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갑은 왜 갑이고, 을은 왜 을인가

기획 김현정 기자 글 박진생(박진생 정신겅강의학과 의원 원장)

‘라면 상무’부터 ‘군부대 사건’까지, 끊이지 않는 ‘갑’의 횡포

학생 3명 중 2명에게는 사회 현안에 대해 짧은 글을 쓰도록 하고, 나머지 1명에게는 다른 학생이 써 온 글을 평가하고 원고료를 결정하는 권한을 줬다. 사실상 팀 안에서 상하관계를 만든 것이다. 그 뒤 이들에게 간식으로 나눠 먹으라고 쿠키를 5개 주었다. 팀원 모두 1개씩 먹고 나면 2개가 남게 한 것이다.

이때 보통 사람의 경우라면, 네번째 쿠키에 손을 쉽게 뻗지 못한다. 그런데 평가 권한을 부여받아 권력자가 된 학생은 다른 2명이 주저하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네 번째 쿠키를 집었다.위 사례는 갑(甲)과 을(乙)이 자연스럽게 갖게 되는 보편적 관계 형성의 일례다. 사람이 사회 속에서 만나면 자연스럽게 갑과 을의 관계를 맺게 된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생각에, 계약서에 ‘갑과 을’이 아닌 ‘A와 B’라는 표현으로 바꾼다고 해도 갑과 을은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또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비슷한 관계를 형성한다.


군부대 가혹행위 왜?

요즈음 군부대 내에서 있는 가혹행위 때문에 나라가 떠들썩하다. 가혹행위를 당해 목숨을 잃은 병사와 그 가족의 억울함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자식을 둔 부모의 처지에서는 그야말로 억장이 무너질 일이다. 그래서 가해 병사들에게 온갖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는 자신이 신참일 때 받은 가혹행위를 신참병사에게 그대로 가한 경우도 있었다. 즉 자신이 당한 것과 똑같이 신참에게 가혹행위를 함으로써 자신의 억울함을 아랫사람에게 복수하면서 고스란히 대물림한 것이다. 정신의학에서는 이 경우를 ‘공격자와의 동일시’라고 말한다. 쉽게 말하면, ‘지독한 시어머니 밑에서 고생한 며느리가 정작자신이 시어머니가 되면 더 지독한 시어머니 노릇을 하는 경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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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헬스조선DB)

당신은 갑의 편인가, 을의 편에 서 있는가

우리는 갑과 을의 문제가 빚어지면, 상대적으로 갑이나 을 어느 한쪽 편이 되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되면 흑백의 이분법적 논리에 빠지기 쉽다.

대개의 경우 을은 무조건 불쌍하고 희생양이고 피해자인 반면, 갑은 지독하게 나쁜 놈이고 가해자라는 시각을 가지기 쉽다. 물론 그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런 식으로 접근해선 갑과 을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영원히 풀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한편 갑과 을 사이의 갈등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집단과 집단 사이의 구조적 관계이고, 또 다른 하나는 개인과 개인 사이의 감정적 관계라고 볼 수 있다. 늘 임금조정 때만 되면 갈등이 일어나는 노사관계나, 가진자와 못 가진 자 사이의 갈등 같은 것이 전자에 속한다.

반면 신문지상에서 널리 보도된 비행기 내에서 스튜어디스에게 몹쓸 짓을 한 ‘라면 상무’나, 호텔 종업원에게 모욕을 주어서 문제가 된 중소기업 사장 같은 경우 후자에 속할 것이다. 반면에 군대 내 가혹행위 같은 경우 구조적 문제와 개인적 감정 문제가 함께 복합적으로 작용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현재 군 내부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구조적 문제에 총체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을 하는 것이 시급하다. 또 그것들을 반드시 바로잡아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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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헬스조선DB)

갑과 을에 대한 심리학적 분석

그러면, 겉으로 드러나는 눈에 보이는 행동보다는 그 밑바탕에 숨어 있는 심리학적 원인을 한번 검토해 보자. 우선 생각나는 것은 과연 우리 아이들이 자라면서 어떤 대접을 받고 자랐는가, 하는 것이다. 모든 아이의 바람은 부모나 선생님 또는 또래들에게서 사랑받고 인정받는 것이다.

그런데 학교에 한번 가보자. 공부 못하는 아이는 아예 사람대접을 못 받는 것이 현실이다. 자신에 대한 건강한 존중감이 있어야 남을 존중할 수 있는데, 어린 시절부터 인격적으로 짓밟힌 아이가 어떻게 나중에 다른 사람을 존중할 수 있겠는가.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회사는 항상 120% 목표 달성을 요구한다. 목표를 달성하면 좋은 일이지만 그렇지 못하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대표이사는 목표 달성을 위해 중역들을 닦달한다. 중역들은 골치가 아프고 부담을 느낀다. 그러면 부장들을 모아 놓고 잔소리 하지 않을 수 없다.

즉, 갑은 화를 참지 못하고 폭발하는 경우고, 을은 어쩔 수 없는 이유로 인해 억울해도 지나치게 참아야 하는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누구라도 마음속에 있는 적개심이나 분노, 즉 화를 잘 다루지 못하면 한순간에 갑도 될 수 있고 을도 될 수 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결코 갑이나 을의 처지를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다. 갑과 을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무엇보다 서로에 대한 이해가 우선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을 따름이다. 왜냐하면 갑 또한 한때 을이었을 수 있고, 을또한 한순간 분노의 폭발로 남을 괴롭히고 힘들게 하는 갑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갑의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반드시 이해해야 할 것 가운데 하나는, 을을 해롭게 하는 것이 결코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니 도움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을을 괴롭히면 그에 따르는 과보는 반드시 자신에게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반대로 최선을 다해서 을을 돕고 이롭게 하면, 그 과보는 고스란히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다.


“갑과 을 사이의 갈등은 크게 두 가지다. 집단 사이의 구조적 관계와 개인 사이의 감정적 관계가 그 것이다. 어떠한 경우든 갑은 을을 해롭게 하는 것이 결코 자신에게 도움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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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생
박진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 외국인을 위한 정신클리닉을 운영하면서 사회계층, 국가 수준에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심리와 정신 문제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하고 있다. 스트레스와 난치병의 연관성에 대한 연구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승자의 뇌》(알에이치코리아)


월간헬스조선 9월호(68페이지)에 실린 기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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