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 story] 장기흡연자 노리는 숨 막히는 고통
58년 흡연 신경식씨… COPD 치료 성공기
호흡곤란 겪자 바로 금연, 폐암도 조기 발견해 치료
노래·관악기 연주·등산… 폐 기능 회복에 도움 줘
첫 진단받고 금연 안해서 산소발생기 쓰게 돼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흡연자에게 또 하나의 비상 경보가 울렸다. 흡연하는 사람의 숨통을 조르는 COPD(만성폐쇄성폐질환)로 인한 지난해 40대 이상 남성 사망자가 1991년보다 5배 정도 늘었다〈그래프〉. 65세 이상 사망자는 7배 가까이 증가했고, 전 연령대의 사망은 4.5배 많아졌다.
COPD란, 주로 장기간 흡연하는 사람의 기도(氣道)가 좁아지고 폐포가 막히면서 호흡 기능이 저하되는 질병이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60%를 넘던 성인 남성 흡연률 탓에, 현재 우리나라 45세 이상 성인의 18%가 COPD를 가진 것으로 대한결핵및호흡기학회는 추산한다. COPD를 방치하면 인공호흡기에 의존해야 하는 '질식 상태'에 이르거나, 체내 산소 공급 부족에 따른 온갖 합병증이 생겨 사망한다.
이춘구 전 민자당 대표가 지난달 COPD로 사망했고, 코미디어 이주일씨도 COPD를 앓다가 폐암으로 사망했다. 작가 이외수씨는 COPD에 걸린 후 금연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COPD가 2020년 전세계 사망률 3위가 될 것"으로 예고한다.
하지만 주요 위험군인 흡연 경험자들은 COPD를 잘 모른다. 대한결핵및호흡기학회가 45세 이상 COPD 잠재 환자군 737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75%가 "COPD를 모른다"고 답했다.
COPD 초기에는 비탈길을 걸을 때 숨이 차다가 점차 평지를 천천히 걸어도 숨이 차고, 대화를 하는 것만으로도 호흡이 가빠진다. COPD에 일단 걸리면 현대 의술로도 폐 기능을 원상 회복시키거나 병의 진행을 완전히 중단시킬 수는 없다. 따라서 일상 생활이 어려워질 정도로 폐기능이 떨어지기 전에 조기 발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성바오로병원 호흡기내과 문화식 교수는 "10년동안 하루에 한 갑 이상 흡연한 40세 이상은 반드시 COPD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COPD는 일찍 발견해 치료를 시작하는 동시에 일상 생활을 올바로 관리하는 것이 관건이다. 인천성모병원 호흡기내과 안중현 교수와 서울아산병원 호흡기내과 이재승 교수의 설명으로, 성공적인 치료 사례와 아쉬운 사례를 대비해 흡연자가 COPD의 공포를 어떻게 피해가야 하는지 소개한다.
◆성공 케이스: 담배 끊고 폐암까지 조기 발견
열네 살부터 58년간 하루 한두 갑씩 담배를 피운 신경식(74)씨는 2009년 북한산을 등산하다가 갑자기 호흡곤란을 겪고 가까운 병원을 찾았다가 폐기능이 50% 정도인 COPD 3기 진단을 받았다. 그 무렵 취미이던 색소폰 연주를 10분만 해도 숨이 찼는데 '나이들어서 그런가보다' 넘기던 참이었다. 신씨는 "진단받자마자 담배부터 끊고, 약물 치료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진료소견: 처음 호흡곤란을 겪자마자 금연한 것이 폐기능의 추가적인 급격한 저하를 막은 일등 공신이었다. 이 덕분에 혈중산소포화도가 크게 낮아지지 않아 나중에 산소치료를 병행하는 상황까지 진행하지 않을 수 있었다.
신씨는 지난해 12월 COPD 정기 검사를 받다가 폐암 1기가 겹쳤다는 진단을 받았다. 다행히 암을 초기에 발견해, 방사선치료 4회로 암덩어리를 모두 없앴다. ▶COPD가 폐암을 직접 일으키지는 않으나, 대부분의 COPD 환자는 수십년간 흡연했기 때문에 폐암에 많이 걸린다. 그러나 COPD로 이미 기능이 떨어진 폐를 절제하면 호흡 능력이 심각하게 손상되기 때문에 암 수술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신씨도 폐 절제술을 받으면 호흡 곤란이 심해질 수 있었기 때문에 수술 대신 방사선치료를 선택했다.
신씨는 "COPD에 폐암까지 겹친 뒤 문 밖에 건강해 보이는 사람만 지나가도 눈물이 쏟아질 정도로 우울증을 겪었다"고 말했다. 그가 우울증상을 보인 것은 두 번인데, 그 때마다 바로 정신건강의학과에 가서 치료받았다. ▶우울증이 있으면 COPD가 더 빨리 악화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환자의 심리는 COPD 진행을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요인이다. 우울증이 나타나자마자 치료받은 것이 신씨의 COPD 치료에 큰 도움이 됐다.
신씨는 요즘 집 근처 노래방에서 매일 30분씩 노래를 부르고 북한산 초입까지 30~40분 산책을 한다. 호흡량이 부족할 때는 하모니카를 불었다. 최근에는 호흡 부전이 많이 개선돼, 색소폰을 다시 불 수 있게 됐다. ▶신씨의 노래, 연주, 등산은 병원에서 하는 호흡재활치료와 같은 효과를 낸다. 매일 산길을 오르면서 폐활량을 늘리고, 노래와 관악기 연주로 복식호흡을 한 셈이다.
지난달 20일 병원을 찾은 신씨는 COPD로 인한 기도 폐쇄와 폐포 파괴가 거의 멈춘 상태라는 설명을 듣고, 의료진 앞에서 색소폰까지 불어 보였다. 주치의는 "신씨는 COPD를 초기에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성실하게 치료해 호흡 기능까지 눈에 띄게 좋아진 모범 환자"라고 말했다.
◆실패 케이스: 생활 관리 잘못해 호흡부전 악화
오은성(68)씨는 27세부터 매일 한 갑씩 담배를 피웠다. 담배를 피운지 32년째 되는 2001년, 운전 중 기침과 호흡곤란 증세가 나타나 병원을 찾았다가 폐기종 초기 진단을 받았다. 폐기종은 만성기관지염과 함께 COPD의 두 가지 주요 증상이다. 오씨는 처방받은 기관지확장제를 꾸준히 썼지만, 그 무렵 개인사업을 시작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아 흡연량이 오히려 두 갑으로 늘었다. ▶진료소견: 금연하지 않은 것이 가장 큰 문제다. COPD 약물치료는 증세의 악화를 늦출 뿐, 폐 손상 자체를 막지는 못한다. 오씨의 현재 폐 기능은 같은 나이대 정상인의 60%이지만, 처음 진단받았을 때 금연했으면 80% 정도를 유지했을 것이다.
오씨는 올 1월 폐에 물이 차서 병원에 입원했다가 COPD 2기 진단을 받았다. 그는 "COPD라는 병이 있다는 것을 그 때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오씨는 이미 호흡을 통해 체내에 산소 공급을 제대로 하지 못해 혈중산소포화도가 크게 떨어진 상태였다. 집과 사무실에서 산소발생기를 써야 한다는 진단이 나왔다. ▶오씨가 폐기종을 진단받았을 때 바로 금연과 폐활량을 키우는 운동을 시작했으면, 산소발생기에 의존해야 하는 상태까지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직도 많은 환자가 자신이 COPD인 줄 모르고 오씨처럼 방치하고 있다.
오씨는 지난 7월말 "산림욕을 하면 폐기능이 좋아진다"는 말을 듣고 아내와 추풍령의 산림욕장을 찾아갔다. 그러나 무더운 평지에 있다가 기온이 서늘해지는 산 중턱에 이르자 갑자기 손 끝이 파랗게 변하는 저산소증이 발생해, 구급차를 불러야 했다. ▶COPD 환자는 흔히 1년에 세 번 정도 기침과 가래가 발작적으로 튀어나와 호흡 곤란을 유도하는 급성 악화를 겪는다. 주로 일교차가 큰 환절기나 겨울에 감기에 걸리면서 발생하는데, 오씨는 기온차가 심한 산 속에서 호흡이 가빠지다가 심리적 불안감까지 더해져 저산소증까지 나타났다. COPD 환자는 환절기 급격한 기온 변화를 대비해 항상 겉옷을 준비하고, 냉탕·온탕을 번갈아 드나드는 등 갑작스런 체온 변화를 피해야 한다.
오씨는 집에서도 늘 코에 산소발생기를 착용하고 있어야 할 정도로 증상이 악화됐다. 얼마 전 정전으로 산소발생기가 작동을 멈춰 호흡곤란이 다시 나타나 병원에 입원한 상태이다. 그는 일단 퇴원해도 될 만큼 안정됐지만, "집에 있으면 호흡곤란이 반복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심해져 차라리 계속 병원에 입원해 있는 것이 안심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