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기사
죽음의 불안이 투영된 빗방울 속 안정감
기고자: 오재원 교수
입력 2014/10/05 09:00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
클래식 음악은 이해하기가 어렵다고들 말한다. 그런데 이런 말은 클래식 음악이 성행하던 때에도 있었다. 영화 <아마데우스>에는 모차르트가 연주 후 황제로부터 치하를 받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때 황제가 “반음이 너무 많고 복잡하여 이해하기가 어렵다. 음표를 줄이라”고 명령하는 장면을 보면 이를 알수 있다.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을 듣고 있으면 남성적인 비장감과 애수가 깃들어 삶의 고귀함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이 곡도 초연 당시 이해하기가 너무 어려워 연주회가 끝나고 많은 사람이 두통약을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소통을 위해서는 서로가 길들여져야 한다”고 생택쥐베리의 어린 왕자가 말했듯이, 예술을 만나기 위해서는 그에 길들여져야 한다. 이를 위해 좋은 음악을 하나씩 꺼내 독자 앞에 펼쳐 보고자 한다. 접근하기 쉬운 음악부터 소개하겠다.
곡 간간이 먹구름이 낀 것 같은 불안정한 선율이 나타나지만, 이런 불안함도 무척 아늑하게 느껴지게 된다. 빗방울 전주곡을 들을 때 이런 불안함 속 아늑함을 느끼게 되는 것은 이 곡을 작곡할 당시 쇼팽의 신체적・정서적 상태와도 연관이 있다고 생각된다. 이 음악에 얽힌 쇼팽의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음악을 들으면 감동이 더 크게 느껴질 것이다.
폴란드에서의 첫사랑 콘스탄치아 글라드코프스카의 이별과 보젠스카와의 또 다른 이별 뒤 조르주 상드를 만났을 때는 심신이 모두 지친 상태였다. 이런 쇼팽에게 상드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이전의 사랑과 달리 남성적이고 직선적이며 사교적인 여류시인 상드는쇼팽을 불 붙는 정열의 노예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던 중 심한 폐결핵으로 건강이 나빠진 쇼팽을 위해 두 사람은 따뜻한 스페인 남쪽 지중해의 섬 마요르카에 둥지를 튼 것이다. 상드의 열정적이면서도 모성애적인 사랑과 보살핌을 듬뿍 받으며 모처럼 깊이 음악에 빠져들 수 있었던 쇼팽은 이 시기에 많은 작품을 탄생시켰다.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서 가장 생산적인 시기로 평가될 정도였다. 시를 음악으로 풀어내는 작곡가답게 아름답고 영롱한, 그러면서도 강한 정열과 사랑이 담긴 곡들이 이어졌다.
하지만 두 사람의 평안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생각보다 마요르카 섬의 날씨는 좋지 않았다. 당시 우기에 접어든 우중충하고 습한 날씨 때문에 고생이 극심했다. 그녀는 회고록에서 ‘비 오는 어느 날 쇼팽의 결핵약을 구하러 팔마로 나갔다가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밤길에 돌아와 보니 쇼팽이 아직 자지 않고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쇼팽은 “사랑하는 조르주, 내 앞에 있는 건 분명 당신 맞지? 난 당신이 급류에 휘말리는 환영을 봤소. 대체 어찌된 일인지? 내 가슴에도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는데….”라고 말했다. 그때 처마 끝에서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는데 쇼팽은 그 소리를 피아노에 넣고 있었다’라고 적고 있다.
폭풍우 치던 발데모사 수도원의 어느 날 밤 쇼팽은 빗방울 소리 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 더 악화된 쇼팽의 병세 등 여러 어려움으로 두 사람의 사랑은 끝이 난다. 그로부터 1년 후 쇼팽은 세상을 떠났다. 당시 쇼팽의 사인은 폐결핵으로 알려져 있지만, 훗날 부검 결과는 결핵이 아니라 기관지가 말라서 생기는 희귀병인 낭포성 섬유종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빗방울 전주곡은 불안함 속 아늑함을 느끼게 된다. 이 곡을 작곡할 당시 폐결핵으로 심신이 지친 쇼팽의 건강상태와 연관돼 보인다”
◇쇼팽의 <전주곡>이란?
쇼팽의 <전주곡>은 24개의 모든 조에 걸쳐 작곡되었지만 조 배열순서와는 상관없이 나열되어 있다. 어느 곡을 별도로 연주하더라도 나름대로 충분히 아름답고 풍부한 색채를 띠고 있다. 하지만 전체를 연속으로 연주하면 형용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인 아름다움에 취하게 된다.
제4번은 애수가 깃든 우아한 곡으로 쇼팽이 매우 좋아하여 그의 장례식 때 연주된 곡이고, 제6번은 비길 데 없이 시적인 아름다움이 깃든 곡으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제16번은 과격할 정도로 정열적이고, 제3번과 제23번은 목가적이면서 경쾌한 분위기이며, 제11번은 유쾌하고, 제17번은 연인들의 환희를 그리면서, 제 20번은 짧은 장송행진곡의 스케치이다. 제21번은 야상곡처럼 감미롭고 풍부한 선율로 추억을 그리고 있으면서, 제22번은 격렬한 분노를 표출하고, 제18번은 절망적이다.
마지막 제24번은 연습곡 ‘혁명’처럼 당당하고 정열적인 곡으로, 마지막엔 조국 폴란드를 위한 조종처럼 가장 낮은 D음을 3번 힘차게 울리고 막을 내린다. 이렇듯 각각의 곡들은 그동안 충분히 연마되고 영글어진 한 청년의 굴절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한양대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대한천식알레르기학회 국제이사. 한양대 의대 키론 오케스트라 지도교수이며, 오재원 교수의 ‘오페라이야기’ 블로그를 운영하고 <의사신문>, 월간지 <휴플러스> 등에 클래식 이야기를 연재하면서 고전음악의 이해를 돕고 있다. 저서로는 클래식 음악 가이드 베스트셀러인 《필하모니아의 사계 1, 2권》, 《한국의 알레르기 식물》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