’이라고 쓰고 인도어인 ‘아쉬람’을 합쳐 완성한 이름이 ‘흙처럼 아쉬람’이에요.”

지금까지 흙집학교를 거친 수강생은 2300여 명에 이른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까지 건강한 집 짓는 법을 배우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수업은 20명 정원으로 흙집 짓는 기술과 설계 등을 교육한다. 초급반과 중급반으로 나뉘는데, 중급반의 경우 5박 6일 동안 흙집에 머무르면서 흙집 짓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오더라고요. 하지만 다들 목표는 똑같습니다. 건강한 집을 짓고 그 안에서 건강하게 사는 것이죠. 흙집 짓는 법을 배운 뒤 직접 집을 짓고 건강해졌다는 수강생들의 얘기를 들으면 얼마나 흐뭇한지 모릅니다. 하하.”

실제로 한 중년 여성은 유방암 3기 판정을 받은 뒤 항암치료를 중도 포기하고 스스로 흙집을 짓고 생활을 했다. 6년이 지난 지금은 건강을 되찾고, 남편과 함께 흙집 건축업을 하며 흙집을 널리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단다. 흙집을 통해 건강과 행복,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고제순 원장의 다음 목표는 ‘행복을 짓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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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집학교 '흙처럼 아쉬람'

“새로 시작한 프로그램 중에 ‘행복 짓기 캠프’라는 것이 있습니다. 거창해 보이지만 실은 사람들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방법을 나누는 시간이에요. 이런 노력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이 건강한 집에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이 저의 새로운 꿈이죠.”

초여름의 날씨가 무색할 정도로 선선한 흙집 창가에 고제순 원장이 서있었다. 뉘엿뉘엿 지는 해를 바라보며 자신의 꿈에 대해 얘기하는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철학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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