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석환자가 잡곡밥 가져와 드셨다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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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내과 병동에 근무할 때, 먹던 약으로 혈압이 조절되지 않아 내과 병동에 입원한 할머니가 있었다. 주치의가 정밀검사 후 약을 바꾸고 고혈압 치료식인 저염식을 처방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입원 내내 혈압이 전혀 내려가지 않았다. 주치의의 고민이 깊어질 무렵, 원인은 다름 아닌 '젓갈'이란 것을 알아냈다. 저염식이 입에 맞지 않던 할머니가 집에서 짠 젓갈을 가져와 밥에 얹어 먹었던 것이다. 병의 치료보다 사소한 입맛의 유혹에 넘어간 경우였다.

병동 간호사로 근무하면 이런 환자를 적지 않게 본다. 이와 달리, 철저한 음식 조절로 복용하던 약도 끊고 질병을 이겼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하지만 이런 행운은 자기에게 맞는 식이를 했을 때에만 찾아온다. 당뇨병 환자에게 좋다는 잡곡밥은 자칫 투석 환자의 심장을 멎게 할 수 있고, 화상 환자에게 약이 되는 고단백질 식사는 그 환자가 간질환이 있다면 혼수상태에 빠뜨리는 독이 된다. 치료식의 목적은 병을 악화시키는 음식을 피하게 하고, 치료에 도움이 되는 식사를 하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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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원 환자가 아무리 호텔처럼 맛있는 식사를 하고 싶어 해도, 병원식은 환자 입맛보다 치료의 연장선상에서 조리한다.
병원에 상주하는 영양사는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일반식과 치료식의 식단을 짠다. 일반식은 검사나 수술 등으로 금식 기간이 길어진 경우 위장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쌀뜨물 같은 맑은 미음, 죽, 밥 순으로 구성한다. 알레르기 등의 이유로 먹지 못하는 음식은 빼고, 씹는 기능이 떨어진 환자나 노인 환자를 위해 반찬을 다져주거나(치아보조식), 죽처럼 갈아주는(연하보조식) 등 환자 상황에 맞게 만들어준다.

반면 치료식은 개인 취향보다는 치료에 중점을 둔다. 당뇨식, 저염식, 저단백식(간질환), 지방조절식(심장질환), 투석식(혈액투석·복막투석) 등이 있다. 칼로리와 염분 함량 등의 결정은 전적으로 주치의 처방에 따라 이루어진다. 입원 기간 동안 먹는 식사도 치료를 위한 처방인 셈이다.

그런데 많은 환자가 약은 꼬박꼬박 챙겨먹고 다른 치료에는 적극적이면서 유독 병원식에 대해서는 시큰둥하다. 단지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병원에서조차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을 고집한다. 젓갈로 식사를 하던 고혈압 할머니 외에, 저지방식과 저염식을 해야 하는 심장병 환자가 몰래 나가 기름에 튀긴 치킨을 잔뜩 먹고 온 사례도 있었다. 고칼로리와 밀가루 음식을 멀리 해야 하는 당뇨병 환자인데 매 끼니 치료식에 나온 국 대신 컵라면을 먹기도 한다. 심지어 몰래 병원 밖에 나가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고 온 간경화 환자도 있었는데, 이 환자는 강제 퇴원당했다.

병원은 여러 복잡한 식이를 '그냥' 준비한 게 아니다. 그래서 맛이 없는 것도 아니다. 병원에 입원했으면 병원식 또한 치료의 연장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김현아·한강성심병원 외과중환자실 간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