얇은 필름·알약 형태 출시, 침에 녹아 흡수돼
천식·알레르기 등 급박한 상황서 빨리 효과
약 거부하거나 잘 못 삼키는 환자에도 유용

약을 먹을 때 '미지근한 물을 충분히 먹는 것'이 상식이다. 약 성분이 위에서 흡수되도록 녹여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이런 상식이 깨지고 있다. 물 없이 먹는 약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입에 넣기만 하면 침에 녹은 뒤 식도를 타고 위에 들어가 위 점막에 흡수되는 구강붕해제(口腔崩解劑)다. 얇은 필름이나 알약 형태가 있다.

구강붕해제는 셀룰로오스나 풀루란 같은 고분자화합물에 약성분을 섞거나 입혀서 만든다. 밥을 하고 나면 밥솥에 남는 얇은 막 같은 일종의 녹말 풀로 보면 된다. 먹어도 아무 탈이 없다. 알약은 약성분이 잘 뭉쳐지도록 유당을 섞는다. 대부분의 알약 설명서에 '유당불내증 환자는 주의하라'는 경고문이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구강붕해제는 유당을 쓰지 않기 때문에 유당불내증 환자도 약을 쓸 수 있다.

약을 삼키기 어렵거나, 물이 없는 상황에서 빨리 약을 먹어야 하는 사람에게 유용하기 때문에 기존의 약을 구강붕해제로 만들려는 연구도 한창이다. 구강붕해제 허가 건수는 2011년 5건이었는데, 올해는 상반기에만 8건을 기록했다. 관련 특허도 2008년 이후 66건이나 출원됐고, 올 상반기 특허 건수(10건)가 지난 해 전체 건수(9건)보다 많다. 정부에서는 구강붕해제를 특수제형에서 일반제형으로 변경, 제약회사가 쉽게 개발할 수 있게 했다. 특수제형은 안전성 시험이 필수이지만, 일반제형은 기존 약과 효과가 같다는 비교임상시험이나 생물학적동등성시험만 하면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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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강붕해제는 물이 없어도 편안하게 먹을 수 있기 때문에 발기부전, 조현병, 항구토, 항우울, 고혈압, 치매, 당뇨병, 야뇨증 등 10여 가지 질환의 약으로 활용도가 높다. / 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약 먹기 힘든 노인에 효과적

치매, 관절염, 전립선비대증 같은 노인성 질환 뿐 아니라 물을 가지러 갈 수 없는 갑작스런 상황에서 빨리 효과를 내야 하는 알레르기·두드러기·천식, 약 먹기를 거부하기 쉬운 조현병(정신분열증)·우울증 등 10여가지 질환 치료제가 출시돼 있다. 고혈압, 당뇨병 같은 만성질환 치료제도 있고 말라리아 치료제도 있다. 구토 때문에 물조차 마시기 힘든 항암 치료 환자용 구토억제제도 필름형으로 나와 있다.

구강붕해제로 약이 개발되는 가장 큰 이유는 복용 편리성이다. 나이가 들면서 음식을 삼키기 어려운 노인이나 움직임이 제한돼 침대에 누워만 있는 환자들은 약을 먹다 재채기나 구토가 생기기 쉽다. 약 성분이 기도로 들어가면 폐렴을 일으킬 수도 있다. 야뇨증 환자는 약을 먹기 위해 마시는 물 자체가 다시 야뇨증을 일으킬 수 있는데, 물 없이 약을 먹으면 이 문제가 해결된다.

◇남 눈치 안 보고 약 쓸 수 있어

주변 시선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조현병이나 우울증, 치매 같은 병은 환자가 병에 걸린 것을 부인해 약 먹기를 거부하기 쉽다. 발기부전의 경우 배우자나 파트너에게 약 먹는 것을 숨기고 싶은 남성 심리도 있다. 발기부전 치료제는 경쟁이 가장 치열한 구강붕해제 시장이다. 엠빅스(SK케미칼)처럼 처음부터 필름형으로 출시된 약도 있고 비아그라의 특허가 만료된 후 필름형으로 나온 복제약도 많다. 비아그라 제조사인 화이자도 필름형 비아그라인 '비아그라L'을 출시했다.

◇필름 약 효과는 알약과 동일

필름형으로 만들다 보니 알약에 비해 효과가 떨어질거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약 성분의 양이 같으면 효과와 안전성 모두 같다. 오히려 입에서 모두 녹은 뒤 위에 들어가기 때문에 약효가 발현되는 시간은 알약보다 빠르다. 구강붕해제는 자일리톨이나 사카린을 이용해 단맛을 내거나 과일향을 넣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 박하맛이다. 청량감을 주는 효과도 있고 약의 쓴맛을 없애기에는 단맛보다 박하의 쌉쌀한 맛이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강경훈 헬스조선 기자 | 도움말=연세대 약대 황성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