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정보
여름밤 푹 자려면 베개를 다스려라
차수민 기자 | 도움말: 이제균 (강남자생한방병원 원장), 김고운(강동경희대병원 한방재활의학과 교수)
입력 2014/07/28 13:53
베개의 중요성 알려주는 동의보감 ‘신침법’
베개의 중요성 알려주는 동의보감 ‘신침법’
여름밤 푹 자려면
베개를 다스려라
《동의보감》에 ‘신침법(神枕法)’에 대한 기록이 있다. 베개 속에 32가지 다양한 약재를 넣어 머리를 차게 하는 ‘신령한 방법’인데, 무병장수에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신침법을 실천했더니 죽기 직전 상태던 노인이 백발이 검어지고 빠진 이가 다시 나면서 180세까지 살았다는 이야기도 구전된다.
과장된 스토리지만 건강베개는 현대인에게도 인기다. 특히 더위로 밤잠을 설치는 여름엔 베개 효능에 한 번 더 기대를 걸어 보고 싶어진다. 정말 베개가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어떤 경우에 어떤 베개를 선택해야 할까. 이슈별로 정리했다.
<베개 이슈 1>
단명 or 고침안면?
베개 관련 이슈 중 가장 먼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높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오래전부터 말이 많다. 베개를 높이 베면 단명한다는 의미의 ‘고침단명(高枕短命)’과 베개를 높이하면 편안하게 잘 있다는 ‘고침안면(高枕安眠)’이 서로 배치된다. 그런데 전문가들은 몸에 가장 좋은 베개 높이는 바닥과 뒷목의 각도가 12~16。인 경우라고 말한다. 베개가 너무 높아서 머리와 베개 간의 각도가 커지면 일자목이나 자라목을 유발하고, 반대로 너무 낮으면 어깨에 부담을 줘서 통증을 유발한다고 한다.
하지만 12~16。란 기준이 좋은 베개의 절대적 기준이 되는 건 아니다. 베개 높이와 관련해서 절대 빼놓지 말아야 하는 것이 바로 잠자는 자세다. 12~16。가 적정 높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경우는 밤새 똑바로 누워 뒤척이지 않고 잘 때를 빼놓지 말아야 한다. 주로 옆으로 누워 자는 사람이면 베개 바닥과 머리의 각도가 이보다 높은 25。 정도가 적합하다. 이 정도는 돼야 목과 허리를 잇는 척추가 일자로 펴 긴장이 풀린다. 엎드려서 자는 사람이라면 사실상 베개가 없는 것이 더 나은 경우도 많다. 이제균 원장은 “좋은 베개 높이는 잠자는 자세에 따라 달라지므로 절대적인 기준이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12~16。 기준이 좋은 베개의 절대적 기준이 되는 건 아니다.
베개 높이와 관련해 절대 빼놓지 말아야 하는 것이 바로 잠 자는 자세다"
내 베개 높이는 내 몸에 잘 맞나?
일반인이 자기 베개 높이가 12~16。인지, 25。인지 측정할 수 있지만, 지금 내 베개 높이가 알맞은 것인지는 간단하게 확인할 수 있다. 잠에서 깨는 순간 베개가 어디 있는지 점검해 보면 된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잠 들때는 베개를 잘 베는데 깰 때는 베개를 빼 버린 상태로 깨는데, 이는 잠버릇의 문제가 아니다. 베개가 잠자는 자세나 체형과 맞지 않아 잠자는 동안 무의식적으로 빼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경우 베개를 바꿔 볼 필요가 있다. 이제균 원장은 “사람은 잠자는 동안 자신이 가장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자세를 스스로 찾게 된다”며 “자다가 베개를 빼버린다면 베개 높이가 맞지 않아 불편한 것”이라고 말했다.
코골이 여부를 통해 베개가 내게 맞는지 확인할 수도 있다.
감기나 코막힘이 없는데 코를 골며 자면 베개를 바꿔야 한다. 코골이는 잠잘 때 기도가 좁아져 호흡 시 마찰이 일어나 생기는 소리인데, 숙면을 방해하는 주원인이다. 코골이에 대해 많은 사람이 “이비인후과를 가 봐도 소용없다”고 하지만, 베개 높이만 잘 조절해 줘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 평소 코골이가 심한 사람에게 폭이 좁고 높은 베개를 베게 해 고개가 뒤로 꺾이게 하면 신기하게 코골이를 멈춘다.
바닥과 뒷목의 각도가 30。 정도 다소 높은 베개에서 옆으로 자게 해도 코골이가 줄어든다. 고개를 뒤로 젖히거나 옆으로 자면 기도를 막고 있던 목 안의 점막과 근육이 한쪽으로 쏠려 기도가 열리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이 방법을 ‘체위요법’이라며 환자에게 적용한다.
부드러운 베개 or 딱딱한 베개
딱딱한 베개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푹신한 베개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개인 취향이지만, 건강에는 어떤 베개가 좋을까. 일단 너무 단단한 베개는 한 자세를 오래 유지하면 신경이 눌릴 수 있고, 혈관도 눌려 혈액순환을 막을 위험이 있다. 자세교정용으로 단단한 베개를 처방할 때 10분 이내로 사용하게 하는 이유다. 단단한 베개 하면 네모진 목침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찜질방에 가면 이런 목침을 베고 누워 있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목침은 건강에 나쁘다. 일단, 목침은 머리가 아닌 목 뒤에 베는 것이다. 단단하기 때문에 머리를 오래 누를 경우 신경 및 혈관을 자극해 어깨, 팔 등이 결리고 저린다. 모양도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네모진 목침은 안 된다. 반원통 모양의 목침으로, 목뼈를 C자 곡선 모양으로 받쳐 줘야 한다.
너무 푹신한 솜털 베개는 편안함을 느끼는 장점이 있지만, 허리나 어깨에 부담을 줄 수 있다.
결국 적당히 탄력이 있으면서 부드러운 베개가 좋다는 말이다. 그래서 최근 라텍스나 메모리폼, 노그노플랙스2 같은 새로운 소재의 기능성 베개가 인기다. 이런 베개의 핵심은 머리 무게로 베개가 눌리는 상황에도 소재 자체가 원상태로 돌아오려고 저항하는 데 있다. 따라서 머리가 일방적으로 베개를 누르는 게 아니라, 머리와 베개가 서로 밀어 주기 때문에 머리에 가해지는 압력이 베개 전체로 적절하게 분산된다. 이와 함께 베개 자체가 경추를 C자형으로 고정시키는 ‘견인베개’도 나와 있다. 정형외과나 신경외과에서 척추교정용으로 사용할 정도로 기능성을 인정받고 있다.
인류의 첫 베개는 자신의 팔꿈치라는 말이 있다. 인류가 발달하면서 머리가 점차 커지고 무거워지자, 고대인들은 잠잘 때 불편함을 느껴 머리를 받치고자 자연스럽게 자신의 한쪽 팔을 올려 괸 본능이 시작이다. 그래서 가장 좋은 베개 소재는 사람의 팔꿈치 근육처럼 단단한 듯하면서도 탄력 있어야 하고, 푹 꺼지지도 말아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최근 개발되고 있는 소재는 이에 점차 근접하고 있다. 기능성 베개의 시작을 연 소재는 메모리폼이다. 1960년대 미국 나사(NASA)에서 우주선이 발사될 때 의자에 앉은 우주인이 받는 중력 부하를 흡수하기 위해 개발했다. 우주선이 발사될 때의 충격을 흡수할 정도이니, 잠잘 때의 부담과 압력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홍보 콘셉트로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온도에 예민한 단점이 있다. 추울 때는 딱딱해지고, 더울 때는 너무 부드러워진다. 라텍스는 고무나무의 수액을 가공한 것으로 기능은 메모리폼과 비슷하지만, 첨가제를 넣지 않으면 가루가 날리는 불편함이 있었다. 라텍스 소재의 견인베개를 목에 큰 이상이 없는 사람이 베면 목이 뻐근하거나 불편하다는 호소를 하는 경우도 있다. 가장 최근 개발된 베개 소재는 노그노플랙스2다. 영하 20℃에도 얼지 않으면서 통기성은 좋아 일반 메모리폼의 단점을 보완했다.
<베개 이슈 3>
베개 속이 건강에 도움을 주나
베개 속에 건강에 좋다는 다양한 속재료를 넣은 제품도 있다. 얼마나 믿을 만할까.
한약재 베개의 효과는 근거 불충분
전통적으로 여름 베개에 메밀을 썼다. 메밀이 열을 내려 주는 성질이 있어 ‘두한족열(頭寒足熱)’이라는 건강수면 제1 요건을 충족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 여세를 몰아 최근에는 한의학에서 좋다는 약재를 넣은 베개도 비싸게 팔리고 있다. 국화, 결명자 등이 대표적이다. 열을 내리고, 이뇨작용을 도와 머리를 맑게 하는 대표적인 약재들이다. 하지만 이런 효과를 베개를 통해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김 교수는 “한약재는 먹어야 효과가 있지 베개에 넣어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주장은 이론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베개 속에 라벤더 주머니를 넣은 향기요법 베개는 효능을 기대할 수 있다. 김 교수는 “라벤더 베개를 이용한 향기요법은 심신의 안정을 돕기 때문에 불면증 치료에 좋다”고 말했다. 실제로 수면 질이 나쁜 여성에게 라벤더 베개를 통해 향기요법을 시행하니 수면을 유도하는 뇌파(세타파)가 증가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인제대 연구 결과가 있다. 베개 구입 후 2~3개월이 지나면 향이 날아가므로 그다음부터는 오일을 뿌려 사용한다. 최근 많이 쓰는 편백나무 베개도 향기요법의 일종이다. 편백나무의 피톤치드 성분이 자는 동안 심신을 안정시켜 숙면을 돕는다. 반면 여름에 많이 베는 대나무나 왕골 베개는 소재 자체의 효능보다는 몸에 닿을 때 끈적거리며 붙지 않는 촉감 때문에 시원함을 느끼는 만족감을 주는 정도이다.
월간헬스조선 7월호(70페이지)에 실린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