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사진=조은선 St.HELLo)
손글씨로 직접 출제한 문제지에 답 역시 손글씨로 달았다. 빨간색 색연필로 직접 동그라미(○) 세모(△) 엑스(×) 채점까지 했다.

얼핏 초등학생 시험지 같아 보이는 이 시험지는 대장항문 질환을 전문으로 진료하는 양병원에 지원한 의사들이 교육 과정 동안 보는 쪽지시험지다.

양형규 원장이 진행하는 교육 과정을 이수한 후 이 시험에서 합격점을 받아야 정식으로 양병원 의사가 될 수 있다. 그러다보니 유난히 깐깐하게 의사를 뽑는다고 알려져 있다.




이미지
국내에 몇 개 안되는 대장 내시경 인체모형으로 양 원장은 의사를 교육한다.(사진=조은선 St.HELLo)
교육 기간에 자존심이 상한다면서 이탈하는 의사들도 있다. 그럼에도 양 원장이 이런 교육을 고집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학과성적이 좋다고 임상술기가 좋은 것이 아니고, 우리 병원에 오려면 우리 병원 시스템과 시술법에 맞는 교육을 따로 받아야 한다”는 양 원장의 철학 때문이다.

양 원장은 유독 의사 교육에 관심이 많다. “의사를 교육하는 것이 나의 천직(天職)이자 삶의 비전”이라고 말하는 양 원장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학원 운영 경험에서 시작된 의사 교육 열정




이미지
세계적 의학 전문 출판사에서 최근 출간된 양형규 원장의 책. 스프링거는 세계 1위의 의학과학 전문 출판사로 노벨상 수상자들이 저자로 활동할 정도로 권위가 높다.(사진=조은선 St.HELLo)
양형규 원장은 ‘학원 운영’이라는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가정교사를 하면서 어렵게 의대 공부를 마친 그는 ‘가르치는 것’에 대한 즐거움과 재능을 깨달았다. 양 원장은“공부만 하기에도 어려운 의대 공부를 돈 벌면서 하다 보니 성적도 안 나오고, 의대 공부가 재미없었다”며 “그때는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이 더 적성에 맞는것 같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그래서 학원 운영을 해 돈도 많이 벌었다. 그런데 금전적인 여유가 생기자 다시 의사에 대한 꿈이 떠올랐다. 뒤늦게 늦깎이 의사의 길로 들어섰는데,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양 원장은 “막상 전문의 과정을 마치고 환자 진료를 시작해 보니 교육과 임상의 현실적 괴리감이 컸다”며 “그래서 의사에게 현실적인 임상교육을 하자는 생각을 하게 됐고, 학원을 성공시킨 경험이 자신감을 갖게 했다”고 말했다.

임상 실전 가르칠 의사 교육기관 YAMA




양 원장의 철학은 양병원에서 운영하는 ‘YAMA(양 대장항문 의학교육 아카데미)’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2009년 문을 열어 5년째 안정적으로 운영 중이다. 대학병원 중심의 수련병원은 중증질환자가 대부분이라 이곳에서 교육받는 인턴, 레지던트들은 경증의 양성대장 및 항문질환자를 직접 보고 배울 기회가 적다.

그런데 정작 전문의 자격을 따고 개원하면 의사들이 만나는 환자 대부분은 양성대장 및 항문질환자라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양 원장은 “많은 의사가 개원 후 임상 실전에서 어려움을 겪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YAMA가 큰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YAMA는 세계적인 대장항문질환 교육기관인 영국의 ‘세인트막 병원’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했다. 실제 양병원에서 근무하는 전문의로 강사를 구성했고, 진료와 검사, 수술 등 전 과정을 다루고 있다.

양 원장은 “대장항문 세부 전문의자격이 있는 의사도 처음부터 대장내시경 경험이 많을 수 없다”며 “대장은 길고 굴곡져 있기 때문에 환자를 진료할 때 실수하지 않으려면 충분한 임상 경험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YAMA에서 직접 의사들에게 대장내시경 실전을 가르치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지
국내에 몇 개 안되는 대장 내시경 인체모형으로 양 원장은 의사를 교육한다.(사진=조은선 St.HELLo)

실제 프로그램을 살펴보자. 전임의나 레지던트 고년차를 대상으로 하는 ‘졸업 후 코스’는 2주 과정(88시간)으로 진행된다. 원내 오전 회진과 스태프 회의는 물론 이론 강의와 외래 참관, 대장내시경 교육 등 전반을 다룬다. 이를 위해 국내에서 몇 개 안 되는 대장내시경의 인체 모형도 구비했다. 사람의 대장속과 똑같은 질감과 모양이다.

양 원장은 YAMA를 국내는 물론 세계적인 대장항문 교육기관으로 키우려 한다. 지난해에는 첫 ‘아시아태평양 항문질환 콘퍼런스’를 개최했다. 일본, 싱가포르, 이탈리아 등 각국의 해외 연자들이 참여했다.

양 원장은 “대학병원이 아닌데 교육과 세계 학회에 앞장서는 모습을 곱지 않게 보는 시선도 많다”며“하지만 대장항문 질환만큼은 반드시미국, 유럽 등지의 선진국 의사들이 우리나라를 찾아 연수받는 역(逆)연수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했다.

항문 피부를 그대로 보존하는 치핵 수술




이미지
양원장은 점막하 치핵 절제술을 시행한다. 정상적인 항문 조직을 보존하기 때문에 통증이 덜하다.(사진=조은선 St.HELLo)

일반적인 치핵절제술은 튀어나와 있는 치핵 조직 전체를 있는 그대로 모두 절개하는 방식이다. 이를 ‘결찰절제술’이라고 한다. 하지만 양병원에서는 다른방법으로 치핵을 잘라낸다.

‘거상고정식 점막하 치핵절제술’이라는 수술법인데, 치핵 조직을 둘러싸는 정상 항문조직과 피부는 그대로 보존한 상태에서 2~3mm 작게 절개한 후 점막 안의 치핵 조직만 분리해 꺼내는 방법이다.남은 정상 항문 조직과 피부는 다시 제위치로 되돌려 놓아 고정시킨다. (하단 그림 참조)




이미지
항문 피부 조직에는 통증을 느끼는 신경이 많이 분포돼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을 모두 잘라내는 결찰절제술은 통증이 심하고 출혈도 많다. 하지만 점막하 치핵절제술은 통증신경이 거의 없는 점막 안쪽에서 치핵 조직만 절제하기 때문에 출혈이 적고 통증도 덜하다. 직장암 수술 할 때도 항문을 최대한 보존한다. 직장은 15cm밖에 안되는 짧은 기관이지만 대장암의 40%가 이곳에서 발생한다.

특히 직장암은 항문을 없애고 인공항문을 만드는 수술(복회음 절제술)을 많이 하는데, 최근에는 되도록 항문을 보존하는 방향으로 수술기법이 발전하고 있다. 양병원에서도 항문에서 4~5cm 위에 발생한 암이라도 항문을 없애지 않고 괄약근의 기능을 그대로 유지해 주는 ’항문 괄약근 보존술’을 시행한다.

이런 시술 방법을 시행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어려운 젊은 시절, 허리디스크와 치질로 고생해 본 양 원장은 환자들의 고충을 충분히 이해하기 때문이다. 양 원장은 “과거 어려웠던 시절을 잊지 않으려고 자서전도 쓰고 당시 사진도 잘 보이는 곳에 걸어 놓는다”고 말했다.

수익의 5%씩을 지역사회에 환원하는 활동도 양 원장이 어려운 시기를 보냈던 경험에서 시작된 것이다. 양원장이 ‘굿닥터 운동’이라고 이름 붙였는데, 돈이 없어서 치료받지 못하는 환자를 후원하는 것은 물론, 병원 인근의 고등학교에 다니는 우수 학생들에게장학금을 지원하는 일도 포함돼 있다.




이미지
양 원장은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해야 했던 과거를 잊지 않았다. 서울과 남양주 두 곳에 병원을 운영하면서 그 수익금의 5%를 지역사회에 환원하고 있다.(사진=조은선 St.HELLo)
"지금은 의학 연수를 위해 우리나라 의사들이 유럽이나 미국으로 연수를 나간다. 양 원장은 대장항문질환 분야에서는 ‘역(逆)연수’가 조만간 가능해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현실성 여부를 떠나 기분 좋은 전망이 아닐 수 없다."


월간헬스조선 9월호(122페이지)에 실린 기사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