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부엔 카미노 Buen Camino!”
기고자: 노몽규 | 헬스조선 편집팀
입력 2014/07/03 13:21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을 걷고 나서
‘마음의 평화를 찾아 떠나는 길’, ‘느긋하고 단순하게 사는 법을 배우고 내 자신을 정직하게 되돌아보는 기회’, ‘일생에 한 번은 걸어보고 싶은 길’….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에 대한 찬사는 셀 수없이 많다. 예수의 제자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산티아고 대성당을 향하는 그 길에서는 과연 어떤 일이 있었을까.
10년 만에 미루던 꿈을 꺼내다
어느 날 우연히 TV를 돌리다 서강대 최진석 교수의 ‘현대철학자 노자’라는 특강을 보게 됐다. 강의는 예술이었고 강사의 눈빛에는 야성이 번뜩였다. 열다섯 강좌를 다시보기로 듣고, 또 들었다.
사건은 그 강의를 들은 뒤에 일어났다. 최 교수의 강의를 듣는 순간, 지금 당장 산티아고 길을 걸어야만 될 것 같았다. 예전부터 나는 산티아고 길을 걷고 싶었다. 이런 저런 핑계로 미루는 동안 10년이 흘렀고 정년퇴직을 맞았다. 관절이 아프고 동작도 느려져 그 길을 걷기에 어려운 나이가 되었다. 무거운 배낭을 계속 메고 다녀야 한다는 것, 길 가의 ‘알베르게’(순례자 숙소)에서 잠을 자야 한다는 사실이 걱정됐다.
그러던 차에 헬스조선 프로그램에 대한 신문 기사를 봤다. 걷는 거리는 총 115km. 큰 짐은 숙소에 두고 그날 필요한 것만 배낭에 챙겨 메고 걸을 수 있다 했다. 내게 딱 맞는 프로그램이었다. 망설임 없이 신청했다. 아이들은 걱정을 하면서도 “엄마, 아빠 축하해요. 건강과 도전정신과 비용, 이렇게 세 박자가 맞아야 그 길을 걸을 수 있으니까요”라며 격려해주었다. 지인들은 “돌았나? 돈 내고 걸어?”라며 걱정스런 눈빛을 보내기도 했다.
돈을 내고 길을 걷는다고?
드디어 스페인에 도착했다. 바르셀로나, 몬세라트 등을 먼저 둘러본 후 꿈에 그리던 걷기 첫 일정을 사리아에서 시작하였다. 햇빛과 바람이 좋았다. 조개껍질 이정표와 노란색 화살표가 눈에 잘 띄어 혼자라도 잘 걸을 수 있었다. 1300여 년 넘게 수많은 사람들이 걸으며 조금씩 다져진 길 아닌가.
길은 아름다웠다. 스페인 특유의 초원이 펼쳐진 능선길, 터널을 이룬 숲길, 소와 닭 등 가축을 방목하는 전원과 농가 사이의 꽃길, 야생화 가득한 언덕길과 산길, 카페와 알베르게를 지나는 마을길…. 숲속에 숨어 흐르는 냇물을 볼 때의 그 설렘이란!
돈으로 살 수 없는 감동이 있다!
걷다보면 길의 아름다움은 잊은 채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음에만 열중하게 된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순례자가 지나면 비켜주고, 속도 내어 걷는 이가 오면 먼저 보내고, 때론 앞서기도 했다. 동네 사람을 만나면 “올라(Hola·안녕하세요)” 인사를 하고, 순례자와 마주치면 “부엔 카미노(Buen Camino·좋은 순례길 되시길)”를 외쳤다. 비가와도 걷고 쨍하니 햇빛이 쏟아져도, 우박이 쏟아져도 그러려니 하고 걸었다. 그 길에는 해야 할 일도 없고 걱정도, 스트레스도 없다. 피곤하지만 푹 자고 나면 다시 걸어야 할 길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얼마나 행복하고 멋진 일인가.
드디어 마지막 날, 함께 한 우리 모두의 성취를 위해 건배했다. 기쁘면서도 무언가 허전한 느낌을 금할 수 없었다. 이제 자고 나면 내일은 더 이상 걸을 길이 없다. 그 길에 같이 한 정다운 얼굴들이 떠오른다. 이래서 사람은 이 길을 다시 찾는 것일까. 성 야곱의 무덤으로 인해 성당이 있고, 성당이 있어 카미노가 있다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은 말한다. 사람들은 늘 그곳에 가고 싶어 한다. 카미노를 걷고 돌아온 나는 오늘 내 곁에 있는 길, 양재천을 걷는다. 도가 트면, 두 길이 이어지려나.
* 글을 쓴 노몽규는 지난 4월 헬스조선의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 걷기 100km’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헬스조선은 다가오는 9월 16일 출발하는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 걷기 200km와 9월 21일 출발하는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 걷기 100km를 진행한다. 돌아오는 날은 모두 10월 1일로 동일하다.
자세한 사항은 1544-1984(헬스조선 문화사업팀)로 문의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