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마티스질환은 건강하던 한 사람의 삶에 갑자기 찾아와 인생을 바꿔 놓는다. 신체 이곳 저곳이 굳고, 변형되고, 파괴된다. 혼자 일어설 수도 없고, 혼자 손을 쓰기도 힘들어진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나타나는 변화와 극심한 통증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도 있다. 류마티스질환을 ‘악마의 병’이라고 부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지만 지금은 류마티스질환에 걸려도 운동하고, 시장에 가고, 직장도 다닌다. 류마티스질환 때문에 겪는 고통은 여전하고 완치도 어렵지만, 관리하며 일상을 보낼 수 있는 병이 됐다. 심지어 예방까지 가능해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한양대 류마티스병원이 있다. 국내 유일의 류마티스병원이다.
류마티스질환은 내 몸을 지켜야 할 면역세포가 알 수 없는 이유로 내 몸을 공격해서 생긴다. 류마(Rheuma)는 그리스어로 ‘흐름’이라는 뜻인데, 나쁜 액이 신체 각 부위로 흘러 들어가서 통증을 일으킨다는 의미다. 혈액을 타고 이동하던 면역세포가 관절을 공격하면 류마티스관절염, 근육을 침범하면 근염, 척추를 공격하면 강직성척추염이라 부른다. 류마티스질환의 종류는 루푸스, 통풍, 경피증 등 100여 가지에 이르고 증세도 다양하다.
◇ 1986년 류마티스내과 개설
20~30년 전만 해도 류마티스질환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병명도, 원인도 몰라 치료가 불가능했다. 이때 가장 먼저 류마티스 치료에 나선 병원이 한양대병원이다. 당시 내과 전문의였던 김성윤 교수(현김성윤 류마티스내과의원 원장)가 스타트를 끊었다. 미국 뉴욕 마운트사이나이 의대에 유학을 다녀 온 후 1986년 국내 첫 류마티스 내과를 병원 안에 개설했다. 의료진은 김성윤교수 단 한 명이었다.
당시 김 교수는 병원의 지원을 받아 여러 언론사를 돌아다니며 류마티스질환에 대해 적극적으로 알렸다. 각 병원 의료진을 모아 놓고 류마티스 연수 강좌를 열기도 했다. 이러한 활동 결과, 3년 만인 1989년 류마티스내과는 대한내과학회로부터 정식으로 내과의 분과(分科)로 인정받았다. 그리고 1998년 한양대병원 내에 국내 첫 류마티스병원이 세워졌다. 현재 한양대 류마티스병원에는 배상철 병원장을 비롯해 7명의 교수, 전임의 및 임상강사 4명, 전공의 3명이 있다. 류마티스내과, 관절재활의학과, 통증의학과, 골관절외과, 조기관절염과, 류마티스영상의학과 등을 비롯한 6개 진료과가있다.
한양대 류마티스병원은 의료법상에도 없는 병원 분류 기준인 ‘류마티스질환 분야의 4차 병원’이라고 불린다. 다른 3차 진료기관(대학 및 종합 병원)에서 못 고치는 병을 치료하는 병원이라는 뜻이다. 그만큼 치료가 어려운 중증 환자가 많다. 이를 위해 병원은 ‘전문화’와 함께 ‘맞춤 진료’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도록 진료 시스템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 우선 류마티스 각 질환별 특수크리닉을 운영한다. ‘관절염 크리닉’ ‘루푸스 크리닉’ ‘강직성척추염 크리닉’ ‘성인형 스틸 크리닉’ ‘통풍 크리닉’ ‘경피증크리닉’ ‘근염 크리닉’ ‘혈관염 크리닉’ ‘베체트병 크리닉’‘발 크리닉’ 등 총 10개다. 특수 크리닉에서는 각 류마티스질환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와 진단, 치료 등을 담당한다. 치료가 쉽지 않고, 복합적인 증상을 보이는 환자에 대해서는 각 진료과가 협력해 맞춤 진료를 한다. 이를 위해 정기적인 컨퍼런스도 열고 있다. 이런 시스템 운영이 가능한 것은 병원 의료진의 높은 전문성이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이다. 루푸스 진료를 맡고 있는 배상철 교수는 세계 루푸스 전문가 모임(SLICC)의 위원 30명 중 한 명이다. 척추염 분야의 김태환 교수, 경피증 분야의 전재범 교수도 한국인에게 맞는 치료 가이드를 만들어 국내 학계에 제시한 전문가다.
◇ 자가조혈모세포 이식 등 신치료법
한양대 류마티스병원은 류마티스질환 중 루푸스와 같은 난치성 류마티스 질환에 주력하고 있다. 루푸스란 혈액속에 비정상적인 림프구가 형성돼 피부와 관절, 혈액, 신장 등 각 기관과 조직에 만성적인 염증을 일으키는 자가면역질환이다. 붉은 반점과 짓무름 증상이 생긴다고해서 `‘홍반성 낭창’으로도 불린다. 지금까지 루푸스 치료에는 스테로이드와 면역억제제 등이 주로 사용돼 왔으나 약물의 장기 복용으로 인한 중증 감염, 골다공증, 악성종양 발생 등과 같은 여러 부작용이 발생해 대책 마련이 시급했다.
병원은 루푸스 환자에게 자가조혈모세포 이식 수술을 시행하는 방법을 통해 루푸스 환자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기여하고 있다. 자가조혈모세포 이식 수술은 환자의 혈액에 존재하는 비정상적인 림프구를 완전히 제거한 뒤 미리 채취해 놓은 환자의 건강한 조혈모세포를 혈액 속에 주입해 면역체계를 재구성하는 치료법이다. 이 치료를 통해 이식한 조혈모세포가 성공적으로 안착되면 정상적인 면역세포가 늘어나 류마티스질환의 공격으로부터 몸을 지킬 수 있다. 배상철 교수는 “아직 기존 치료로 잘 조절되지 않고, 심각한 장기 손상 가능성이 높은 루푸스를 포함한 일부 난치성 류마티스 질환자에게만 제한적으로 시행하고 있다”며 “하지만 이 시술법은 환자의 면역체계를 새롭게 바꿀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자가면역질환 치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말했다. 한양대 류마티스병원은 현재 자가조혈모세포 이식 수술법을 발전시킨 항체줄기세포치료법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 미국.일본과 진료 네트워크도 구축
현재까지 여러 연구를 통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류마티스질환의 발병 원인 중 60%는 유전적 요인이다. 그래서 한양대 류마티스병원은 임상연구센터를 설립해 유전자를 이용한 류마티스질환의 진단 및 치료법 개발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배상철 교수는 “류마티스 가족력이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유전자를 분석하면 미리 류마티스 고위험군을 분리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이는 류마티스 예방이라는 성과로 이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미국·일본 등과 진료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지난 1월에는 미국 하버드대 의대 연구팀과 함께 류마티스관절염 발병에 관여하는 유전자 규명에 성공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연구팀은 류마티스관절염 발병에 관여하는 42개 유전자의 위치를 밝혀 냈고, 이를 통해 새로운 류마티스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2008년부터는 보건복지부와 함께 한국인 류마티스관절염 환자에 대한 코호트 분석 연구를 진행 중이다. 코호트 연구란 특정 요인에 노출된 집단과 노출되지 않은 집단을 추적 연구해 질병 발병과의 연관성을 조사하는 연구 방법이다. 배 교수는 “이를 통해 류마티스질환을 유발하는 환경적·유전적 요인 등을 밝힐 계획”이라고 말했다.
“류마티스질환의 발병 원인 중 60%는 유전적 요인이다.
한양대 류마티스병원은 임상연구센터를 설립해 유전자를 이용한 류마티스질환의 진단 및 치료법 개발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