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걷기 로망,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
강미숙 헬스조선 기자
입력 2014/07/25 14:38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을 가다 ① 순례의 기원편
“느리게 가는 데 걷는 것만큼 좋은 건 일찍이 없었다. 걷기 위해서는 두 다리만 있으면 된다. 더 빨리 가고 싶다고? 그럼… 구르든지, 미끄러지든지, 날아라. 걷지 마라. 그러고 나서 중요한 건 오직 하늘의 강렬함, 풍경의 찬란함뿐이다. 걷는 것은 스포츠가 아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프레데리크는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이란 책에서 걷기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보였다. 루소 역시 걷기를 사랑했다. 그는 산책을 해야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 할 수 있다고 말했고, 말년에 걷기를 통해 존재의 위안을 얻기도 했다. 시인 랭보는 죽는 순간까지 죽는다는 것보다 걸을 수 없다는 것을 슬퍼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이 ‘걷기’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오직 걷기 위해 여행을 하고, 걸으며 사색을 하고, 걷는 이들을 위한 편의시설이 생겨나고, 걷고 돌아온 이들의 책이 넘쳐난다. ‘걷기’가 문화인 시대다. 제주 올레가 우리나라 걷기 문화에 일조를 하고 있지만 그 원조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이다. 걷기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을 일생에 한 번이라도 걷고 싶어 하는 ‘로망’으로 여긴다.
9월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을 걷기로 했다. 어떤 드라마가 시청률 1위라고 시끌벅적하게 떠들면 유독 그 드라마는 보기 싫어지는 나는 ‘청개구리과’다. 이런 내가 전 세계에서 수십만 명의 사람이 찾는다는 길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궁금했다. 그 길의 매력이 무엇이기에 우리나라에도 순례 열풍이 불까? 순수한 순례의 목적? 단순한 걷기의 매력? 한편으로 깊은 사색으로 이끈다는 걷기가 한 인간을 어떻게 성장시킬 수 있는지도 나를 통해 실험해보고 싶었다. 여러 이유가 중첩돼 직접 걸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서른 중반, 나에게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이 열렸다.
막상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을 걷기로 하고 보니 그곳에 대해 나는 까막눈이나 다름없었다. 산티아고가 사람의 이름인지, 지역의 명칭인지도 몰랐다. 무지몽매함을 한탄하며 서점으로 향했다. ‘산티아고’를 검색하자 서점의 커다란 책장의 한 면을 차지하고도 남을 목록이 나왔다. 어머니와 아들, 아버지와 아들, 만화가와 작가, 노년의 친구들 혹은 혼자…. 걷는 사람도 다양하고, 걷는 목적도 다양했다. 선택할 것이 많으면 오히려 고르기 어려운 법. 범람하는 정보의 홍수 속에 역사적 콘텐츠가 풍부한 책 한 권, 정보가 충실한 책 한 권, 가벼운 책 한 권씩을 집어 들었다.
가장 궁금했던 것은 ‘산티아고 길은 왜 시작됐나?’는 부분이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존재한다. 가장 유력한 설은 이렇다. 이야기의 시작은 2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인 성야고보(스페인 식 표기로 산티아고다)가 스페인의 서북부의 지금의 산티아고까지 걸으며 포교 활동을 했다. 안타깝게도 그의 선교활동 성과는 그리 좋지 않았다. 단 7명만을 개종시켰을 뿐이다. 같은 예수의 제자인 베드로는 한 번 설교에 5000명씩 전도했던 것에 비하면 지극히 작은 성과다. 그 후 야고보는 힘겹게 고국 예루살렘에 돌아왔지만 그를 맞은 것은 ‘죽음’. 헤롯왕에 의해 순교당한 야고보의 시신은 그를 따르던 사람들의 각고의 노력으로, 그가 선교를 했던 스페인의 리브레돈에 묻힐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놀라운 기적들이 많았으나 세월 속에 점차 잊혀졌다. 그 후 813년에 펠라요란 수도사가 별에 이끌려 성 야고보의 무덤을 발견하기에 이른다. 이 때문에 이곳을 성 야고보가 있는 별들의 들판 즉,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부르게 됐다. 성야고보의 무덤 위에는 산티아고 대성당이 세워졌다.
산티아고 순례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950년 고테스칼코 주교가 이곳을 여행한 데서 찾을 수 있다. 이후 십자군이 해체되는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예루살렘 순례가 위험해지자 더 많은 사람이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을 찾기 시작했다. 이런 사정에 의해 15세기 중세시대까지 번성하던 순례행렬은 다시 쇄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1982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산티아고를 찾으면서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1993년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며 종교인이든, 일반인이든 일생에 한 번쯤은 걷고 싶은 길이 되었다.
언제나 그렇듯 호기심을 자극하는 ‘설’은 길의 매력을 더해준다.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된 또 다른 사실이 있다.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은 한 가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자신의 집에서부터 시작해 산티아고 대성당을 향해 걷는다면 바로 그 길이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이 된다. 셀 수 없이 많은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이 있겠지만 가장 유명한 것은 총 길이가 800km인 ‘프랑스 길’(프랑스 남부 생장~산티아고 대성당)이다.
이렇게 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걷기를 내 나름의 방식으로 시작했다. 아는 것으로부터 한 걸음 내딛으니 한결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불신감이 줄어들었다. 줄어든 불신감의 크기만큼 기대감의 크기는 커졌다. 수만의 산티아고 순례길 중 나만의 산티아고 순례길은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Tip. 내가 고른 산티아고 가이드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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