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한 삼(蔘)향과 닭 육수에 속지 마라”

삼계탕의 계절이다. 예전에는 더 이상 알을 낳지 못하는 노계 한 마리 잡아서 가족 수와 무관하게 모두 나눠 먹곤 했다. 삼 뿌리와 쫄깃한 닭다리는 당연히 아버지와 아들 몫이고, 퍽퍽한 살은 딸들 차지였다. 어머니는 멀건 국물에 푹 끓인 닭죽 한 그릇이라도 먹을 수 있으면 다행이었다.

한 마리 통째 들고 닭고기 한번 제대로 뜯어보는 것이 꿈이었지만, 당시 사람들은 이런 멀건 삼계탕 한 사발씩 먹는 것만으로도 “몸보신 한번 잘 했다”고 배 두들기며 만족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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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이 흔해지면서 ‘복날=삼계탕’의 공식은 사라진 것 같다. 사계절 내내 유명 삼계탕 집은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사진=헬스조선DB)
‘통째로 한 마리’를 현실화한 삼계탕 전용 닭

하지만 요즘에는 닭 한 마리를 혼자 다 먹는 세상이다. 원하고 원하던 ‘통째로 한 마리’가 현실화된 것이다. 닭이 흔해진 까닭도 있지만 혼자 먹기에 딱 맞는 크기의 삼계탕 전용 닭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유명 삼계탕 집에선 닭 한 마리를 1인분 질그릇에 담아 펄펄 끓여서 내놓는다.

부화한 지 50일 정도 된 ‘웅추(雄雛)’라는 수평아리다. 살이 연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해 씹는 맛이 좋다.국물은 멀겋지 않고 스프처럼 걸쭉해 입에 착착 달라붙는다. 여기에 ‘보이지 않는’ 노하우가 있다. ‘쌀품닭(뱃속에 찹쌀밥을 품고 있는 닭)’ 또는 ‘다꼬닭(뱃속의 찹쌀이 빠지지 않게 다리를 꼬아 놓은 닭)’으로 불리는 삼계탕 뚝배기 안에 담겨 있는 닭 한 마리. 여기에빠진 부위인 닭발이 그 비결이다.

보이지 않는 이 닭발이 재주를 부린 것이다. 손님들은 눈에 안 보이니 그냥 버린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삼계탕 전문집에선 닭고기를 손질하고 남은 닭발을 육수 낼 때 아주 요긴하게 쓴다. 닭발을 육수로 따로 우려내는 이유는 닭발에 피부미용과 관절에 좋다는 콜라겐 성분이 많아서다. 손님이 주문할 때마다 이 국물에 웅추한 마리씩을 넣고 또 끓여내니 국물이 진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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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골계로 끓인 삼계탕 맛도 이색적이다. 60일 정도 키운 오골계는 삼계탕보다 더 오랜시간 고아낸다.(사진=헬스조선DB)

진한 삼향과 닭 육수, 그런데 아쉬운 맛은 왜일까?

요즘은 1인분에 닭 한 마리를 내지 않고, ‘반계탕’이란 이름으로 반 마리만 파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삼은 원가를 낮추기 위해 잔뿌리를 주로 쓴다. 가격도 절반 수준이다. 그런데 묘하게 이 삼계탕도 삼향이 무척 강하다. 국물 역시 멀건데 닭 냄새가 진하게 난다. 제대로 된 집에서 먹는 것처럼 ‘몸에 좋은 진국’을 받은 느낌이다. 그럼에도 ‘맛’을 안다는 사람 처지에서는 어딘지 모를 아쉬운 뒷맛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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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주와 함께 아주로 먹으면 별미인 닭똥집. 삼계탕을 먹으면 서비스로 맛볼 수 있다.(사진=헬스조선DB)
왜일까. 여기에는 업소들만 안다는 ‘잔꾀’가 숨어 있다. 진한 닭고기의 맛의 비법은 치킨파우더와 찹쌀가루에 있다. 이 둘을 넣으면 뽀얗고 걸쭉한 국물이 돼 입에 착착 붙는다. 진한 삼향은 인삼차 덕분이다. 음식 내기 직전에 인삼차를 넣으면 제대로 된 강한 인삼향이 난다. 물론 못 먹는 재료들은 아니지만, 제대로 된 맛집을 찾으려면 속지 말아야 할 포인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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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계탕에 어우러지는 마늘범벅의 단맛이 일품이다.(사진=헬스조선DB)
복날 따로 없이 사계절이 삼계탕의 날

삼계탕의 대중화에는 우리나라 사람보다 일본인 힘이 컸다. 1970년대에 밀물처럼 들어오던 일본 관광객들이 고려인삼이 들어간 음식, 즉 삼계탕을 찾기 시작하자 이들을 겨냥한 전문점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것이다. 2000년대 이후엔 중국인까지 가세했다. 이제 삼계탕은 외국 사람이 좋아하는, 세계적인 음식 브랜드로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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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삼계탕 맛집(사진=헬스조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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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삼계탕 맛집(사진=헬스조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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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상
유지상
음식전문기자 출신의 음식 칼럼리스트다.
고려대 식품공학과를 졸업하고, 해태제과, 한국소비자원에서 근무한 현장
중심 전문가다. 저서로 《유지상의 테마맛집》, 《내 남자의 앞치마》 등이 있다.
한국음식평론가협회 회장, DMZ 10경10미 심사위원장, 2012 ZAGAT
서울레스토랑 선정위원장을 역임했다. 경기대 외식조리학과 겸임교수로 활동 중이다.


월간헬스조선 8월호(196페이지)에 실린 기사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