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이병철 한림대한강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최근 인기를 모으는 TV드라마 '해를 품은 달'의 주인공인 왕 이훤은 중증 상사병에 시달리고 있다. 어린 시절 부부의 연을 맺으려고 했지만 주변의 음모로 세상을 떠난 연인 연우를 8년째 잊지 못한다. 이 탓에 불면증에 밥을 못 먹는 것은 물론, 호흡곤란에 심장을 부여잡고 쓰러지기까지 한다.

진료실에서도 이처럼 심한 상사병 환자를 종종 본다. 지난해 말 4년간 사귀던 연인에게 실연당하고 목숨을 끊으려다가 응급실로 실려와 목숨을 구하고, 약물치료를 받고 있는 박모(24)양은 "그가 없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숨이 막히고 심장이 미친듯이 뛰는 발작을 느낀다"고 호소한다.

상사병은 못 이룬 사랑에 집착하는 '강박장애'와 고통스러웠던 이별의 순간을 떠올리며 두려워하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가 결합한 증상이다. 향수병도 마찬가지이다. 과도한 집착의 대상이 '헤어진 연인'이 아닌 '돌아가지 못하는 고향'으로 다를 뿐이다.

이루지 못한 사랑이 있다고 해서 누구나 상사병에 걸리지는 않는다. '해품달'의 다른 주인공 양명은 이훤처럼 연우를 사랑했고, 지금도 그리워하지만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하게 살고 있다. 현실의 우리들도 대부분 양명과 같다.

반면, 실패와 좌절로 힘들고 불안정할 때 연인을 만났던 사람, 남들 모르게 폐쇄적인 연애를 한 사람, 다른 사람과 인간관계를 맺고 이를 통해 자신의 삶을 변화시킨 경험이 부족한 사람 등이 상사병에 잘 걸린다. 또, 평소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 상사병에 취약하다.

상사병이나 향수병은 불면증과 섭식 장애(식욕 상실 또는 폭식증)는 기본이고, 조울증, 호흡곤란은 물론 심계항진 등 심장질환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 이런 증상이 6개월 이상 이어지면 애틋한 감정의 수준을 넘어선, 치료가 필요한 질병으로 봐야 한다.

상사병에 걸린 사람의 머릿속에는 그리움과 슬픔, 두려움과 기쁨, 설렘과 아픔 등 연인과의 모든 기억이 '분노·불안·공포'라는 이름의 하나의 보따리로 묶여 있다. 이 보따리에서 개별 기억을 하나하나 꺼내 도서관 서가의 책처럼 재분류하는 치료를 하게 된다.

치료 과정에서 옛 연인과의 기억을 '분노·불안·공포'라는 어두운 책꽂이에서 꺼내 '그리움', '옛사랑'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의 책꽂이로 옮기면 집착을 내려놓게 된다. 연인을 만나기 전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서 자신감을 회복하는 치료도 한다.

자해를 시도할 위험이 보이는 등 심각한 상황이면 신경차단제 성분의 약물치료도 시행한다. 이 약물은 과거의 아픈 기억을 덜 떠오르게 하고, 슬픈 감정을 억제시키는 효과가 있다. 3개월 정도면 치료 효과를 본다.




이병철 한림대한강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