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러시아의 푸른 눈 환자, "한국에서 응급수술하고 새로운 삶 얻었죠."
헬스조선 편집팀
입력 2011/02/14 17:44
“모국인 러시아도 어렵다고 했던 아버지의 수술을 세종병원에서 무사히 마쳤습니다. 심장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남편도 이 병원에서 무료로 시술 받을 예정이에요. 한국에서 사랑하는 두 사람이 건강한 삶을 선물 받았으니 우리 가족에게는 한국이 제 2의 고향인 셈이죠”
한국과 한국의 한 심장전문병원에 러시아 사람이 이토록 고마움을 표하는 이유가 뭘까.
지난 12월2일, 러시아 하바로프스크시에 사는 Dubovoi Vladimir(60세/남)씨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극심한 통증으로 러시아의 한 병원 응급실에 실려갔다. 그 병원 심장센터에서는 큰 이상이 없다며 블라디미르씨를 퇴원시켰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고통이 계속되자 스스로 개인병원을 찾았고 3주 후인 12월 22일에 대동맥박리를 동반한 흉복부 대동맥류라는 진단을 듣게 되었다.
빠른 치료가 필요한 병이어서 러시아 내에 큰 병원을 찾았으나, 워낙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어려운 수술이고 예후도 좋지 않아 러시아 병원에서도 선뜻 수술하겠다는 곳이 없었다. 수술을 받게 되더라도 대기시간이 2년 정도 걸린다는 사망선고 같은 얘기에 결국 다른 나라 병원을 급하게 알아볼 수 밖에 없었다. 러시아 여행사를 통해 병원을 알아보던 중, 한 지인이 한국에 있는 세종병원을 추천했다.
세종병원을 추천한 이는 선천성 심장병을 가진 아이의 엄마로, 작년에 자신의 아이가 세종병원에서 무료수술을 받고 건강해 졌다며 이 병원을 추천한 것. 블라디미르씨는 인터넷으로 이 병원을 찾았고 심장수술 결과가 좋은 병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거리상으로도 하바로프스크시에서 2~3시간밖에 소요되지 않아 지체 없이 한국행을 결심했다.
◆블라디미르의 흉복부 대동맥류 수술 성공적으로 끝나
1월28일, 세종병원 수술실에서는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10시간이 넘는 대 수술이 진행됐다. 블라디미르의 질환은 대동맥 박리증을 동반한 흉복부대동맥류로 흉부와 복부의 대동맥 직경이 점차 커지고 약해져서 대동맥박리(대동맥의 속껍질이 찢어지면서 심장에서 나오는 많은 양의 힘찬 피가 찢어진 대동맥 껍질 사이로 흘러 들어가는 것)가 발생한 경우로 대동맥 파열에 의한 급사의 위험이 매우 높은 질환이다.
이 질환의 수술은 흉부와 복부를 이어서 동시에 열고 흉부 대동맥과 복부 대동맥을 같이 수술해야 하는 고난이도 수술에 속한다. 수술 후에는 뇌 손상, 척수 손상, 신장 손상을 포함한 복부 장기손상이 발생할 위험이 크고 수술 사망률이 10% 에 이르는 매우 위험도가 높은 수술이다.
이 수술을 집도한 세종병원 흉부외과 김재현 과장은 “블라디미르는 흉복부 대동맥류로 약해진 대동맥이 최근에 발생한 대동맥박리증으로 대동맥의 크기가 약 7Cm가깝게 늘어나 있어서 대동맥파열의 위험이 높은 상황이었다”며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수술 결과에 대해 김재현 과장은 "수술 중에도 흉부대동맥 검사 시 약해진 대동맥부위의 출혈이 심하여서 어려움이 있었지만 수술이 잘 마무리되었으며, 이러한 수술은 수술 후 척수손상에 의한 하반신 마비의 위험도 상당하지만 환자분은 현재까지 아무런 합병증 없이 잘 회복하고 있다. 내주에는 퇴원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되며 러시아에 가서도 혈압약을 잘 복용하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블라디미르 보호자인 큰 딸 옥사나! 잘 된 수술 앞에서 맘껏 좋아할 수 없었던 사연
블라디미르씨와 함께 온 첫째 딸 옥사나씨는 아버지의 성공적인 수술에 가슴을 쓰러 내리며 의료진들 한 명 한 명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러시아에서 살고 있는 집도 팔고 은행에서 대출까지 받아 천신만고 끝에 찾아온 병원이었다. 아버지를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고 찾은 한국이었기에 성공적인 수술결과가 그 누구보다 간절했다. 수술이 무사히 끝났다는 의료진의 말을 듣고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던 옥산나씨는 아버지가 눈을 뜨고 말을 하자 비로소 안도의 눈물을 흘렸다.
블라디미르의 성공적인 수술에 기뻐하는 것도 잠시. 러시아에 있는 남편 빅토르(Gusishan Victor, 43세)의 생각에 옥사나씨는 또 한번 걱정이 앞섰다. 러시아에서 전기기술자로 일하고 있는 빅토르 역시 러시아에서 심장병을 앓고 있어 빠른 시술이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심장병 치료를 위해 경제적으로 많은 부담을 진 상황이라 남편의 치료가 막막하기만 한 것. 러시아 코디네이터를 통해 이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 들은 세종병원 측은 옥사나에게 시술에 따른 전액을 병원에서 부담할 테니 걱정 말고 남편을 병원으로 데려오기를 권했다.
옥사나씨 남편이 한국에 입국하여 출국할 때까지 필요한 모든 비용은 경기도에서 부담하기로 했다. 경기도는 2010년 10월 하바롭스크주와 첨단의료시스템 수출 등 의료산업 교류를 위한 MOU를 체결한 바 있다. 러시아에서도 어렵다고 했던 아버지의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고, 더불어 남편의 치료까지 무료로 해주겠다고 마음을 써 준 한국의 병원과 경기도의 배려에 옥사나는 말을 잇지 못한 채 그저 눈물만 떨궜다.
자신의 치료로 딸자식과 사위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블라디미르 역시 이제서야 마음의 짐을 덜게 됐다. 2월 13일 블라디미르씨가 퇴원하여 고국으로 돌아가면 옥사나의 남편이 한달 뒤쯤 이 병원에서 시술을 받을 예정이다.
생김새도 언어도 다른 낯선 나라 한국의 어느 심장전문병원에서 가장 사랑하는 두 사람의 건강을 선물로 받은 옥사나씨. 추운지방 러시아에서 온 옥사나의 가슴은 한국의 가슴 따뜻한 배려와 고마움으로 가득 차 올랐다.