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신세계를 누비고 싶다면 레위니옹이라는 생경한 이름에 주목해 볼 만하다. 인도양 한복판에 있는 이 작은 섬 한가운데에는 활화산이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고, 험준한 협곡 깊숙한 곳에는 슬프도록 아름다운 사람들이 산다.
모험과 신비로 가득한 인도양의 작은 우주, 레위니옹.
레위니옹의 속살 1 화산과 협곡
웬만한 곳은 두루 섭렵한 여행 마니아라고 해도 세계 지도에서 레위니옹을 찾는 일은 쉽지 않다. 아프리카 남동부 마다가스카르섬의 동쪽에 위치한 레위니옹은 서울의 4배 크기에 약 80만 명이 사는 아주 작은 섬이다. 하지만 섬의 43%가 유네스코 지정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작지만 놀라운 보물섬이다.
생경한 이름만큼 역사와 문화도 독특하다. 이 섬은 1500년대 초반 포르투갈 사람들이 처음 발견한 이후로 네덜란드·프랑스·모리셔스·영국 등의 지배를 거쳐 1946년 다시 프랑스령이 됐다. 400년간 여러 나라의 지배를 거쳐 온 손톱만큼 작은 섬이다 보니 구석구석에 기구한 이야기가 서려 있을 터.
하지만 사람 이야기는 언제나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유럽인은 물론이고 그들이 아프리카 각지에서 데려온 흑인 노예, 인도인과 중국인이 한데 섞여 거주하는 동안 다양한 인종과 종교, 생활양식, 가치관이 어우러진 특유의 ‘크레올(Creole) 문화’가 만들어진 것이다. 덕분에 레위니옹 여행자들은 작은 섬 안에서 아프리카와 유럽과 아시아의 문화가 절묘하게 믹스된 독특한 삶의 양식을 경험하게 된다.
프랑스어로 ‘결합’이라는 뜻을 섬 이름으로 삼았으니, 그야말로 기가 막힌 네이밍이 아닌가!
레위니옹으로 가는 긴 시간 내내 궁금했다. 이 작은 섬이 세계가 지켜야 할 문화유산이 된 이유는 뭘까? 결론부터 말하면 8할이 화산 때문이다.
레위니옹은 화산섬이다. 1만6000년 전의 화산 폭발로 섬 중심부에 3개의 거대한 원형 협곡이 생겨났고, 그 한가운데에 지금도 2년에 한 번씩 용암을 분출하는 사나운 활화산이 뜨거운 숨을 내쉬고 있다. 세상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자연경관과 식생, 라이프스타일을 목격할 수 있어 여행자뿐 아니라 지질학자와 식물학자의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
비행기 안에서 잠깐 내려다본 풍경만으로도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종이조각을 구겨 놓은 듯 기이한 산속에 그림처럼 안겨 있는 마을, 용암이 흘러 들어가 그대로 굳어진 모습을 하고 있는 와일드한 해변, 푸른 산등성이 사이를 뚫고 하얀 면사포처럼 쏟아져 내리는 폭포 등 상상 속에만 존재하던 신세계다.
레위니옹 여행은 화산에서 시작해야 마땅하다. 섬을 찾은 여행자들이 짐을 풀자마자 가장 먼저 향하는 곳은 두 개의 협곡 ‘실라오스(Cilaos)’와 ‘살라지(Salazie)’다. 두 곳 모두 차로 닿을 수 있고 난이도가 비교적 낮아서 여행의 시작으로 삼기에 제격이다. 하지만 낭만적인 자동차 여행을 생각하면 오산이다. 두 시간 동안 무려 450여 개의 커브를 곡예하듯 돌며 서너 번쯤 멀미가 나오는 것을 참아낸 다음에야 첫 번째 협곡 실라오스에 도착할 수 있다. 400여 년 전, 노예 사냥꾼들을 피해 숨어 들어온 노예들이 맨 처음 정착한 곳답게 쉽게 품을 내주지 않는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웅장하고 신비로운 산세 앞에서는 누구라도 말을 잃게 된다. 완만한 능선을 그리는가 싶다가도 단칼에 베어낸 듯 날카롭게 뚝 떨어지고, 다시 하늘을 향해 치솟는 실루엣은 자연이 만든 것이라고 하기엔 너무 정교해 오히려 비현실적인 무드를 만든다.
인간이 안겨 주는 감동은 또 어떤가. 절대로 살 수 없을 것 같은 험준한 곳에 집을 짓고 농사를 지으며 살아남은 사람들의 모습은 신기하다 못해 경이롭게 보인다. 허리에 줄을 매달고 아찔한 산비탈에 일군 포도밭을 관리하고, 낭떠러지 바로 옆에 있는 손바닥만 한 밭을 맨발로 누비는 농부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일찌감치 생의 소중함을 체득했을 그들은 세계 곳곳에서 찾아온 여행자들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봉주르’하고 먼저 인사를 건넨다.
좀더 습한 지역인 서부의 살라지 협곡은 화산 지형이 보여줄 수 있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연중 충분한 강수량 덕분에 나무와 꽃 등 온갖 식물이 마음껏 자란다. 아름답고 살기 좋은 환경 덕분에 은퇴한 사람들이 노후를 즐기는 곳으로 꼽히는 지역답게 동화 속에서 툭 튀어나온 것 같은 아름다운 크레올 하우스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부풀어오른다.
살라지 협곡에 그림처럼 안겨 있는 작은 마을 ‘엘부르(Hellbourg)’는 프랑스 국민이 최고의 휴가지로 꼽는, 레위니옹에서도 가장 사랑받는 마을이다. 협곡 전체를 뒤덮은 청량한 숲 사이사이를 뚫고, 시원하게 쏟아져 내리는 수십 개의 웅장한 폭포는 살라지 관광의 백미다.
2개의 아름다운 협곡을 걸으며 워밍업을 마치면 드디어 레위니옹의 진짜 속살을 만날 차례다. 이제 가장 험준하고도 아름다운 협곡 ‘마파트(Mafate)’로 걸어 들어가야 한다. 다른 협곡과 달리 오로지 트레킹 코스를 통해 걸어서만 닿을 수 있는 곳으로 차가 접근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험하지만, 덕분에 가장 신비로운 식생을 보존하고 있어 레위니옹 관광의 노른자로 꼽힌다. 헬리콥터로 물자를 수송해야 할 정도로 철저하게 고립된 곳이지만 모험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그야말로 최고의 코스다.
이 곳 역시 자유로운 삶을 갈망한 노예들이 목숨을 걸고 숨어 들어간 은신처인 만큼 결코 쉽게 닿을 수 없다. 제법 물살이 센 강을 여럿 건너고, 시시각각 모습을 바꾸는 바위산을 서너 시간 올라야 첫 번째 마을에 닿을 수 있다. 도무지 앞을 알 수 없는 비정형적 산행에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지만, 오로지 앞으로 나아가야 하기에 누구라도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살 떨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소수의 주민이 살고 있는 몇몇 마을을 제외하고는 숙소나 식당은 물론 작은 가게 하나 없으니 믿을 것은 내 몸뚱아리와 배낭에 실린 먹을거리뿐이다. 그러나 지레 겁낼 필요는 없다. 섬의 동서남북 곳곳에서 출발해 마파트로 들어가는 수십 개의 트레킹 코스가 난이도별로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으니 하루짜리 코스부터 5일짜리 코스까지 다양한 루트중 신중하게 선택하면 된다.
단, 숙박을 원한다면 정부에서 운영하는 홈페이지(www.reunion-nature.com)를 통해 반드시 숙소를 예약하고 가야 한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협곡을 구비구비 누비며 레위니옹에 매혹되었다면 이제 하이라이트인 거친 활화산으로 걸어 들어갈 차례다. 해발 2632m 높이의 ‘푸르네즈봉’은 지난 500여 년 동안 300회 이상, 가깝게는 1년 전에도 용암을 토해낸 세계 5대 활화산 중 하나다.
해발 2300m 지점까지 차로 닿을 수 있는데, 단언컨대 전망대에 서는 순간 누구라도 아찔한 현기증을 느끼게 될 것이다. 현실에서 비현실의 블랙홀로 쑥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랄까?
눈앞에 보이는 것은 타는 듯 붉은 흙과 위협적인 용암 자국, 시커먼 흙을 뚫고 나온 희귀 고산식물, 날카롭게 깎여 나간 바위뿐. 곳곳에 솟아나 있는 기이한 모습의 기생화산을 보고 있노라면 믿을 수 없을만치 생경한 풍경에 숨이 가빠 온다. 다행인 것은 그 모든 것이 그림의 떡이 아니라는 점이다.
원한다면 누구라도 이곳에서 시작되는 트레킹 코스를 따라 분화구 정상까지 걸어갈 수 있다. 왕복 7시간 동안 울퉁불퉁한 바위 사이를 오르내려야 하는 쉽지 않은 길이지만, 이 먼 곳까지 날아와서 펄펄하게 살아 숨쉬고 있는 불구덩이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환희를 놓칠 바보가 있을까.
반드시 도전해 보자.
레위니옹의 속살 2 인도양과 액티비티
협곡과 화산의 반대편에는 레위니옹을 좀더 아름답게 하는 바다가 존재한다. 화산의 존재감이 워낙 큰 탓에 가려진 감이 있지만 아름다운 인도양이 레위니옹을 둘러싸고 있고, 그중에서도 서쪽은 일 년 내내 온화한 기후가 이어져 해수욕에도 제격이다. 현지인은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가족들과 함께 이 바다의 축복을 온몸으로 즐긴다. 기이한 산호초로 이루어진 화이트 샌드 비치와 용암이 풍화되어 만들어진 블랙 샌드 비치, 바다로 흘러간 용감이 그대로 굳어져 만들어진 사우스 비치 등 놓쳐서는 안 될 이색 해변이 즐비하다.
레위니옹의 산과 바다를 좀더 가까이 마주하고 싶다면 다양한 액티비티를 체험해 보는 것도 좋다. 섬 전체에 걸쳐 장장 600km에 달하는 수백 개의 환상적인 트레킹 루트를 따라 걷는 하이킹은 그중에서도 필수코스다. 유럽에서 몰려드는 엄청난 수의 하이커들을 위해 다양한 컨셉트의 상품이 마련되어 있다. 지역마다 자리 잡고 있는 관광안내센터에 가면 자세하게 지도와 함께 상세한 안내받을 수 있다.
좀더 다이내믹한 것을 원한다면 패러글라이딩을 강력 추천한다. 서쪽 해안의 생루(St-Leu) 지역은 일 년 내내 전 세계에서 찾아온 패러글라이딩 애호가들로 북적이는 패러글러이딩의 천국이다. 오로지 패러글러이딩을 위해 레위니옹을 찾는 마니아도 상당수인데, 해안도로를 달리다 보면 알록달록하게 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은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완전초보라도 숙련된 조교와 함께 타는 2인승 비행을 선택할 수 있으니 안심해도 된다.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을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열 마음이 있다면 헬리콥터 투어가 정답이다. 차로는 닿을 수 없는 마파트는 물론 아직 재가 채 식지 않은 활화산의 심장부, 깎아지른 협곡 사이사이를 아찔하게 누비는 그야말로 ‘특급경험’을 할 수 있다. 다양한 회사에서 15~45분(요금은 85~240유로 수준)간 다양한 코스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최근에는 캐녀닝(Canyoning)이 뜨고 있다. 유럽에서는 이미 엄청난 마니아층을 보유하고 있는 캐녀닝은 트레킹 외에 암벽타기와 동굴탐사, 다이빙과 급류타기 등 다양한 레포츠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익스트림 레포츠다. 공항에서 만난 유럽 여행자 중 가장 많은 이들이 캐녀닝을 위해 이곳에 왔다고 대답했다.
이 밖에도 탐나는 액티비티는 많다.
유럽 여행자들이 선호하는 승마는 그중에서도 백미다. 잘 훈련된 말을 타고 아름다운 호수가를 산책하거나 걷기에는 위험한 화산 지형을 둘러보는 승마 프로그램, 보트를 타고 먼 바다로 나가 인도양의 고래를 만나는 웨일 와칭, 황홀한 라군을 누비며 수백여 종의 열대어와 산호를 만나는 스쿠버다이빙 등도 놓칠 수 없다.
음식도 최상이다.
프랑스령임에도 쌀을 주식으로 하는데다 매콤한 맛을 좋아하는 레위니옹의 식단은 한국인 입맛에 도 딱 맞는다. 앤티크한 은빛 냄비에 담겨 나오는 카리(Cari: 여러 가지 향신료를 아낌 없이 첨가해 강한 맛이 나는 레위니옹식 카레)와 오가닉 렌틸콩으로 만든 수프, 토마토와 양파, 고추 등을 버무려서 만드는 새콤한 칠리 소스(한국의 김치같이 어떤 음식을 먹든 이 매운 소스를 첨가해 먹는다)만으로도 훌륭한 식사가 완성된다. 여기에 섬에서 전량 소비되는 로컬 비어 ‘도도’ 한잔 곁들이면 충분하다.
뭔가 아쉽다면 현지인처럼 신선한 사탕수수 주스를 발효시켜 만든 럼으로 식사를 마무리하는 것도 좋다. 레스토랑마다 주인 특유의 제조 방법이 있어 다양한 맛을 즐기기 좋다. 몇몇은 단숨에 하늘이 빙빙 돌 정도로 독하니 부디 무리하지 마시길.
▶ 헬스조선은 10월 17~24일 레위니옹의 핵심지역을 여행하는 레위니옹 활화산 트레킹을 진행한다. 상세정보는 홈페이지 tour.healthchosun.com에서 볼 수 있다.
문의·신청 1544-1984
2 살라지 협곡의 작은 마을 ‘엘부르(Hellbourg)’. 파스텔 톤 크레올 하우스로 가득한 아름다운 마을인데, 프랑스인이 가장 사랑하는 마을로 꼽히기도 했다.
3 시장에서 장을 보는 노인마저 신비로운 인상을 남기는 레위니옹의 매력.
2 극소량만 생산되는 ‘부르봉 커피’는 고급스런 풍미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명품 커피다.
3 너무 험준해 반드시 걸어야만 접근할 수 있는 마파테 협곡. 헬리콥터를 통해서 물자를 수송할 정도로 철저하게 고립된 곳이지만 모험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최고의 트랙킹 코스다.
2 한가로운 주말 오후 마주친 결혼식 하객. 각자 화려한 전통의상을 입고 결혼식에 참석한다.
2 서쪽 해안가 ‘에탕 살레방’의 블랙 샌드 비치.
3 용암이 흘러 들어가 그대로 굳어진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를 ‘와일드 사우스’라고 부른다.
4 주말이면 모두 해변으로 나와 일광욕과 바비큐를 즐기며 가족과 시간을 보낸다.
2 서쪽 해안가에서는 인도양의 아름다운 정취를 마음껏 맛보며 다양한 해양 레포츠를 즐길 수 있다.
1 다양한 종류의 칠리는 약방의 감초 격이다.
2 ‘부르봉 커피’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명품 커피다.
3 날씨가 좋을 때는 웨일 와칭 프로그램을 통해 인도양의 고래를 만날 수도 있다.
글을 쓴 오유리는 출판사 ‘바람’ 대표다.
레위니옹과 세이 셸, 아프리카 대륙 등을 1년간 여행하면서 다양한 여행칼럼을 게재해왔다. 여성 잡지 편집자로 13년간 근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