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인생

쿠바에는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이라는 전설이 있다. 쿠바 전통 음악이 잊혀져 가는 것이 안타까워 현재로 되살려 내겠다는 꿈과 열정을 불태운 시니어 재즈 클럽인데, 같은 이름의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이들은 모두 원래 전문 음악인이 아닌 각기 다른 일을 하던 노동자들이었다.

우리나라에도 한국의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을 꿈꾸는 이들이 있다. '해당화'라는 직장인 시니어 밴드 모임이다. 젊은 시절 들었던, 마음속에 남아 있는 음악을 세월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게 하겠다는 뜻에서 모였고, 매일 뜨거운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그들을 만나 봤다.

 

#1 악기와 함께 당당하고 화려하게

한 인터넷 포털 사이트 카페를 검색해 보면 7080 직장인 시니어 밴드 모임인 '해당화'가 검색된다. '해가 갈수록, 당당하게, 화려하게' 라는 뜻의 이름이다. 50~60대 시니어 직장인 여덟 명이 각각 기타와 베이스, 색소폰, 드럼, 키보드 등의 악기를 연주하고, 보컬도 직접 하면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사업가, 회사원, 프리랜서, 자동차판매업 등 직업도 다양하다. 이들은 젊은 시절부터 들었던, 마음속에 늘 간직하고 있는 음악을 재현해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시니어들의 열정을 확인하자는 취지에서 모임을 만들었다.

해당화는 매주 수요일 저녁 6~10시에 소속 카페 전용 합주실에서 연습한다. 그렇게 함께한 시간이 2년이 넘었다. 특정 장르를 고집하기보다는 최신 곡을 포함해 70~90년도 팝송과 가요 등을 연주한다. 단독 공연은 여러 차례 했다. 동창회 송년회나 동문회 등 초청 공연에서도 연주한다. 홍대입구에서 하는 단독 공연에는 가족과 친구는 물론 젊은 사람들까지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다. 보컬을 담당하는 최정희 씨는 "가족과 친구들이 공연 끝난 뒤 뿌듯해 하고 기뻐하는 모습에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들의 실력은 전국 52개 팀이 참가한 제1회 시니어밴드페스티벌에서 동상을 차지할 정도로 수준급이다.

이들은 "악기 연주가 삶의 의욕을 되찾아 줬다"고 말한다. 악보를 꾸준히 공부하고 박자 감각을 발달시켜 나가다 보니 기억력이 좋아졌다. 해당화 맏형 정용화 씨는 "원래 모임에서 다른 사람과 잘 섞이지 못하는 성격인데, 음악을 통해 교감하다 보니 서로 공감대를 이룰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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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밴드 해당화 연주 장면

#2 시니어도 악기 배울 수 있다

악기를 새롭게 배우는 것이 어색하고 두려울 수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 기타와 색소폰을 맡고 있는 최건성 씨는 "하고 싶은 의욕만 있으면 악기를 다뤄 보지 않은 시니어도 충분히 연주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2년 정도의 연습 시간은 필요하다. 이 기간에는 물론 혼자 연습하는 것이 지겹고 힘들다. 하지만, 이 기간을 극복하면 어느 정도 실력이 쌓이고, 실력을 쌓고 나면 동호회에 가입하거나 시니어클럽을 주축으로 밴드를 결성해 함께 연습할 수 있다. 밴드 활동을 시작하면 기량이 빨리 늘고, 재미도 있다.


Tip) 시니어가 악기 배우기 좋은 곳

악기는 인근 실용음악학원이나 노인회관, 시니어클럽 등에서 배울 수 있다. 해당화 멤버들이 추천한 악기 강습소는 다음과 같다.

강남시니어플라자 색소폰, 만돌린, 오카리나, 하모니카, 바이올린, 첼로, 우쿨렐레, 클라리넷, 아코디언 등 다양한 악기를 배울 수 있다. 민요, 가요 등 노래 배우기 프로그램이 있어 보컬을 하고 싶은 경우에도 방문해 보면 좋다. 문의 02-554-5479

색소폰나라 색소폰을 배우길 희망하는 시니어라면 색소폰나라 카페(www.saxophonenara.net)에 가입해 보자. 40~50대 골드방, 60~70대 실버방 등 시니어 모임이 결성돼 있다. 초보라도 언제든지 배울 수 있다.

뮤직필드 바쁘거나 직접 학원을 찾아 다니기 힘들다면 온라인 강의(www.musicfield.co.kr)를 신청해 보자. 통기타, 아코디언, 드럼, 색소폰 등 다양한 악기를 배울 수 있다. 초보부터 전문가 과정, 무료강좌도 들을 수 있다.

 


 




#3 악기를 즐기는 시니어들

Interview1 리드기타 정용화(67)

“밴드는 내게 타임머신과 같아”
리드기타를 맡고 있는 큰형님 정용화 씨는 "악기를 만지면서 다시 젊어진 것 같다"며 "악기는 내게 타임머신과 같다"고 말했다. 정씨는 대기업에서 26년을 근무하다 은퇴했고, 지금은 사업을 하고 있는 사장님이다. 직원들에게 어렵기만 했던 사장님이 밴드 활동을 하고 나서부터는 즐겁고 따뜻하게 바뀌었다. 젊은 직원들과 농담을 곧잘 주고받고, 패션 스타일이 젊어졌다. 정씨는 "오랜 시간 경직되고 굳어 있던 몸과 마음이 봄 눈 녹듯 녹으면서 마음까지 부드럽게 열린 것 같다"며 "예전에는 눈도 잘 못 맞추던 직원들이 이제는 밥 사달라고 조른다"고 말했다.

인터넷 강의로 하루 4시간씩 독학 열정
정씨는 해외출장 때도 기타를 들고 갈 만큼 열정이 대단하다. 대학시절 잠깐 만져본 기타는 직장 생활을 하고 가정을 꾸리면서 오래 전에 손을 놨다. 그러던 그가 악기를 연주하게 된 것은 5년 전 교회에서 기타 반주를 시작하면서다. 레슨 없이 인터넷 교재를 가지고 하루 4시간씩 독학하면서 실력을 쌓았다.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니 체력적인 어려움과 한계는 저절로 극복되더라”며 “악기를 연주할 때마다 생기는 기쁨과 설렘이 피곤함과 우울함 등을 모두 떨칠 수 있게 해준다”고 말했다. 요즘도 매일 2시간씩 빼놓지 않고 집에 만들어 놓은 연습실에서 기타를 연주한다. 연습 때문에 쉬지 못하는데도 건강은 예전보다 좋아졌다. 정씨는 “해당화 연습이 있는 날에는 다른 모임에 나갈 수 없으니 늦은 밤참을 안 먹게 돼 살이 빠지고 건강도 좋아졌다”고 말했다.

짧은 손가락의 한계는 빠른 손놀림으로 극복
정씨의 손가락은 다른 사람보다 유난히 짧은 편이다. 대학 시절에 잠깐 기타를 만졌을 때도 선배와 친구들이 모두 “너는 기타 치지 말아라”라고 말할 정도로 손가락이 짧다. 하지만, 연습을 계속해 짧은 손가락의 단점을 빠른 손놀림으로 극복했다. 처음에는 오래 서 있는 일도 쉽지 않았다. 한 시간만 서서 연주해도 핑 돌고 다리가 붓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연주를 포기하기 싫어서 꾸준히 걷기 운동을 한 덕분에 다리에 힘이 생겨 한두 시간 서 있는 것쯤은 거뜬하다. 방에서 악기만 연주하는 것을 싫어하던 아내도 이제는 좋아하고, 오히려 함께 악기를 배워 연주한다. 아내가 연주하는 악기는 오카리나다. 함께 악기를 배워 같이 공연하니 부부 사이가 더 돈독해졌다.


Interview2 색소폰·기타 최건성(61)

“밴드는 후반기의 화려한 선물”
기타와 색소폰 등 두 가지 악기를 번갈아 가며 연주할 줄 아는 최씨의 실력은 두 악기 모두 수준급이다. 하지만, 이전에 악기를 전문적으로 배우거나 다뤄본 경험은 없다. 기타는 초등학교 때 집에 있는 기타를 갖고 놀았을 뿐이고, 색소폰은 학창 시절 잠시 만져만 봤다. 최건성 씨는 “하지만, 세월이 흘러가도 예전에 만져본 악기에 대한 향수와 아득한 그리움을 떨쳐내기 어렵더라”고 말했다. 그래서 시작한 악기다. 처음에는 당연히 서툴렀다. 그래서 퇴근 후에 매일 한 시간씩 꾸준히 연습했다. 최씨는 “성인이 돼서 악기를 배우려고 하면 대부분 특정 자리에서 한 번쯤 멋지게 연주할 수 있는 곡 위주로 가르쳐준다”며 “하지만, 나는 악보 보는 기본부터 가르쳐 달라고 요청했고, 악기 잡는 자세부터 제대로 배웠다”고 말했다. 그의 시작은 그래서 동요였다.

밴드 활동 후 찾게 된 진정한 삶의 의미
사업을 하던 최씨는 과거 사업을 일으켜야 한다는 부담과 스트레스 때문에 죽음의 문턱까지 이른 적이 있다. 최씨는 “부정맥으로 쓰러져서 심폐소생술을 받아 겨우 살아났다”며 “건강을 잃으면 재물이나 성공이 아무 의미 없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고 말했다.
밴드를 시작한 이후로는 스트레스가 없다. 사업에 대한 부담을 접고 회사원으로 일하고 있어서기도 하지만, 음악이 스트레스 해소의 창구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최씨는 “나이 들어서 시작한 일은 만족도가 높고, 보람이 더욱 크다”며 “사업이 잘 됐을 때보다, 직장에서 직급이 올라갔을 때보다도, 악기를 연주할 때 더 기쁘고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성격 너그러워지고 건강 좋아져
밴드 활동을 시작한 후로는 평소 답답하던 가슴 속이 가뿐해졌다. 주치의는 색소폰을 불어서 심폐 기능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성격도 차분해졌다. 오랜 시간 악기와 싸움하면서 인내심을 키운 탓인지, 주위 사람에게 화낼 일이 없어졌다. 여러 사람이 함께 하는 활동이라 더 즐겁다. “여러 사람이 각자 악기를 연주하는데 딱 맞아떨어지는 느낌을 받을 때 희열을 느낀다”며 “밴드 활동은 내 인생 후반기를 가장 아름답게 빛내 주고 있다”고 말했다.




취재 헬스조선 편집부 | 사진 김범경(St.HELL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