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기사
면역력 높이십니까? 떨어뜨리십니까?
취재 이동혁 기자 감수 조유숙(서울아산병원 알레르기내과 교수) | 참고서적·사진제공 《Kuby면역학(7판)》(범문에듀케이션)
입력 2014/08/14 11:41
건강방어군 ‘면역력’을 탐구하다①
사람의 몸을 국가라고 치면, 면역(免疫)은 적군의 침입을 막는 국방 시스템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평생 사는 동안, 수많은 이물질이 한순간도 빠짐없이 인체에 침입해 온다. 침투 이물질 중에서 세균·바이러스·기생충·진균류(곰팡이) 등 질병을 일으키는 ‘4대 이물질’을 병원체라고 한다.
적군 침입 막는 물리적·화학적 방어체계 ‘면역력’
적군(병원체)의 침입을 억제하는 ‘최전방 휴전선’ 역할은 인체의 피부나 점막이 담당한다. 이와 함께 ‘화학전’으로 적군을 걸러내기도 하는데 피부에 나는 땀, 점막 조직인 위 내벽이나 자궁내막을 감싸는 위액, 자궁 분비물 등이 화학무기에 해당한다. 이런 물질은 주로 산성을 띠는데, 상당수 미생물이 산성 환경에서는 자랄 수 없기 때문이다. 적군의 침투 경로에 산성 독극물을 뿌려 놓고 기다리는 셈이다.
병원체가 체내에 아예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이런 장벽도 면역 시스템에 속하지만, 본격적인 면역 활동은 병원체가 장벽을 뚫고 우리 몸 안에 들어온 뒤 가동된다. 면역 활동은 두 단계로 진행된다. 경찰관 출동에 비유할 만한 1단계 소규모 국지전이 ‘선천면역’이고, 군대가 동원되는 수준의 2단계 전면전은 ‘적응면역’이다. 큰 사건이 발생하면 군·경이 합동으로 수사하듯, 선천면역과 적응면역은 서로 협력해 이물질을 무찌른다.
DNA에 입력된 병원체의 특징
그렇다면 면역 시스템은 휴전선이 적군에게 뚫렸는지, 즉 병원체가 인체의 장벽을 뚫고 들어왔는지 어떻게 알아내는가? 우리나라를 공격할 가능성이 있는 적대국의 군사정보가 국방부 컴퓨터에 미리 입력돼있듯, 사람의 면역과 관련된 DNA에는 수많은 병원체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특징이 미리 입력돼 있다. 인간이 수백만 년간 진화해 오는 동안 자연 속에서 함께 진화하며 접촉해 온 미생물 정보가 입력된 것이다.
침입자가 독성이 약하거나 소규모 좀도둑 수준이면 경찰관에게 몽둥이로 두들겨 맞고 체포되는 것으로 상황 종료된다. 선천면역은 평소 혈액 속에 포함돼 온몸을 돌며 순찰하던 경찰관(백혈구와 포식세포등)이 담당한다. 모기에 물린 부위 등 좀도둑이 든 세포 근처의 모세혈관 벽에는 일시적으로 수많은 미세한 구멍이 뚫리면서 혈액 성분이 몰려든다.
혈액을 타고 출동한 포식세포(捕食細胞·이름 자체가 ‘병원체를 잡아먹는다.’는 뜻)가 병원체를 잡아먹으며, 동시에 감염 부위에 백혈구를 끌어들인다. 전쟁터에서 화염이 치솟듯, 이들이 병원체와 싸우는 과정에서 환부에 발열과 염증이 생긴다. 모기에 물리면 피부가 붓고 가려운 것은 이 때문이다. 국지적인 선천면역과 염증 반응은 병원체를 죽이고손상된 환부의 세포를 제거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선천면역과 염증 반응이 과도하게 이뤄지면 오히려 질병을 일으킬 수 있다. 극단적으로 과도한 반응은 생명을 위협하기도 하는데,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패혈증이 대표적인 예다. 출동 경찰관이 도둑은 안 잡고 주민을 상대로 난동을 부리는 셈이다.
선천면역은 전면전과 장기전을 수행할 능력이 없다. 길어야 환부 근처에서 몇 시간 정도 싸울 수 있을 뿐이다. 이런 한계 때문에 선천면역만으로는 우리 몸을 감염성 질병에서 충분히 보호할 수 없다. 병원체의 독성이 세거나, 수가 많거나, 변장을 거듭하면(감기바이러스가 계속 변종을 만드는 것이 대표적) 선천면역의 전투 능력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 이 단계가 되면 인체는 군대를 동원하는 2단계 전면전인 적응면역 시스템을 가동한다.
적군 특징에 맞춘 형태로 증강돼 출동
이 과정에서 군·경은 침입자에 대한 정보를 공유한다. 선천면역 시스템(경찰)은 위에서 설명한 대로 수많은 병원체가 공통적으로 가진 특징이 레이더에 걸리면 자동적으로 출동할 뿐, 침입한 이물질이 정확히 어느 나라의 어떤 부대인지(각 병원체가 가진 특이하고 미세한 차이) 구별하지 못한다. 그러나 포식세포는 전투를 벌이면서 이 병원체에 붙어 있는 공격물질(항원)을 획득하고, 림프절로 이동한 뒤 그곳에서 기다리는 적응면역 시스템(군)에 전달해 준다. 소속부대명이 붙은 적군의 군복을 국군 사령부에 가져다주는 셈이다. 적응면역 시스템은 포식세포가 가져다 준 항원을 분석해 침입자가 ‘어느 나라의 어떤부대인지’ 확인하고, 확인 결과를 바탕으로 면역세포를 출동시킨다.
출동하는 면역세포는 T림프구와 B림프구인데, 특수부대 요원에 비유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적에 특화된 요원이 따로 선발돼 출동하기 때문이다. T림프구의 소속부대는 심장 위에 위치한 작은 장기인 ‘흉선’이고, B림프구는 ‘골수’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병원체에 각각 맞서 싸울 수 있는 특징을 지닌 T림프구와 B림프구가 각자의 소속부대(흉선과 골수)에 대기하고 있다.
이 중 선천면역 시스템이 전달해 준 병원체에 특화된 종류가 출동 명령을 받는다. 북한의 육군 군복이 전달되면 육군 특수부대가, 공군 군복이 전달되면 공군 특수부대가 뽑히는 식이다. 뽑힌 림프구들은 DNA 재조합이라는 방식으로 평상시보다 1만 배 이상 수가 늘어나는데, 이 과정에서 90% 이상은 탈락하고 최정예 요원만 살아남아 감염 현장에 파병된다. 두 특수부대는 전투 방식이 다르다.
T림프구는 직접 병원체를 삼켜 버리거나, 병원체에 감염된 인체 세포에 들러붙어 파괴하는 ‘육탄전’을 벌인다. B림프구는 면역글로불린이라는 ‘독극물’을 만들어 병원체를 죽이는 ‘화학전’을 수행한다. 우리가 ‘항원-항체 반응’이라고 말할 때의 항체가 면역글로불린에 들어 있는 성분이다. 적응면역의 전투 기간은 선천면역보다 훨씬 길어서 보통 4~5일, 길면 1~2주일이다.
병원체 정보 기억세포에 저장돼 2차전 대비
만약 인체의 면역 시스템이 백전백승이면 사람은 일평생 거의 어떤 질병에도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살다 자연사하겠지만, 현실은 다르다. B형간염·인플루엔자·에이즈 바이러스 등 수많은 병원체는 면역 시스템보다 전투력이 강하다. 그래서 일단 병원균이 침입하면 대부분 의학적 치료를 받아야하는 질병으로 이어진다.
면역 시스템이 스스로 싸워 이기든 역부족이어서 의학의 힘을 빌리든, 인체에 침입한 병원체가 소멸되면 출동한 T림프구와 B림프구는 대부분 현장에서 자폭한다. 하지만 극히 일부는 이번에 침입한 병원체의 특징을 기억하는 ‘기억세포’로 변신한다. 변신한 기억세포는 나중에 똑같은 병원체가 다시 침입할 때까지 인체 내에 머물렀다가, 2차 침입 시 더욱 효과적인 제압을 위해 재 출동한다.
이를 전문 용어로 ‘면역학적 기억능력’이라고 하는데, 지구상의 모든 생물체 중 사람을 포함한 척추동물의 면역 시스템만 이런 기억능력이 있다. 그런데 기억세포의 전투 능력은 2차 침입 시에는 꽤 효능이 좋지만, 같은 병원체가 세 번, 네 번 몸에 침입하면 점점 효능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한편, 선천면역 시스템은 기억능력이 없다. 모기에 여러 번째 물린다고 해서 가려움이 덜하거나 덜 붓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질병의 예방백신은 이런 면역학적 기억능력을 이용해서 개발한다. 죽은 균이나 아주 약하게 만든 균으로 예방백신을 만들어 건강할 때 주사하면 T림프구와 B림프구가 출동해 간단히 제압한 뒤 기억세포로 변신한다. 이들이 나중에 진짜 균에 감염된 실전 상황이 발생하면 나서서 싸우고, 동시에 다른 T림프구와 B림프구에게 대응요령을 알려줘서 확실하게 초동 제압하는 것이다.
암세포는 정신없이 찍어내는 ‘불량 짝퉁’
면역 시스템에는 ‘자기 관용’이라는 기능이 있다. 군경이 자국민에게 총격을 가하지 않듯, 면역 시스템이 정상적인 사람의 조직을 공격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면역 시스템이 오작동하면 자국민에게까지 총질을 하는 과민 반응(알레르기질환)이나 자가면역질환을 일으킨다. 꽃가루, 음식물 등 원래는 질병을 일으키지 않는 뜨내기 침입자에 과민 반응하면 아토피성피부염 등 알레르기질환이 생기고, 피아 구분이 헷갈려서 정상 조직을 외부 침입자로 착각해 공격하면 류마티스관절염 등 자가면역질환이 일어난다.
외부 침입자는 아니지만, 인체의 면역시스템을 무력화하는 가장 골치 아픈 존재가 암세포이다. 암세포는 사람의 정상적인 세포가 비정상적으로 변하면서 무한대로 분열하는 것인데, 면역 시스템은 암세포의 무한 분열을 너그럽게 봐주는 경향이 있다. 암세포의 출발이 건강했던 자기 세포이기 때문에, ‘자기 관용’ 기능이 작동하게 된다. 암세포는 매우 빨리 분열하기 때문에 유전자가 불안정한 양상을 띤다. 불법복제공장에서 어떤 물건의 복제품을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만들다 보면 오리지널 제품과 만듬새가 조금씩 다른 불량 짝퉁이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탓에 면역 시스템이 암세포를 정확히 탐색해서 제거하기 어려워진다.
암의 면역 기전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1990년대 중반부터 ‘면역 시스템이 암을 억제하는 작용을 한다.’고 보았다. 실제로 장기이식을 한 사람은 이식거부반응을 막기 위해 면역억제제를 복용해 면역 시스템의 활동력을 약화시키는데, 이때 일부 암의 발생 빈도가 높아진다. 면역 시스템이 암을 억제하는 메카니즘은 3가지다. 정상세포를 암세포로 전환시키는 바이러스를 파괴하고, 암세포 발생을 촉진하는 염증반응을 줄이고, 이미 발생한 암세포를 찾아내서 제거하는 활동이다. 특히 마지막활동을 전문 용어로 ‘면역감시’라고 한다.
면역력이 암세포를 강하게 만든다?
한편 최근에 어떤 면역 반응은 오히려 암의 증식을 촉진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외국 연구진이 이런 동물 실험을 했다. 면역력이 정상인 쥐와 면역력을 떨어뜨린 쥐에게 각각 암을 발생시켜서, 두 가지 암세포를 또 다른 쥐에게 이식했더니 면역력이 정상인 쥐에게 발생시킨 암이 훨씬 더 많이 자랐다. 이는 ‘강하게 키운 아이가 강하게 자란다.’는 식으로, 정상 면역 시스템의 암 파괴 작용을 극복하고 자라난 암세포의 강도가 더 세다는 뜻이다.
이런 최근 연구 결과까지 포함해, 면역시스템은 암을 억제하는 작용과 촉진하는 작용을 모두 한다는 ‘면역편집’이라는 새로운 가설이 나와 있다. 면역 시스템이 처음에는 새로 생기는 암세포를 찾아내서 파괴하고(제거), 그러다가 소수의 암세포가 제거 과정을 피해 살아남지만 여전히 다수의 신생 암세포는 파괴되기 때문에 몸속에 암세포가 존재하지만 자라거나 퍼지지 못하고(평형), 마지막에는 가장 공격적인 암세포가 성장하고 퍼진다(도피)는 이론이다. 의료계는 이런 최신 연구 결과 등을 바탕으로 다양한 면역학적 암 치료법을 개발하고 있다.
면역 시스템은 수많은 인체 조직과 기관, 그리고 다수의 단백질과 분자세포가 복잡하게 연결·구성돼 있다. 전체 시스템의 일부는 처음과 끝을 알기 어렵게 연결된 고리 모양의 경로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어디가 시발점인지 알 수 없다. 병원체가 침입하면 면역 활동을 시작하도록 지시하는 곳이 뇌의 중추부 어디쯤이라고 짐작할 뿐, 정확한 위치는 현대 의학도 아직 밝혀내지 못했다. 이런 접근법으로 보면, 국군은 휴전선에서 치열하게 전투 중인데, 작전 지시를 내리는 사령부는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셈이다. 면역은 인체 어느 한 곳에서 주도하는 ‘상명하달 시스템’이 아니라 온몸이 동시에 함께 움직이는 ‘협동 작업’이라고 보는 게 더 적절할 수도 있다.
"이물질이 인체의 장벽을 뚫고 들어오면 면역 시스템은 이 물질이 병원체인지 먼저 확인한다. 병원체가 아니면 내버려 두고, 병원체로 인식되면 공격당했다는 경고성 신호를 면역 시스템에 보내면서 면역 시스템이 작동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월간헬스조선 8월호(70페이지)에 실린 기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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