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세상의 모든 길은 산티아고로 통한다
강미숙 기자
입력 2014/08/04 16:52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을 가다 ② 코스 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출발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49일. 프랑스길, 포르투갈길, 북쪽길, 은의길, 영국길…. 수많은 순례길 중 어떤 길을 걸어야 할까? 알면 알수록 궁금증은 활화산처럼 폭발하는 산티아고 순례자길 초보자인 여기자의 첫 도전기. 이미 순례자의 길은 시작되었다.어떤 코스로, 어떻게 걸을까?
습하고 무덥다. 마른장마가 끝나고 한증막으로 변한 서울 한복판. 이런 곳에서도 나 뺨 위로는 밀밭을 막 스쳐지나 온 청량음료 같은 바람이 불고 있다. 산티아고 행을 결정한 뒤로 내 마음은 벌써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자 길 언저리에 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이라. 지난 내 일상은 책자와 인터넷을 뒤지며 자료를 조사하는 것이었다. 출발하기 전 설렘이 더해서 인지 앎의 기쁨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한 사이트에서 흥미로운 통계자료를 접했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사무소가 매월 내놓는 자료다. 가장 최근 자료는 6월의 것이다. 한 달 동안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착한 순례자가 3만3008명. 55%가 남성, 순수하게 도보로 도착한 사람은 85%인 2만8000명이었다. 이중 30세 이하 순례자는 6516명, 30~60세 사이가 1만8581명, 60살 이상은 7911명이었다. 마지막 자료는 ‘어떤 순례길을 택했느냐’에 대한 것이었다. 가장 많은 2만3235명이 프랑스길을 걸었고, 14%가 포르투갈길, 5%가 북쪽길이라 걸었다. 그 뒤로 은의길과 영국길 순이었다.
프랑스길, 포르투갈길, 북쪽길, 은의길, 영국길…. 순간 동공이 확장됐다. 하나일 줄 알았던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이 여럿이라면, 나 같은 길치에 스페인어도 안 되는 외국인은 길을 잃을 게 뻔했다. 국제 미아(迷兒) 아니, 국제 미인(迷人)이 될 수는 없는 일. 많은 순례초보자가 나와 같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성 야고보가 묻힌 산티아고 대성당으로 향하는 모든 길’이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이기에, 그 길이 오직 하나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누군가가 순례를 목적으로 걸었다면 어떤 길도 바로 순례자의 길이 된다. 그리고 워낙 순례길 표식이 잘 되어 있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는 것이 다녀온 이의 전언이기도 하다. 안심이다.
데스크 눈칫밥 없는 성스러운 길
가장 많은 순례자가 선택하는 프랑스길은 어떤 길일까. 프랑스 국경마을 생장 피 드 포르에서 출발해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 북서쪽 도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이르는 800km의 길이다. 도보로 한 달 남짓의 시간이 소요된다. 199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혹자는 프랑스길을 두고 ‘순례길의 고속도로’가 되어버렸다고 한탄한다. 포르투갈길은 리스본에서 출발해 이베리아반도의 서쪽 나라 포르투갈을 관통한 뒤 포르투에서 산티아고까지 이어진 길이다. 프랑스길보다 짧아 20일 남짓으로 완주할 수 있다.
북쪽길은 순례자들 사이에서 새롭게 급부상하고 있는 길. 프랑스길보다 북쪽에 치우쳐 대서양과 나란히 걷을 수 있는 이 길은 모든 산티아고 길 중 자연 경관이 가장 아름답다고 알려져 있다. 프랑스길의 가장 난코스를 피할 수 있을뿐더러 고개를 넘고 나면 펼쳐지는 수평선 풍경에 피로가 싹 풀어주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이외에도 에스파냐의 역사가 스민 은의 길, 영국에서 배를 타고와 걷는 영국길, 세비야에서 출발하는 은의길 등 다양한 루트가 있다.
자신의 취향과 시간을 고려해 길을 선택하면 된다. 이 중 내가 걸을 길은 프랑스길. 100세 시대, 내 나이 서른 중반이면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을 한 번 이상은 걷게 되지 않을까. 지금은 혼자 걷지만, 후에 아이가 생기면 가족과 함께 걸을 수도 있는 일. 그런 의미에서 첫 도전으로 프랑스길이 가장 나은 선택일 수 있다. 당초 두 눈으로 확인하겠다던 산티아고 순례 길에 대한 수많은 찬사 또한 이 길에서 나왔지 않은가. 이래저래 프랑스 길은 이번 도전의 숙명인 셈이다.
프랑스 길은 가장 걷기 좋은 계절을 꼽자면 9월말에서 10월까지. 내 이야기가 아니라 《산티아고 가이드북》을 쓴 존 브리얼리의 말이다. 봄보다 날씨가 좋은 편이고 여름의 찌는 듯한 더위도 한 풀 꺾여 딱 걷기 좋다는 말이다. 대다수는 프랑스 길을 하루 20여km씩, 한 달 정도로 걸어 완주한다.
9월 21일 출발해 내가 도전할 일정은 헬스조선의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100km)'이다. 프랑스 길의 8분의 1밖에는 안 되는 맛보기 코스지만 평소 하루 1km도 채 걷지 않는 나로서는 대단한 도전이다. 모두 5일 동안 하루 20km씩 걷는다. 마감에 파묻혀 사는 내가, 일에 대한 그 어떠한 걱정도 없이 5일이란 시간을 오직 걸으면서 보내면 된다! 오늘의 신문 일면 톱뉴스나 데스크의 눈칫밥 없는 세상이라니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지. 앞으로 남은 시간 7주. 순례의 목적을 갖고 산티아고를 향해 걷는 것이 순례자의 길이기에 이미 나의 순례길은 시작됐다. 사그락, 사그락 나의 마음은 순례길을 걷고 있다.
※ 이 글은 헬스조선의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 걷기 프로그램에 참가 연재 기사입니다. 다음 편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 위한 체력 훈련 편이 준비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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