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귀 질환·청각 재활 불모지 개척한 1세대! 소리귀 클리닉 전영명 원장
김수진기자 | 조은선 (St.HELLo)
입력 2014/10/11 09:00
베스트닥터
이비인후과(耳鼻咽喉科)는 귀, 코, 목을 보는 진료과목이다. 10여 년 전만 해도 주로 코와 목을 진료하는 곳이라는 인식이 보편적이었다. 나이 들면서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귀 질환은, 원인을 찾기도, 치료하기도 어렵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기 때문이다. 귓병은 중이염 정도를 다뤘을 뿐이다.그런데 2002년에 “청각을 포기하지 말라”면서 ‘귀’만 진료하는 낯선 의원이 생겼다. 바로 서울 군자동과 화곡동 두 곳에 위치한 ‘소리귀클리닉’이다. 당시 ‘귀 클리닉’ 하면 거부감을 갖는 인식이 많았기에 우선 ‘소리이비인후과’라는 간판으로 개원했지만, 지금은 당당하게 귀 클리닉을 표방한다. 그리고 귀 아픈 환자가 매일 평균 150여 명씩 이곳을 찾는다. 그만큼 소리귀클리닉은 10여 년에 걸쳐 귀 질환 치료에 관한 전문성을 인정받았다. 이를 이끌어 온 귀 클리닉 1세대 대표주자 전영명 원장을 만나 봤다.
사명감으로 시작한 ‘귀 질환’ 불모지 개척
전영명 원장이 국내 귀 질환 치료 시스템의 문제점을 절실히 느낀 것은 대학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로 근무하던 때다. 인공와우수술을 세계 최초로 성공시킨 병원인 미국 ‘하우스 청각연구소’에서 2년간 연구원으로 근무할 기회가 있었는데, 어느 날 이 병원에 한국인 환자와 보호자가 찾아왔다. 이 연구소에서 인공와우수술을 받고 재활 중인 어린아이와 부모였다. 그들은 전 원장에게 “한국에는 왜 이런 병원이 없느냐”고 하소연했다. 연구소에서 수술을 성공적으로 받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한국에는 귀 재활을 담당할 곳이 없다는 말을 듣고, 경제적 부담을 감당하면서 미국에 머무르고 있었다. 전 원장은 “미국 귀 전문병원의 시스템을 경험하면서 국내의 귀 질환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낮은지, 시스템이 얼마나 열악한지 깨달았다”며 “이비인후과 의사로서 사명과 비전을 펼칠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분야겠다는 확신이 그때 들었다”고 말했다.
전 원장은 귀국 후 귀 재활은 고사하고 귀 질환에 대한 치료 불모지던 국내에 귀만 진료하는 의료기관 ‘소리귀클리닉’을 열었다. 전 원장은 환자 한 명을 1시간까지도 진료한다. 아무리 시간이 걸려도 환자가 정확히 이해할 때까지 진료에 대한 설명을 거듭한다. 다음 환자의 대기시간은 당연히 길어진다. 하지만 환자들은 불만이 없다. 자신도 똑같이 정성 가득한
진료 상담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병원의 시설이나 프로그램은 연수 경험을 살려 미국의 하우스 청각연구소를 벤치마킹했다. 인공와우수술 재활시설을 비롯해 다양한 귀 질환 재활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이런 프로그램은 당시 국내 대형 대학병원에도 거의 없었다. 특히 음악전문특수재활센터인 ‘소리뮤직센터’가 이색적이다. 기존 귀 재활은 언어를 인지하는 것과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해 주는 수준 정도까지였다. 하지만 전 원장은 소리뮤직센터에 2명의 음악치료사를 두고 음악재활을 전문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피아노부터 실로폰, 미니심벌즈, 기타 등 다양한 악기를 구비하고 있다. 이 악기들은 사람 목소리보다 주파수와 음역대가 다양하기 때문에 인공와우수술을 받은 환자의 청각신경을 섬세하게 되살리는데 도움을 준다. 그룹 활동도 있다. 음악을 통해 정서적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강화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음악치료에 익숙해지면 일부 환자는 노래까지 부를 수 있게 된다. 음악치료를 받은 청각장애 아동을 위해 작은 연주회도 정기적으로 열린다. ‘소리리틀오케스트라 연주회’다. 자신의 성장을 가족 앞에서 자랑하게 해줌으로써 어린이 환자의 재활 의욕을 높여 준다.
전 원장은 환자와 일반인에게 귀 질환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병원 1층 로비에 ‘히어링 갤러리’라는 디지털 갤러리도 만들었다. 화면을 터치하면 인공와우 등 귀 질환에 관한 최신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전 원장은 “사람들이 꼭 의사를 만날 약속이 있어야만 병원에 오는 게 아니다”며 “보호자, 대기하는 환자, 병원 앞을 지나가는 사람에게까지 올바른 귀 질환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설치했다”고 말했다.
소리귀클리닉은 처음에는 소리이비인후과로 강남구 청담동에 개원했지만, 2010년 광진구 군자동으로 옮겼고, 2년뒤 강서구 화곡동에 분원을 냈다. 소리귀클리닉은 국내외 귀 질환 석학이 참여하는 ‘소리국제인공와우 심포지엄’을 정기적으로 개최한다.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주최하는 심포지엄이지만, 수준은 세계적이다. 세계 유수의 논문이 발표되며, 소리퀴클리닉의 인공와우수술 장면이 실시간으로 중계된다.수술에서 달팽이관의 내부 손상을 최소화하기 위한 안정적인 전극삽입기술을 선보이기도 한다.
“기존 인공와우수술은 달팽이관 외벽을 뚫고 집어넣는 딱딱한 인공와우 전극으로 청각세포가 다칠 수 있다.
전 원장이 도입한 청력보존개념은 달팽이관 외벽이 아닌 정원창이란 부분을 통해 수술하는 방법이다.“
지난 한 해만 의학논문 16편 발표
전 원장은 국내 의료계에 ‘처음’이라는 역사를 많이 기록했다. 2005년에는 ‘인공와우수술 시 청력 보존’ 개념을 국내에 최초로 도입했다. 기존 인공와우수술은 수술 시 환자가 청력이 미미하게 남아 있어도 이를 보존하기 힘들었다. 달팽이관 외벽을 뚫고 집어넣는 딱딱한 인공와우 전극으로 청각세포가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전 원장이 도입한 청력 보존 개념은 달팽이관 외벽이 아닌 정원창이란 부분을 통해 집어넣는 방법이다. 그러면 남아 있는 청력이 보존된다. 정원창은 달팽이관으로 들어가는 작은 입구다. 2011년에는 성공률90%이 넘는 외이도성형수술법을 최초로 개발했다. 외이도성형수술은 귀의 입구가 막힌 사람에게 귓구멍을 만들어 주는 수술이다. 전 원장의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전 원장이 발표한 논문은 16편이 넘는다. 자신은 물론 병원의 청력재활치료사들도 매주 한 번씩 의무적으로 세미나를 한다. 세미나에서는 치료사들이 공부한 논문을 공유하면서 의견을 나눈다. 소리귀클리닉은 전 원장을 비롯해 전문의 5명이 근무한다. 이들은 군자점과 강서점을 오가며 난청과 이명, 중이염, 어지럼증, 소이증 등을 진료한다. 검사실과 입원실, 수술실, 청각재활실 등을 갖췄으며 간호사와 청각사, 언어치료사, 음악치료사, 진료지원인이 함께 근무한다. 전 원장은 이에 그치지 않고 병원을 계속 성장시키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