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관련 일을 하고 있는 이모(26·서울 양천구)씨는 샤워를 할 때 놀라는 일이 많다. 어디 부딪히거나 넘어지거나 남과 싸운 적이 없는데도 몸 곳곳에 시퍼렇게 멍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걱정이 된 이씨는 병원을 찾아 혈액 검사를 받았다. 이씨는 의사로부터 “혈소판 수치가 약간 떨어져서 멍이 잘 생기는 것”이라며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들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든 멍 때문에 ‘큰 병이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특별한 동반 증상 없이 멍이 잘 드는 것만으로는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여성과 노인은 원래 멍 잘 들어
멍은 외부의 충격을 받으면 혈관 안에 있어야 할 적혈구가 혈관 밖으로 빠져나와 피부 바로 아래쪽에 뭉쳐있는 상태를 말한다. 남성보다는 여성이, 젊은 사람보다는 노인이 잘 드는 편이다. 여성과 노인의 피부 조직이 약하고 얇기 때문이다. 이는, 작은 충격만으로도 혈관이 자극을 많이 받게 해서 적혈구가 혈관 밖으로 잘 빠져나오게 만든다.
피부가 약한 것 외에, 혈소판 수치가 약간 낮은 것도 여성이 상대적으로 멍이 잘 드는 이유다. 가임기 여성 10명 중 1명은 가벼운 혈소판 감소증을 앓고 있는데, 혈소판 수가 적으면 적혈구가 혈관 밖으로 빠져나오는 것을 잘 막지 못해 멍이 잘 생긴다. 하지만 을지병원 혈액종양내과 공수정 교수는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로 심각한 질병이 아니다”라며 “멍이 잘 드는 것 외에 특별한 증상이 없으면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다만, 감기 등 바이러스성 질환에 걸리면 일시적으로 혈소판 수치가 더 떨어져서 멍도 더 잘 생길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동반 증상 있을 땐 질병 의심해야
하지만 중증의 혈소판 감소증인 사람은 혈액 검사를 받고, 결과에 따라 치료를 적극적으로 받는 게 좋다. 멍이 잘 들면서 다리에 작고 붉은 반점이 생기거나 생리양이 갑자기 늘었다면 중증 혈소판 감소증일 수 있다.
멍과 함께, 잇몸 출혈이나 코피가 자주 나는 사람도 조심해야 한다. 간기능이 저하된 것일 수 있다. 간기능이 저하되면 정상인보다 혈소판이 더 많이 소비되면서, 혈액 응고 인자도 제대로 안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어린이가 또래보다 멍이 잘 들면서 코피가 자주 날 때도 혈액응고장애를 의심해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