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기사
꿈은 우리 삶의 반영물이다
김하윤 헬스조선 기자 | / 도움말= 김희진(한양대병원 신경과 교수)
입력 2015/01/05 11:54
part3. 루시드 드림(Lucid dream·의식이 있는 꿈)
꿈 속이 곧 현실
공부도 하고 병도 고친다
히말라야를 오르고 있었다. 한참 오르다 보니, 내가 반소매 셔츠 차림으로 높이 쌓인 눈밭을 헤쳐 나가고 있음을 느꼈다. 왜 반소매 옷을 입고도 춥지 않은지 의아해하다가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차피 꿈이니 눈밭을 걷지 말고 산기슭을 따라 날아오르자고 결심했다. 곧 몸이 떠올랐고 하늘을 날며 끝없이 펼쳐진 히말라야 눈밭을 바라봤다. 평온함과 행복이 느껴졌다.
‘루시드 드림(자각몽)’을 겪었다는 사람들의 경험담이다. 루시드 드림은 꿈의 영향력을 믿는 데에서 출발한다. 꿈속에서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꿈을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다고 믿는다.
최근 온라인 상에는 루시드 드림에 관심이 많은 사람, 루시드 드림 꾸는 법을 배우려는 사람 등이 모인 인터넷 카페가 수십 개 열려 있다. 가입자가 3만8000여 명에 달한다. ‘자각몽 어플’도 생겼다. 루시드 드림은 무엇일까.
깨어 있을 때처럼 꿈속에서 판단하고 결정
인도나 티벳에서는 1000년 전부터 ‘꿈 요가’를 하며 꿈을 꾸는 상태에서 완전히 깨어 있는 훈련을 했다고 전해진다. 이것이 루시드 드림과 유사한 것이다.
루시드 드림을 꾸는 사람들은 꿈을 꾸는 의식 상태에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게 된다. 날아다니고, 좋아하는 연예인을 만나고, 며칠 뒤 있을 면접을 예행 연습해 볼 수 있다.
깨어난 뒤에도 꿈 내용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루시드 드림’이라는 용어는 네덜란드 정신과 의사인 프레데릭 반 에덴이 1913년 펴낸 《꿈의 연구》라는 책에 실리면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는 1898년부터 1912년까지 352개의 루시드 드림을 기록했다. 이후 1969년 미국 과학논문 선집인 <변화된상태의 의식>에 반 에덴의 논문이 소개되면서 루시드 드림이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내면의 성장과 상처치유도 가능
루시드 드림은 꿈을 조종하면서 자신의 실제 실력도 키울 수 있다고 본다. 단순히 신기한 경험과 재미를 위해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기도 하고, 평소 두려워서 하지 못했던 승마를 연습하거나, 꿈속에서 공부나 경영 연습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 외에 운동실력 향상, 자기 개발, 통찰력 향상 등의 도구로 꿈을 활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내면의 성장과 치유도 가능하다고 본다.
트라우마·심리적 상처가 괴물이나 검은 그림자 등 무서운 악몽의 형태로 나타날 때, 이를 꿈이라 여겨 피하지 않고 맞서면 자존감이 높아지고 상처가 치유돼 더욱 생동감 넘치는 현실의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운동선수들이 기록을 향상시키는 데 활용하기도 한다. 슬럼프에 빠져서 고난도 기술을 구사하기 어려울 때, 루시드 드림을 꿔서 꿈속에서 마음껏 고난도의 기술을 구사한다는 것이다.
잠에서 깬 뒤, 꿈에서 기술을 구사했을 때 같은 마음과 몸의 느낌을 연상하면 기술 구사가 가능해진다고 한다. 병을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주장도 있다. 꿈속에서 자신의 육체를 치료한다면, 실제 육체에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본다.
‘잠자면서 눈 움직이라’는 지시 90%가 이행
루시드드림연구소를 설립한 스티븐 라버지 박사는 꿈꾸는 동안 뇌의 작동 상태가 변하면서 의식이 깨어나 루시드 드림이 생긴다고 말한다. 꿈을 꾸는 동안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자각’이 왜 일어나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원리가 밝혀지지 않았다.
루시드 드림 연구자는 루시드 드림이 실재한다는 뇌과학적 증거가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이와 관련된 연구 결과가 있다. 스탠퍼드대학 수면 실험실 연구팀은 루시드 드림을 꿀 줄 아는 사람들에게 꿈속에서 ‘특정 유형으로 눈을 움직이라’고 지시한 후 수면 상태를 확인했다.
그 결과, 90%가 실제 자면서 눈을 움직였다. 그리고 루시드 드림을 꿀 수 있는 사람 3명에게 루시드 드림을 꾸면서 빠르게 호흡하거나 호흡을 멈추되, 호흡 방식을 바꿀 때마다 특정 유형으로 눈을 움직여 신호를 보내라고 지시했는데, 이에 성공했다는 연구가 있다.
“렘 수면 장애의 증상”이라는 反論도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이 많다. 한양대병원 신경과 김희진 교수는 “루시드 드림은 의과학에 없는 용어”라며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게 렘수면 장애라는 질환”이라고 말했다. 렘수면 장애가 있으면 ▷자신이 꿈을 꾸는 도중에 이것이 꿈이라는 것을 깨닫고 ▷꿈 꾸는 도중 몸을 움직이고 싶은데 몸이 잘 움직여지지 않으며 ▷꿈에서 하는 행동을 실제로 하는 등의 증상을 보인다.
렘수면 장애가 있는 사람 10명 중 3명은 파킨슨병, 알츠하이머성치매, 뇌졸중 같은 신경학적 질환을 판정받는다고 한다. 김희진 교수는 “사람들은 꿈꾸면서 이것을 꿈이라고 여기지 않고, 꿈의 상당수를 기억 못 하는 게 정상”이라며 “그런데 치매가 진행 중이어서 뇌에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 과도하게 많이 쌓이면 정상보다 렘수면이 길어지고, 결국 수면·꿈·의식에 관여하는 멜라토닌, 오렉신, 세로토닌 등의 호르몬 균형이 깨져서 렘수면 장애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훈련만 하면 원하는 대로 루시드 드림을 꿀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 김 교수는 “렘수면을 의식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는 말인데, 이는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사실”이라며, “루시드 드림의 과학적 증거라는 연구 결과에 대해서도 신뢰도나 연구 설계 내용부터 정확히 짚어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