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듯 지금은 5가구 13식구가 한 지붕 아래 살고 있지만, 12년 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네 자녀의 식구 모두가 각각 한 가족을 이루고 흩어져 살았다. 그때 얘기를 좀 해보려고 한다. 손주가 학교에서 ‘가족’을 주제로 그린 그림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가족에 포함돼 있지 않았던 것이다.
심지어 그림 안에는 그가족이 키우던 애완동물이 버젓이 자리를 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문득 “할아버지인 내가 손주에게는 애완동물보다 못한 존재구나, 할아버지인 나보다 손주 녀석에게는 애완동물이 더 가족 같은 존재구나”라는 생각이들면서 씁쓸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가 끄덕여졌다. 서운하긴 하지만 손주 녀석은 정직한 그림을 그린 것이었다. 말이 가족이지, 흩어져 살 때 손주에게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진정한 의미의 가족 울타리에 포함시킬 수 없었을 것이다. 큰아들의 초등학교 입학 때가 오버랩됐다. 학교에서 가족을 그리라는 숙제가 있었다. 형제 넷과 우리 부부를 그렸다. 그런데 문제가 좀 있었다. 아빠는 몸통만 있고 얼굴이 없었다. 아들이 본 아빠의 모습은 언제나 휴일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는 것이었으니 얼굴 없는 이불과 이불 밖으로 나온 발만 그린 것이었다. 본 대로 그린 정직한 그림이었다.
이런 가족 그림이 12년을 함께 살아오면서 큰 변화를 일으켰다. 지금 그들은 가족에 으레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그려 넣는다. 참 고마운 일이다. 그리고 그것이 정직한 그림이 됐다. 이 기간을 함께한 산 증인이 있으니 바로 반려동물이다. 그저 귀여운 ‘애완동물’에 불과했던 동물들이 인생을 함께할 ‘반려동물’로 바뀐 히스토리는 우리가 손주들에게 한 가족이 된 히스토리와 그 맥을 함께 한다.
현재 우리 집에는 반려견이 두 마리고, 고양이는 개체수 미상이다. 집을 지은 기념으로 사돈이 진돗개 한 마리를 선물했고, 원래 키우던 반려동물을 데리고 온 경우도 있었다. 당연히 가족안에는 개를 좋아 하는 식구도 있었고, 싫어하는 식구도 있었다. 회의를 통해 반려견을 받아들이기로 했지만, 원래 싫어하던 사람이 개와 쉽게 친해지기는 힘든 노릇이었다.
그러던 중 진돗개(이름은 알동이)를 훈련시키다가 전문훈련원에 입소시킨 일이 있었다. 그런데 일주일쯤 지났을까 훈련소에서 가족 호출이 왔다. 담당자 말로는 훈련에 부적합하단다. 녀석은 사람으로치면 ‘퇴학’을 맞은 것이다. 불명예다. 우리 모두 상심했고, 걱정했다. 우리보다 더 그 녀석이 상심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런데 정작 그 녀석은 아주 즐거워하는 표정이었다. 다시 가족을 만나니 신이 났나 보다. 알동이 키우는 것을 반대하고, 쉽게 친해지지 못했던 가족도 이 순간만큼은 함께 걱정했다가 함께 즐거워했다. 가족 모두가 알동이와 함께 걱정하고 기뻐했다.
한번은 큰 사고가 났다. 사위가 맛있는 별식을 장만해서 알동이에게 준 적이 있다. 별식 먹이를 주면서 남은 별식을 알뜰하게 주려고 밥그릇을 바닥에 툭툭 쳤다. 알동이는 이 툭툭 치는 행동이나 소리에 놀랐나 보다. 사위의 손을 덥석 물었다. 이런 큰 사고를 당한 사위보다 그의 아들인 손자가 흥분했다. 자기 아빠를 물었다고 흥분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맛있는 별식을 주는데 그 정성도 모르고 물었으니 흥분할 만하다. 손자는 그 죄를 물어 알동이를 살처분해야 한다고 강한 주장을 했다. 그때 이를 말리기 위한 온 식구들의 노력은 정말 눈물겨웠다. 모두가 사위와 손주에게 달라붙어 알동이 대신 용서를 빌었다. 각종 선물과 조건을 내걸어 주고서야 알동이는 겨우 용서를 받을 수 있었다.
이제 알동이는 우리 가족이다. 이 녀석이 집을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면 든든하고, 이 녀석과 인사를 하지 못하고 집에 들어가야 하는 날은 상상도 할 수 없다. 함께 웃고, 함께 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처음 12년 전 한 울타리 안에 다섯 가구가 모두 모였을 때만 해도 서로 어색했고, 모이는 것을 불편해했고, 여전히 남남이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알동이가 그러했듯이 함께 웃고 함께 울었다. 각기 흩어져서 싸우다가도 공공의 적이 나타나면 함께 힘을 모았고, 서로의 잘못을 서로가 대신 용서를 빌면서 화해시키기도 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한 가족이 됐다. 이제 우리는 서로가 무엇을 불편해하는지, 서로가 어떤 점을 배려하기 원하는지 눈빛만 봐도 알 수 있고, 이를 서로 존중한다.
이제는 물론 다 커 버린 손주 녀석의 그림에 할아버지와 할머니, 반려견 모두가 가족으로 포함된다. 하지만 아직 반려견과 할아버지 중 누가 서열이 높을 것인가에 대한 확신은 못 하겠다. 가족이 이사할 때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반려동물을 무릎에 앉히고 제일 먼저 차에 타고 있어야 버림받지 않는다는 씁쓸한 우스갯소리가 있지 않은가.
내가 귀가할 때 알동이 녀석이 꼬리를 치며 반기는 것을 보면 적어도 내 서열이 알동이와 비슷한 것은 맞는 듯싶다. 다음 회부터는 이렇게 한 가족이 되기까지 구체적으로 우리 가족이 지켜야 했던 일, 에피소드를 소개하려고 한다.
“피를 나눈 가족이라고 모두 가족인 것은 아니다. 갈등과 화해 눈물이 있어야 진짜 가족이 된다.“
이화여대 교수이자 정신과 건강의학 전문의로 50년간 환자를 돌보고 학생을 가르쳤다. 지금은 ‘사단법인 가족아카데미아’를 운영하며, 청소년 성상담, 부모교육 등을 펼치고 있다.
월간헬스조선 10월호(176페이지)에 실린 기사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