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은퇴 후 풍요로운 삶 바께쓰를 넘치게 채우자 [최성환의 신바람 나는 은퇴②]
기고자 최성환
입력 2014/08/27 18:01
멋있어 보인다. 430억원과 버킷리스트를 맞바꾼다는 말이다. 그는 은퇴 후 무엇을 할까. 그의 바람대로 비행기 조종사 면허를 따서 자가용 비행기로 전세계를 누빌 수도 있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모교인 캘리포니아 폴리테크닉 대학 운영에 참여할 수도 있다.
그럼 유명하고 돈 많은 사람들만 원하는 시기에 직장을 물러나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일까? 아니다, 절대 아니다. 이는 결단코 누구나 가능한 선택의 문제다. 내가 직업상 꼭 시청하려고 노력하는 TV 프로그램이 EBS에서 매주 목요일 늦은 밤에 방영하는 <장수의 비밀>이다.
버킷(bucket)이란 우리가 흔히 쓰는 ‘바께쓰(양동이)’를 말한다. 그런데 430억원, 평생을 몸 바쳐 농사지은 땅과 바께쓰가 무슨 상관 있기에, 이 바께쓰가 얼마나 크기에 서로 맞바꾸는 것 일까. 잭 니콜슨과 모건 프리먼이 주연한 영화 제목으로도 유명한 ‘버킷리스트’. 이 단어는 ‘죽다’라는 뜻의 영어 숙어 ‘킥 더 버킷(kick the bucket)’에서 유래됐다. 목에 밧줄을 걸어 놓고 양동이를 걷어차야 하는 최후를 맞기 전에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을 미리 적어보는 것을 의미한다.
이 영화는 6개월 시한부 삶을 선고 받은 두 사나이가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하나씩 실행해 가는 이야기다. 평생 자동차 밑에서 수리공으로 살아온 카터 챔버스(모건 프리먼 분)와 재벌 사업가인 에드워드 콜(잭 니콜슨 분)이 우연히 중환자실에서 만난다. 카터의 어릴 적 꿈은 역사학 교수이었지만, 가장으로서의 책임감과 흑인이란 이유로 포기하고 TV쇼를 보면서 위안을 삼고 산다. 반면, 에드워드는 자수성가해 전용 비행기까지 갖게 됐지만 세 번의 결혼 실패로 딸에게조차 잊힌 외로운 사람이다. 이 두 사람이 중환자실에서 만나 친구가 되어 버킷리스트를 적고 병원을 뛰쳐나가 스카이다이빙하기, 문신하기, 아프리카 초원에서 사냥하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과 키스하기, 모르는 사람 도와주기, 눈물이 날 때까지 웃어보기 등 3개월 동안 흥미진진한 나날을 보낸다.
영화처럼 사람은 대부분 죽음에 임박해서, 혹은 건강을 잃고 나서야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한다. 그러면서 진작 하지 않은 사실에 후회하고, 그것이 너무나 쉽고 간단한 일이라는 데 또 한 번 절망한다. ‘인생에서 가장 많이 후회하는 것은 살면서 한일이 아니라, 살면서 하지 않을 것’이라고 영화는 말한다.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려면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것들을 적어 보고 이를 실행해야 한다.
은퇴 준비에 ‘너무 늦었다’는 말, ‘포기’라는 단어는 없다. 미국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위대한 포수 중 한 명인 요기 베라는 말한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니까!(It’s not over till it’s over!)” 그의 말처럼 은퇴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은퇴(retire)’란, 말 그대로 새로 타이어(tire)를 갈아 끼우는 것일 뿐이다.
지금까지 9회 말을 열심히 뛰었고, 지금은 그 시점을 지나 잠시 장갑을 벗었을 뿐이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다음 게임이 기다리고 있다. 그것이 물론 정식 리그가 아닐 수 있다. 동네야구일 수도 있고, 아마추어 사회야구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포기할 이유는 전혀 없다. 왜냐고? 언제 어디서나 나만의 버킷리스트는 살아있고 또 하고 싶은 일들이니까!
아직 오지 않은 은퇴를 걱정하느라 인생의 단 한 번뿐인 소중한 오늘을 놓치는 것은 내 인생의 바께쓰에 구멍을 뚫어 물이 줄줄 새게 하는 것일 뿐이다. 지금 당장 나만의 버킷리스트를 적어보자. 그리고 은퇴 후가 아닌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일들을 이행하면서 은퇴 후 바께쓰 속으로 하나씩 담아 보자. 바께쓰가 차고 넘칠수록 은퇴 이후 삶은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고, ‘나이답게’보다 ‘나답게’ 살 수 있는 즐거운 인생의 밑거름이 다져질 것이다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경제학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한국은행, 조선일보, 한화생명 경제연구원을 거쳤다. 올바른 은퇴 설계를 돕기 위해 강연이나 방송무대를 종횡무진하고 있다. 현재 한화생명 은퇴연구소 소장을 맡으면서, 연구소가 은퇴 분야의 싱크탱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각종 은퇴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보급하고 있다.
월간헬스조선 8월호(180페이지)에 실린 기사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