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환청과 환각 속에서 작곡한 어둡고 짙은 낭만을 듣다
기고자 오재원 | 월간헬스조선 11월호(106페이지)에 실린 기사임
입력 2014/11/18 15:01
Schumann Cello concerto A minor Op.129
첼로의 선율은 시적이고 애수에 차 있으면서도 열정적이다. 슈만은 어린 시절부터 첼로를 배우고 많은 첼리스트들과 교류하면서 이런 첼로의 기질을 잘 이해했다. 렘브란트가 캔버스에 대작을 그리기 전, 데생 등으로 여러 습작을 그린 것처럼 슈만은 ‘첼로협주곡 A단조(작품번호 129)’를 쓰기 1년 전부터 많은 첼로 소품을 작곡하면서 대작을 위한 준비를 했다.
이 곡은 슈만이 세상을 떠나기 6년 전인 1850년 뒤셀도르프에서 작곡했다. 6일 만에 스케치를 끝내고 8일 후 완성한 이 첼로협주곡에는 죽음을 앞둔 어둡고 짙은 정서가 낭만적인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이때 슈만은 심한 조현병을 앓았으며, 그에 따른 심한 환각 증세에 시달리다가 깨어나면 이 곡을 완성하려고 애썼다고 한다. 그의 아내 클라라는 이러한 슈만의 모습에 대해 “마치 환청과 환각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절실한 몸부림처럼 보였다”고 회상했다. 빈센트 반 고흐가 정신질환으로 생 레미 정신병원에 입원했을 때 그린 유화들이 오버랩된다.
슈만의 인생에는 무서운 복병이 도사리고 있었다. 피아노 연습을 위한 기계를 개발하다가 손가락 부상을 당한 이후 간간이 발병하던 정신질환이 더욱 빈번해져 급기야 1854년 라인강에 투신하기에 이르렀다. 극적으로 구조돼 살아났으나 조현병은 더욱 악화돼 1856년 클라라와 제자 브람스가 지켜보는 가운데 46세로 세상을 떠났다. 슈만의 조현병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전해지는데 누나는 어릴 때 정신질환으로 사망했고, 슈만 또한 이로 인해 고통 속에 살았다.
슈만의 악보를 보면 ‘오이제비우스’와 ‘플로레스탄’이라는 표기를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오이제비우스(Eusebius)란 내향적인 성격이고, 플로레스탄(Florestan)이란 외향적 성격을 말한다. 슈만 안에는 이 두 가지가 서로 충돌하면서 끊임없이 갈등하고 대립했다. 상반된 정신세계가 악보에 담겨서 일까. 아직도 많은 음악가들이 그의 곡은 연주하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슈만은 낭만주의 작가인 장 파울에게 깊이 심취해 큰 영향을 받았다. 그는 친구에게 “만약 모든 사람이 장 파울의 책을 읽었다면 우리는 더 좋아졌겠지만 동시에 더 불행해졌을지도 몰라. 장파울은 때때로 내 마음을 어둡게 만들지만, 그러나 평화의 무지개와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지니는 힘이 달콤한 눈물을 머금게 만들고, 우리는 시련이 놀라울 정도로 순화되어 평탄해짐을 깨닫는다”고 글을 썼다. 이 작품에서도 이런 감정이 스미어 나오고 있다.
슈만은 항상 “나는 거장을 위해 협주곡을 작곡하지 않는다”고 장담했다. 그래서인지 어떤 협주곡도 그저 편안하고 즐겁거나 기교를 과시하지 않는다. 이 첼로협주곡에도 기교가 없다. 사색하는 것처럼 낭만적이고 내적인 성찰이 있다. 독주 악기로서 결코 첼로만 혼자 뛰어나게 드러나지도 않는다. 고전적인 협주곡처럼 독주와 관현악이 대립돼 있는 것이 아니고 첼로가 오케스트라의 한 악기 역할을 한다.
이 첼로협주곡은 후대 작곡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준다. 곡 자체는 ‘빠르고-느리고-빠른’ 전형적인 3악장 고전주의 양식이지만, 악장간 휴식이 없는 순환 형식으로 마치 리스트의 교향시처럼 낭만적이다. 또한 제2악장에서처럼 작곡가의 심리적 이중성을 협주곡의 내용에서 부상시켜 독일 낭만주의 진수를 투영했다. 한편 제3악장에서는 고전 소나타 형식에 서정적이고 격정적인 성격을 접목했다.
"슈만은 낭만주의 작가인 장 파울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
슈만의 첼로 협주곡에서도 장파울의 낭만주의적인 정서를 느낄 수 있다."
MORE TIP
슈만의 첼로협주곡 악장별 소개
제1악장 너무 빠르지 않게 현과 목관 악기 도입부를 지나 독주 첼로가 긴 제1주제를 연주한다. 리듬과 선율이 대조 없이 서정적이다. 첼리스트 카잘스는 이 악장에 대해 “전자는 고통속에서 외치는 절규이고, 후자는 위로받을 수 없는 애통함”이라고 했다. 제2악장 느긋하게 첼로 곡 중에서 가장 슬픈 곡 중 하나인 짧은 악장이다. 시적인 로망스가 가득하고, 아련하게 시작하는 첼로 독주는 관현악의 첼로와 동행하면서 향기로운 낭만주의색채의 극치를 이룬다. 제3악장 매우 발랄하게 행진곡풍으로 단호하고 확신에 찬 제1주제가 오케스트라와 독주 첼로의 대화 형식으로 제시된다. 잠시 후 풍부한 감정의 제2주제가 나타나면서 제1주제와 두렷한 대조를 이루게 된다. 발전과 재현을 지나 코다를 거쳐 힘찬 오케스트라와 함께 첼로는 빠른 프레이즈로 밝게 끝난다.
오재원
한양대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대한천식알레르기학회 국제이사. 한양대의대 키론오케스트라 지도교수이며, 오재원 교수의 ‘오페라이야기’ 블로그를 운영하고 <의사신문>, 월간지<휴플러스> 등에 클래식 이야기를 연재하면서 고전음악의 이해를 돕고 있다. 저서로는 클래식 음악 가이드 베스트셀러인 《필하모니아의 사계 1·2권》, 《한국인의 알레르기 식물》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