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중에서 골프만큼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내는 종목도 드물다. 국내외 스타 선수들의 개인 스토리뿐 아니라 골프를 잘 칠 수 있는 테크닉, 골프 룰, 골프와 관련된 우스갯 소리까지 화제가 다양하다. 선수는 아니지만 골프계에 오래 몸담고 있다 보니 재미난 이야기 많이 듣는다. 특히 끼가 넘치는 연예인들과 관련된 골프 뒷담화는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오는 내용이 많다.


“자, 양파가 왔어요”

가수 최백호는 7080세대를 대표하는 ‘낭만적 가인(歌人)’이다. 골프장에서 그는 경상도 사나이답게 급하다. 연습스윙 없이 티그라운드에 올라서면 곧바로 공을 친다. 그와 함께 골프하는 사람은 절대 한눈을 팔면 안 된다. “굿 샷”을 외칠 틈이 없다. 드라이버, 아이언, 퍼터 모두 예비 동작이 없다. 그와 관련된 전설처럼 내려오는 ‘뉴코리아 CC 사건’이 있다. 그날 따라 볼이 잘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파4 홀에서 평소 거의 없던 OB를 내고 갈지(之) 자를 그리며 6타 만에 온그린을 했다. 동반자들은 겸연 쩍어 숨소리를 죽이며 최백호의 퍼트를 기다리고 있었다. 1퍼트가 어려운 상황이어서 양파가 확정적이었다. 고요한 퍼트 순간, 어디선가 들려오는 심오한 소리. “자, 양파가 왔어요, 양파. 방금 밭에서 뽑아 온 싱싱한 양파가 왔어요.” 순식간에 그린은 웃음바다로 변했다.

이봉원의 유쾌한 ‘여보 골프’

검은 선글라스, 검은 옷이 트레이드마크인 개그맨 이봉원. 평소 말수가 적은 그가 골프장에서는 시도때도 없이 “여보”를 외친다. 1번 홀에서 “여보, 드라이버”라고 그가 부르는 소리에 캐디는 당황하기 일쑤다. 하지만 그게 곧 농담이라는 걸 알아채고 즐겁게 받아준다. 세컨드 샷을 할 때도 이봉원은 “여보, 5번 아이언”을 외친다. 라운드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아마 이봉원의 여보는 전국에 1000명도 넘을 것이다.

이봉원의 골프 매너는 그린에서 아웃할 때 유감없이 발휘된다. 홀 아웃을 한 뒤 그린을 보수하는 아주머니에게 슬그머니 다가가 “술값 하시라”며 돈을 찔러 주는 모습을 가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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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헬스조선DB)

배용준 법칙을 아시나요?

골프장에서 만약 배용준을 만난다면 여성 골퍼들은 누구나 이렇게 외칠 것 이다. “심봤다!”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골프를 즐기는 배용준을 만나는 것은 여성 골퍼에게 기적과 같은 일이다. 그런데 그런 기적이 가끔 골프장에서 일어난다. 그는 캐디에게 다정다감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띤 채 질문하기로 유명하다. 내가 선물한 드라이버로 배용준이 이글을 한 적이 있다. 워낙 골프를 좋아해서 당시 기획사 사장에게 “골프를 안 배우면 활동을 안 하겠다”고 으름장을 놔 골프채를 잡게 만들기도 했다. 그는 라운드 중 그늘집에 들러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게 가장 즐겁다고 한다. 국내 골프장엔 ‘배용준 법칙’이라는 게 있다. E골프장은 배용준이 예약할 경우, 늑장 플레이하기로 소문난 여성 회원 앞팀에 배정한다. 그게 ‘배용준 법칙’이다. 늑장 플레이가 몸에 밴 여성이라도 배용준을 조금이라도 더 보려면 플레이를 빨리 할 수밖에 없는 심리를 이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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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헬스조선DB)


“아니, 조용필이 그럴 수 있어?”

연예인 중 골프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 중 한 명을 꼽는다면 조용필이다. 집현관 입구에 프레드 커플스와 함께 찍은 사진을 액자에 넣어 걸어 놓을 만큼 골프에 열정이 대단하다. 3번 아이언으로 200m를 날리는 신기의 아이언맨이다. 프로골퍼 김미현과 코리아CC에서 라운드해서 1타 차이로 이긴 적도 있다. 특히 안양골프장에서는 그를 이길 사람이 없다. 그는 코스를 속속들이 알고 있다. 꽤 오래전의 일이다. 김모씨(전 방송국 국장), 가수 박정운과 함께 안양골프장이 아닌 ‘골퍼들의 무덤’으로 통하던 은화삼골프장으로 그를 끌어내기로 했다. 11월 하순이어서 제법 쌀쌀했다. 경부고속도로 만남의 광장에서 만나 함께 가기로 했는데, 감기 몸살로 못 온다는 연락이 왔다. 우리 세 명은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은화삼으로 향했다. 한창 라운드 중에 전화한 통을 받은 김 국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야, 용필이가 이럴 수 있냐?” “왜요?” “이 소장 전화인데, 지금 용필이랑 다른 골프장에서 플레이하고 있대.” “그럴리가…. 아프다고 했잖아요.” 나는 이 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용필이형이랑 라운드 중이야?” “어, 왜?” “아니, 아프다고 했는데. 바꿔 줘 봐.” 그런데 반대편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형, 진짜 조용필이야?” “뭔 소리야. 나 박영필이야!”
그는 조용필이 아닌 여행사 전무인 박영필이었다. 한참 허탈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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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귤러 티에서 남자 잡는 ‘신다르크’ 신효범

가수 신효범은 가창력만큼 골프도 호쾌하다. 그녀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남성 동반자들과 함께 레귤러 티에서 티샷을 한다. 드라이버샷의 평균거리가 230m를 넘나드니 남자 티에서 쳐도 뒤지지 않다. 오히려 남성 골퍼들이 무너진다. 서원밸리골프장에서 탤런트 이영범과 라운드했는데, 함께 화이트티를 이용했는데도 전반 9홀에서 똑같이 신효범에게 1타를 졌다. 말할 수 없는 굴욕감을 느끼면서 “가위 가져오라!”는 자학성 발언을 되풀이하며 후반라운드에서 바짝 긴장했다. 다행히 이영범이 1타 차, 내가 2타 차로 이겼다. 겨우 자존심을 지켰다며 긴장을 푸는 순간, 신효범의 한마디가 충격을 줬다.

“어, 이상하다. 어제 신원골프장 레귤러 티에서 70타를 쳐 남자들 다 혼냈는데.” 이럴 수가. 전날 레귤러 티에서 70타를 친 무서운 잔 다르크, 아니 신다르크에게 겁없이 덤볐다니,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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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365라운드를 한 탤런트 박선영

여자 연예인 골퍼 중 1, 2위를 다투는 이가 탤런트 박선영이다. 신효범처럼 남성 골퍼가 이용하는 레귤러 티에서 티샷을 하면서도 남성 골퍼에게 지지 않는다. 클럽도 남자 스펙으로 맞춰쓰며, 학창시절 육상선수로 체력을 다진 덕분인지, 공격적이고 파워풀한 스윙을 구사한다. 박선영은 한때 골프에 미쳐 1년에 365라운드를 했다고 한다. 365라운드가 가능할까. 그녀는 비가오나 눈이 오나 골프장이 문을 닫지 않으면 매일 골프장으로 향했다. 1년 중 어쩌다 골프장이 휴장하는 날이면, 그 다음 날 2라운드를 돌았다고 하니, 정말 대단한 골프 마니아였다. 가끔 여자라고 무시하고 덤비는 골퍼들은 작정을 하고 혼내 준 일화도 있다. 자존심이 한껏 상한 남자 골퍼 둘이 재도전 했다 주머니가 탈탈 털린 뒤 또다시 수모를 당했다는 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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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현
이종현

레저신문 편집국장이자 골프·여행 칼럼니스트.
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 중인 시인이다. 《골프장으로 간 밀레와 헤르만 헤세》, 《시가 있는 골프》 등 저술.




월간헬스조선 9월호(139페이지)에 실린 기사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