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대 이상 부부에게 이런 질문을 하면, 상당수 남편과 아내에게서 서로 다른 답변이 나온다. 남편은 “아내와 별 갈등 없이 편안했고 경제적으로도 어느 정도 안정이 됐다. 매우 만족한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아내는 “우리가 정말 부부인지 모르겠다. 별 대화도 없고, 너무 고생을 많이 했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만족도의 차이를 점수로 환산하면 40~50점은 나는 것 같다. 매우 큰 점수 차이다.
사람의 만족도란 차이가 있으니 여기까지는 그렇다고 치자. 문제는 '만족스럽다'는 남편에게 아내는 더 화가 나고, 이런 아내를 보며 남편은 더 이해할 수 없어 어려워한다는 점이다. 모처럼 대화하려고 마주 앉으면 더 큰 화를 부르기 일쑤다.
이런 차이는 왜 생기는 것일까. 남편과 아내가 가정에 대한 삶의 비중이 다르기 때문이다. 아내는 자신의 삶과 노력의 80% 이상을 가정에 쏟는다면, 남편은 50% 정도 쏟는 것이 보통이다. 같은 문제라도 서로 느끼는 심각도는 차이가 날 것이고, 같은 갈등 요소에 반응하는 태도도 달라질 것이다.
결혼생활을 하면서 이런 차이에 대해 서로 깊게 대화하고, 그 거리를 좁히는 노력을 하면 좋겠지만 대부분의 부부는 그렇지 못하다.
이는 정상적인 결혼생활의 프로세스에 상당한 지장을 초래한다. 이론에서 말하는 정상적인 결혼생활이란 U자 커브를 그려야 한다. 신혼기에 만족도가 최고조에 이르렀다, 자녀를 낳고 살면서 하락했다 다시 반등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부부들은 대부분 이 반등 기회를 놓친다. 만족도 침체기에 각자 지나치게 자녀 중심의 삶을 산 것이 이유다. 바로 이 점이 필자가 '두 번째 신혼'을 강조하는 이유다.
지난 5월 개봉한 로저 미첼 감독의 영화 <위크엔드 인 파리>에는 결혼생활 30년 차 부부인 닉과 맥이 신혼여행 장소던 파리에서 두 번째 허니문을 즐기며 일어나는 갖가지 에피소드가 나온다. 닉과 맥의 두 번째 허니문은 시작부터 삐걱대며 부부가 서로 좌충우돌한다. 그들의 30년 결혼생활의 내면에는 아들에게만 관심을 집중하는 아내를 야속해하는 남편과 속 썩이는 아들을 올바로 길러 보려는 자신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 남편을 향한 아내의 원망이 자리 잡고 있다.
여행을 하면서 온갖 갈등과 어려움을 겪은 닉과 맥은 비로소 서로에게 관심의 초점을 맞추게 된다. 남편 닉은 여행지 파리에 전화해 도와달라고 호소하는 아들의 전화를 과감히 끊어버리고, 맥도 그런 남편의 행동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 순간 닉과 맥에게 시작된 것이 바로 두 번째 신혼이다.
두 번째 신혼은 자녀 중심이던 결혼생활의 중심축을 부부 중심으로 바꾸는 데에서부터 시작된다. 두 번째 신혼이 이 영화처럼 극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물론 바람직하지 않다. 가족관계는 자연스럽게 서서히 변화하는 것이 가장 좋고, 상처 주거나 관계를 끊어 버리는 행동은 가족 체계를 약화해 부부관계 역시 취약해질 우려가 있다.
서서히 자연스럽게 두 번째 신혼을 맞이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자녀가 독립해 나가 부부만 남게 되는 빈 둥지 시기를 잘 준비하는 것이다. 빈 둥지 시기는 부부가 두 번째 신혼을 시작하는 절호의 기회이다. 그러나 빈 둥지 시기에 두 번째 신혼을 즐기려면, 자녀의 결혼 이전부터 자녀를 심리적으로 독립시키고, 자녀 양육에 집중된 부부의 관심을 부부 자신에게로 돌리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요즈음은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해서 자녀를 독립시키지 못하는 부모도 많아, 두 번째 신혼을 시작하는 데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반대로 자녀가 이미 독립했음에도 자녀에 대한 지나친 집착으로 부모가 자녀를 떠나 보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자녀를 독립시키지 못하는 부모나 부모에게 의존해 부모를 떠나지 못하는 자녀나 서로의 행복과 성장을 방해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성장한 자녀와의 적절한 거리 두기는 자녀를 위해서나 부모를 위해서나 매우 필요한 일이다.
'고생스러웠다'고 느끼는 아내와 '그 정도면 좋은 팔자'라고 생각하는 남편, "가정만 돌보느라 내 생활이 없었다”는 아내와 “당신이 못한 게 뭐냐"고 되묻는 남편. '나 정도면 좋은 남편'이라고 주장하는 남편과 선뜻 '좋은 남편'이라고 평가하기를 주저하는 아내.
부부가 서로 마음을 터놓고 자신의 입장을 충분히 이야기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은 오랜 결혼생활의 묵은 때를 벗겨 내는 과정이다. 생활에 바빠 제대로 풀지 못하고 밀어 놓은 해묵은 문제를 부부가 함께 새롭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결코 쉽지 않겠지만, 바로 그것이 두 번째 신혼을 시작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요즈음 황혼이혼이 많다고 하는데 황혼이혼은 어느 날 갑자기 발생하는 사건이 아니다. 오랜 세월 풀지 못하고 쌓아 온 부부 갈등이 엉킨 실타래처럼 뭉쳐 도저히 풀 수 없는 지경이 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다.
황혼이혼을 방지하고 좀더 질 높은 노후의 삶을 즐기기 위해 지금부터라도 두 번째 신혼을 시작해 보자. 영화 <위크엔드 인 파리>의 닉과 맥 부부처럼, 신혼여행지를 다시 찾아 둘만의 여행을 즐겨 보는 것도 좋으리라. 다음 호에는 두 번째 신혼을 시작한 당신을 위한 구체적인 1단계 프로세스를 소개한다.

서울대 농가정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고려대 대학원에서 가족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학에서 20여 년간 '결혼과 가족'이란 주제로 강의해 왔다. 현재 '향기 나는 가족치료연구소' 소장으로 부부교육훈련 프로그램과 부부대화법 등을 교육한다. 또 성남가정법률상담소 교육원장과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가사전문 상담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월간헬스조선 7월호(164페이지)에 실린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