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습관일반
술꾼과 술군(君)의 미묘한 경계
헬스조선 편집팀 | 도움말=다사랑중앙병원 이무형 원장
입력 2012/08/26 09:05
본인의 음주상태가 지극히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애주가 20명에게 자가진단표(audit-k)를 통해 자신의 음주습관에 대해 테스트를 실시한 결과 실제로 정상음주군에 해당한 사람은 13명(65%) 뿐이었고 5명(25%)은 위험음주군, 2명(10%)은 알코올사용장애추정군, 즉 알코올남용 또는 알코올의존으로 나타났다. 동시에 애주가 20명의 아내들에게도 남편의 음주습관을 체크하도록 했는데, 아내의 테스트 결과와 남편의 결과에는 차이가 있었다. 아내가 본 남편의 음주상태는 정상음주군이 45%(9명)에 불과했고 위험음주군이 40%(8명)으로 조사됐으며, 알코올사용장애추정군이 15%(3명)로 나타난 것이다.
조사에 참가한 애주가 집단은 본인이 매우 건강한 음주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지만 실제로 35%가 잘못된 음주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그 아내집단의 조사결과에서는 남편들이 그보다 더 높은 55%가 잘못된 음주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생각의 차이를 보여준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일수록, 또 알코올 중독으로 진행되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술문제를 부정하고 축소하고 숨기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그 가족과의 점수 차는 점점 더 벌어지게 된다. 실제로 다사랑중앙병원 자체적으로 알코올 의존증 환자와 그 보호자들을 무작위로 선정하여 진행한 검사에서 뚜렷한 차이가 나타났다. 관리병동 환자 20명이 자신의 입원 전 음주습관에 대해 체크한 검사 결과 4명(20%)이 정상음주군에 해당했고 45%(9명)이 위험음주군에 속했으며 7명(35%)만이 알코올사용장애추정군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보호자가 환자의 술습관을 보고 체크한 결과를 보면 16명(80%)이 알코올사용장애추정군으로, 9명(20%)이 위험음주군으로 나타났으며 정상음주군은 없었다. 이 같은 결과는 환자의 술문제에 대한 환자 본인과 보호자의 극명한 생각 차를 보여주는 한편, 자신이 술문제가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알코올 의존 환자의 특성을 보여준다.
보통 우리가 애주가라 말하는 부류는 정상 이상으로 술을 마시는 사람들인데 이들은 자신이 술을 많이 마시는 것이 문제가 있다는 것도 알고 술을 줄여야 한다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정도가 넘어 알코올 의존 단계까지 가면 술을 먹는 것이 생활이 되어 자신의 술문제를 지적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술문제를 축소시키려 하고 알코올 의존이라는 사실도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술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한 술문화를 가지고 있다. 술 마시기를 좋아하고 술자리를 자주 갖는 사람을 애주가라고 부르며 사회성이 뛰어난 사람으로 인식하거나 술을 잘 마시는 능력을 부러워하는 잘못된 분위기가 우리나라에 깔려 있는 것이다. 때문에 분명 문제음주를 하고 있는 사람들도 본인의 술문제를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문제음주자가 과음, 폭음 등의 잘못된 음주습관을 계속 이어간다면 자연히 자신도 모르게 알코올 의존으로 가는 수순을 밟게 된다. 알코올 의존은 술을 조절하는 능력을 상실한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힘으로는 술을 조절할 수 없고 자제할 수 없다. 그 상태에 이르면 본인이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보다 어떻게든 술을 마실 궁리만 하게 되고 몸과 정신이 피폐해지기 때문에 보다 못한 가족들이 입원을 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나라의 술문화를 개선하지 않고서 알코올 중독의 자발적인 입원을 기대하긴 어렵다.
알코올에 관대한 우리나라에는 현재 수많은 알코올 의존증 환자가 있고, 이들은 본인이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도 인식하지 못한 채 방관하거나 방치되어 있다. 그런데 알코올 의존증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사회의 인식이 치료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장애로 작용한다. 또한 여성음주자의 경우 남성에 비해 더욱 안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비난하는 차별적인 분위기 역시 여성 환자가 치료의 기회를 얻기 힘들게 한다. 우리나라에는 가족에 의해 치료를 받는 환자보다 가족에게 버림 받고 홀로 술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환자들이 더욱 많다.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가족의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있는 환자들이 증가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본인이 스스로 술문제를 인식하는 단계에 쉽게 알코올 전문병원을 방문해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하루 빨리 조성되어야 한다. 알코올 질환은 예방이 앞서야 중독까지 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