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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한 부산백병원 안과 교수

6년 전 황반변성으로 오른쪽 시력을 잃은 60대 남성이 올 초 진료실을 다시 찾아왔다. 왼쪽 눈에도 황반변성 증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환자는 눈알에 맞는 황반변성 주사 치료를 몇 차례 받다가 "치료비를 대기 어렵다"며 중간에 포기하고 병원에 더 오지 않았다. 그는 아마 지금쯤 왼쪽 시력마저 거의 잃었을 가능성이 크다.

황반변성은 20년 전만 해도 환자가 진료받으러 오면 전공의를 불러모아 케이스 스터디를 시킬 정도로 희귀한 질환이었다. 그런데 10년쯤 전부터 하나둘 환자가 늘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망막 전문의의 주요 진료 질환이 됐을 정도로 흔해졌다.

황반변성에 걸리면 망막 가운데 자리잡은 노란 반점인 황반이 손상돼 시력이 떨어지거나 실명한다. 황반은 읽고, 쓰고, 사람의 얼굴을 구별할 수 있게 하는 부위이다. 이와 같은 황반에 새로운 혈관이 비정상적으로 자라는 것을 습성 황반변성, 신생혈관이 없는 것을 건성 황반변성이라고 한다. 실명은 전체 황반변성의 10~15%를 차지하는 습성 황반변성이 주로 유발한다.

황반변성, 특히 습성 황반변성은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황반에 노폐물이 쌓이면 세포가 숨을 쉬기 위해 새로운 혈관을 만들어낸다. 사물이 휘어지거나 구부러져 보이는 것은 새로운 혈관이 출혈이나 누수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새어 나온 혈액이 굳어서 망막에 딱지가 앉으면 실명한다. 따라서, 혈관이 새로 계속 생기는 환자는 신생혈관을 자라게 하는 인자를 제어하는 주사를 눈 속에 지속적으로 맞아야 한다. 황반변성 환자가 발병 초기에 안과에서 적절한 주사 치료를 받으면 실명하지 않을 뿐 아니라, 떨어진 시력까지 회복할 수 있다.

하지만 주사제는 한쪽 눈에 5회까지만 건강보험이 적용되기 때문에, 그 다음부터는 맞을 때마다 100만원이 넘는 치료비를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전체 습성 황반변성 환자의 20%는 반드시 5회 이상의 치료를 받아야 한다. 치료를 연장했을 때 효과가 더 좋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환자까지 포함하면 황반변성 환자의 약 40%는 5회 이상 치료가 필요하다. 고령 환자 중에는 자녀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주는 것이 미안해서 건강보험이 적용될 때까지만 치료받고 마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호주는 국민의 실명을 예방하기 위해 황반변성 치료제를 제한 없이 국가 보험으로 지원한다. 당장의 치료비 부담보다 시각장애인이 생겼을 때 사회 전체가 짊어져야 할 부담을 줄이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경제적 부담 때문에 지킬 수 있는 시력을 잃고 장애인이 되는 국민이 더 이상 없도록 국가 차원에서 나섰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