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
어느 신생아의 죽음, 그리고 15개월 뒤‥
헬스조선 편집팀 | 기고자=김문영 제일병원 산부인과 교수
입력 2012/02/16 13:17
벌떡 일어나 병원으로 향했고 산부인과 주치의로서 아기보다는 아기의 상태로 힘들어하고 있을 산모가 더 걱정이 되어 나의 발걸음은 신생아 집중치료실보다 산모의 병실로 향하였다. 이렇게 갑자기 아기의 상태가 좋지 않으면, 남편은 대개 산모에게 이 사실을 숨기고 밤새 전전긍긍하게 마련이다. 우선 남편과 면담을 하고 산모의 동향을 살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산모는 어느 정도 아기의 상태에 대해 알고 있었고, 일단 산모에게는 안심과 위로의 말을 하며, 신생아 집중치료실로 향하였다. 상태는 심각했다. 아무리 산소 분압을 올려도 산소 포화도는 유지되지 않았다. 신생아의 호흡곤란은 원인불명이었고 선천성 폐형성 장애를 의심할 뿐이었다. 500gm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조산아도 살리는 상황에서 만삭으로 태어난 신생아가 사망하는 일은 드물기 때문이다.
아기는 태아난 뒤 처음 맞는 첫 아침의 기운을 느껴보지도 못하고 동틀 무렵 그 가녀린 숨이 끊겼다. 이제 나는 산과 주치의로서 내 환자, 산모를 추스려야 한다는 한가지 생각으로 병실로 향했다. 산모는 오열도 못하고 그저 눈물만 주룩주룩 흘리고 있었다. 산모의 마지막 간청은 방금 사망한 아기가 더 차가워지기 전에 직접 안아보고 마지막 작별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는 남편과 함께 산모를 부축하여 신생아집중치료실로 향하였다. 산모와 아기 아버지는 아기를 쓰다듬고 안아보고 마지막 작별을 했다. 나와 신생아 의사, 간호사 모두 숙연한 분위기로 모두 같이 눈물을 뚝뚝 흘렸던 그날 새벽이 아직도 너무 생생하여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나의 눈시울이 다시 뜨거워졌다.
최근 수십 년간 의학의 발달로 신생아 사망률은 많이 감소하였지만, 여전히 신생아 사망은 존재한다. 작년 소아과학회지에 발표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 신생아 사망율은 1993년 1000명당 6.6명에서 2009년도 1.7명으로 감소하였다. 20년간 4분의 1로 감소하였지만, 여전히 출생 신생아 500명 중 약 2 명은 소위 ‘태아-신생아로의 적응’을 잘하지 못하여 안타깝게도 사망한다. 실제로 신생아 사망의 원인은 매우 다양하며 원인을 알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이렇듯 의료진이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하는 신생아 사망은 확률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천재지변과도 같은 불가항력의 사망까지, 노력한 현장의 의사들에게 50% 보상을 하라는 법이 생겼다. 원인 모르는 산모나 신생아가 사망하는 경우, 우리 의사들은 가족만큼 답답하고 그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런 법으로 인해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는 산부인과 의사들에게 보상을 하라는 것은 마치 의료진들에게 잘못이 있어 보상을 하게 한다는 오해를 야기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는 신뢰에 바탕을 두어야 할 환자-의사와의 관계를 악화시킬 것이고, 이제 의대를 졸업하는 젊은 의학도들은 산부인과 지원을 더욱더 기피하게 할 것이다.
이렇게 아기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그로부터 15개월 뒤, 내 환자는 다시 임신을 해서 왔다. 나는 누구보다도 기뻐했다. 나는 뱃속에 있는 그 아기에게 내가 두 번째 엄마라는 마음으로 정성껏 산전진찰을 했고, 건강한 아기를 순산할 수 있었다. 50% 보상이라는 재원으로 보답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 아니고, 다음 아기를 건강하게 안겨주는 것이 나의 소임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나에게 다시 와 준 산모가 고맙다. 나에게 기회를 준 산모가 고맙다.
만약 재원으로써 그 아기의 죽음을 해결했다면 그 산모가 나에게 다시 왔을까? 불가항력적인 의료현장에서 생긴 문제에서 분만의사가 보상재원의 반을 충당하라는 의료분쟁 조정법 및 그 시행령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무과실 보상이라는 위헌적 요소를 언급하기 이전에 생명 탄생의 순간을 앞에 두고 산모와 산부인과 의사와의 관계를 무너뜨릴 소지가 있는 위험한 발상이다. 산모가 두 번째 임신을 하여 나에게로 왔을 때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의술’로서 내 산모의 깊은 상처를 치료했다. 정부가 주장하는 대로 산부인과 의사들이 불가항력적인 의료 현장에 있었다는 것만으로 50%의 보상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면 이는 금전적인 문제가 아니고 열악한 의료현실에서 분만실을 지키고 있는 산부인과 의사들의 사기를 바닥에 떨어뜨리는 문제가 될 것이고, 마치 의사가 잘못이 있어 돈을 내는 듯한 인식을 주게 되어 환자와의 관계를 더욱 멀어지게 할 것이다. 물론 산모와 가족들은 위로를 받아야 한다. 이는 국가 재정에서 전액지원 되어야 할 부분으로 판단하며, 저출산 고위험 임산부시대에 나라의 어느 예산보다 중요시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지 20년 동안 오로지 분만실을 지킨 나의 머리 속을 파고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