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인 나도 환자"… 털어놔야 낫는다

이미지
우종민 서울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추석 연휴 직후 40대 남성이 "귀성길에 공포로 죽을 것 같았다"며 진료실에 찾아왔다. 이 환자는 "밀리는 고속도로에서 계속 이어지는 터널마다 갇혀 있다보니 갑자기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혔다"며 "정신이 아득해져서 차 밖으로 뛰쳐나가 도망가고 싶었지만 가족이 놀랄까봐 억지로 버티다가, 결국 차를 포기하고 119를 불러 응급실에 갔다"고 말했다.

이 환자가 겪은 증상은 공황장애이다. 갑자기 죽을 것 같은 공포가 밀려오면서 가슴 두근거림, 호흡곤란, 어지러움, 비현실감 등 여러 증상이 한꺼번에 발작적으로 엄습한다. 길게 이어지는 터널, 바다 위의 긴 다리, 중간에 빠져나올 수 없는 교통정체, 한번 타면 도착할 때까지 내릴 수 없는 비행기가 대표적인 공포 대상이다.

수년 전 필자가 탄 비행기가 기상 악화로 갑자기 흔들리자 승객 중 공황이 발생, 의사인 필자가 나서서 간신히 수습한 경험이 있다. 비행기 탑승객에게 공황이 발생해 활주로를 달리던 비행기가 돌아온 사례도 있다.

필자의 환자 중에 고속버스 운전기사가 있다. 이분의 아버지는 심장마비로 별세했는데, 자기도 심장마비로 죽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만 머리를 스쳐도 공황이 발생했다. 겉보기엔 멀쩡한데 응급실 신세를 자주 지니까 회사에서 "꾀병 부리지 말라"는 핀잔을 들었다. 그는 남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공황 증세가 나타나면 차를 세우고 바퀴를 점검하거나 백미러를 수건으로 닦는 척하면서 마음을 가라앉힐 시간을 벌었지만, 증상은 계속 심해졌다.

공황장애의 원인은 대뇌 신경계의 과민성이다. 환자들은 스트레스나 공포에 대한 역치(�l値)가 낮다. 역치란 문지방이라는 뜻인데, 어떤 감각을 느끼기 위해 필요한 최저 자극량을 말한다. 사람마다 역치가 다른데, 공황장애 환자는 작은 환경 변화도 위험한 신호로 과장해서 해석하고, 위험이 닥칠 가능성을 실제보다 높게 해석한다.

병원에 오면 역치를 높이는 약물치료와 인지행동치료를 한다. 하지만 치료보다 먼저 할 일이 있다. 자신이 공황장애라는 사실을 공개하는 것이다. 필자도 가벼운 공황증세가 있는데, 창문을 닫고 10분쯤 운전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산소가 모자라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겨울에도 창문을 조금 내린다. 아이들이 불평했지만 어떻게든 핑계를 댔다. 그러다가 얼마 후 터놓고 이야기했다. "사실은 아버지가 가벼운 폐쇄공포증이 있어서, 창문을 꽉 닫으면 안전운전에 문제가 생길까봐 열어놓는단다."

그 뒤로 운전할 때 가족 신경을 덜 쓰게 되면서 증상이 개선됐다. 필자처럼 솔직하게 밝히고 빨리 도움받아야 한다. 공황 증세를 감추면 더 불안해지고 증상이 심해진다.





우종민 서울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