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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준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교수·심방세동센터장

필자에게 심방세동으로 오래 치료받고 있는 노신사가 있다. 수년간 항응고제인 와파린을 복용해서 혈전(피떡) 형성을 잘 막고 있었는데, 얼마 전 온 몸이 시퍼런 멍투성이가 돼서 진료실을 찾아왔다. 한 눈에 봐도 부작용이었다. 안타깝게도 부인과 사별한 것이 원인이었다. 일상생활에서 조심해야 할 점이 많은 와파린 치료를 세심하게 보살펴 주던 아내가 세상을 떠난 뒤, 와파린과 함께 먹으면 안되는 다른 약과 음식을 모르고 먹어서 부작용이 생긴 것이다.

심방세동은 심장 내 심방 여러 곳이 불규칙하고 빠르게 뛰는 질병이다. 이 병은 혈전 생성을 유발해 뇌졸중 발생 위험을 5배 이상 높이는 등 환자의 목숨까지 위협한다. 심방세동 환자는 혈전 생성을 막기 위해 와파린을 반드시 복용해야 한다.

와파린은 뇌졸중 위험을 65% 낮출 만큼 효과가 좋지만, 환자에게 적잖은 불편을 준다. 항생제·진통제·고지혈증약과 함께 복용하거나 두부·청국장·시금치·마늘 등 한국인 식탁에 매일 오르는 음식을 먹으면, 와파린의 항응고 효과가 영향을 받기 때문에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

또한 '혈전을 녹이는 효과'에 반해 출혈 위험도 있다. 따라서 약의 효과가 적지도 많지도 않고 딱 적당하게 나타나는지 살피기 위해 정기적으로 병원에 와서 피검사를 받아야 한다.

일부 환자는 와파린을 끊으면 뇌졸중 위험이 엄청나게 높아지는 줄 알면서도 치료를 포기한다. 약을 조심하면서 써도 혈액응고수치가 적절하게 조절되지 않거나, 출혈 부작용이 심한 경우이다. 그런 환자를 보면 너무나 안타까웠다. 지난 50여년간 와파린만큼 효과적인 약이 없어서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심방세동에 쓸 새 항응고제들이 개발됐다. 이들은 와파린보다 효과는 좋고 불편과 부작용은 크게 개선됐다고 임상 연구에서 증명돼있어, 전문의가 환자 상태에 따라 적절히 쓰면 우수한 치료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중 가장 먼저 개발된 항응고제는 미국, 캐나다, 일본 등에서 이미 출시돼 많은 환자가 도움을 받고 있다. 미국에서는 신속허가약물로 지정돼, 비슷한 시기에 개발된 다른 신약보다 빨리 출시됐다. 반세기 넘게 심방세동 환자들이 기다려온 신약 필요성을 이해한 덕분이다.

우리나라 식품의약품안전청도 허가를 비교적 빨리 내줘, 심방세동 환자가 뇌졸중 위험과 싸울 큰 무기를 들게 됐다. 하지만 아직 건강보험이 미적용돼 많은 환자가 혜택을 보지는 못한다. 와파린을 쓰기 힘든 환자는 심방세동이라는 불규칙하게 튀는 외줄에 매달려서 한 손을 놓친 상황이다. 나머지 한 손마저 놓치기 전에 줄을 다시 잡고 살아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